이정현 목사 나성서부교회 / (310)749-0577 E-Mail: lakwpc0316@gmail.com
Q: 새해에 요한복음을 읽는데 요1:1에서 “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왜 태초에 하나님이 계시니라 라고 하지 않고 “말씀”이라고 하셨는지 어렵습니다. 그 말씀은 과연 누구신지 알고 싶습니다. -토랜스의 이희은
A: 사울에게 우리주님이 찾아오시자 핍박자요 종교 깡패였던 사람이 대 사도 바신년에 말씀을 읽는 성도님께 하나님의 복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요1:1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표현했습니다. 질문하신 것처럼 요한은 태초에 하나님이 계시니라 라고 하지 않고 “말씀이 계시니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말씀을 헬라어로는 “로고스”라고 말합니다. 이 로고스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인격적인 실체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 “로고스”라는 말씀이 신약시대에 육체를 가지고 나타나셨는데 그 분이 바로 예수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이 로고스라는 것은 사실 예수님 오시기전 주전 6세기부터 1세기에 이르기까지 헬라 문화권에 속한 사상을 지배하던 철학이었습니다. 로고스가 그 철학의 골자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신이 로고스이고 로고스가 신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의미를 알던 모르던 로고스라 하면 “아 신을 말하는구나” 하고 생각할 정도로 그 개념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심지어 플라톤 같은 위대한 철학자들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느 날 신으로부터 로고스가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로고스를 “초월한 존재이면서도 인간에게 찾아오는 내재적인 신적존재”로 이해했습니다. 요한이 예수님을 로고스라고 말한 데는 다분히 이런 의도가 숨어져 있었습니다. “너희들이 로고스라고 말하는 분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말해줄까? 기독교가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너희들이 말하는 로고스다. 예수그리스도가 로고스이고 그분이 육을 가지고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이 로고스라는 말 표현법을 빌린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전혀 안보입니다. 내가 아무 말을 안하면 내 마음이 빨간지 노란지 시커먼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을 일차적으로 “말”로 표현하면 그 말은 내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내 마음의 상태를 나타낸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어떤 모양도 없고 형체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볼 수도 4차원적인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러한 그분의 사상과 표현을 볼 수 있는 어떤 것으로 나타낼 때 그것이 바로 “로고스,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23절에는 유명한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거듭나고 새사람이 되는 것은 썩지 않는 씨 즉 요한복음 1장에서 말하는 그 말씀을 말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받아먹는 것은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이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나쁜 말씀이 들어와서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말씀으로 좋게 되기도 하고 나쁘게 되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말씀을 받아들이느냐가 문제입니다. 말씀은 사람의 사상을 변화시키고 그 사람의 인생자체를 바꾸어 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