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목사 나성서부교회 / (310)749-0577 E-Mail: LSPC0316@yahoo.co.kr
Q: 한국 초창기의 첫 신자는 어떻게 생겨났는지요? 그리고 한국에서 성령의 부흥운동이 일어났던 평양 장대현교회는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지요? -LA의 박춘권
A: 총신교수인 박용규 교수가 쓴 “평양 대부흥 이야기” 란 책을 보면 한국 초기 선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것을 읽으면 성령의 역사가 초대 신자들에게 있었음을 말해 줍니다.
영국의 토마스 선교사는 성경을 가지고 선교하려 1866년 8월1일 제너럴 셔먼호를 타고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에 입국하려 했습니다. 토마스 선교사는 한국말을 이미 배웠기 때문에 통역관 자격으로 승선했습니다. 그래서 대동강에 입국하려고 하자 그 당시 쇄국정책을 펴던 한국은 이 제너럴 셔먼호를 불태우기 위해 불타는 나룻배를 보내 셔먼호에 옮겨 불붙게 합니다. 그래서 배에 탔던 사람들이 한 사람 한 사람 뭍으로 나오자 육지의 군관들이 칼로 한 사람 한 사람 처단을 합니다. 제일 마지막으로 성경을 가지고 뭍으로 나온 젊은이가 토마스 선교사였습니다. 그는 자기를 죽이려는 군관의 리더 격인 박춘권에게 무릎을 꿇고 엎드려 나는 죽여도 좋으니 “이 성경을 꼭 받으라”고 권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팽개쳐 버리고 받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토마스 선교사는 꽃다운 26살의 나이에 순교하였습니다. 터툴리안이 말한 대로 순교는 교회의 씨앗이 된다고 그날 토마스를 죽인 박춘권은 집으로 가서 잠을 자려하는데 “도대체 그 책이 무슨 책이길 래 죽어가면서도 그렇게 내게 건네주려 했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그래서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성령님이 주신 감동이었습니다. 그래서 몰래 그 현장에 가서 흩어진 성경책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박춘권은 그 성경책을 열심히 읽었고 결국은 예수를 믿어 훗날 영주교회의 영수 즉 장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박춘권에 앞서 토마스 선교사로부터 성경3권을 건네받은 12세의 최치량은 성경이 금서라는 사실을 알고 겁이 나서 그것을 평양의 영문주사 박영식에게 건네주었습니다. 박영식은 성경이 질 좋은 종이로 만들어진 것을 알고는 성경을 버리긴 아깝고 해서 자기 집의 방의 도배로 사용했습니다. 바닥과 벽과 천장까지 성경으로 도배한 집을 상상해보셨습니까? 보기 싫어도 보이는 것이 성경구절이었습니다. 하루는 박영식의 눈에 강하게 들어오는 한 구절이 있었습니다. 요5:24절 말씀이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처음에는 무의미하게 읽다가 자꾸자꾸 읽으면서 죽음 후에 영생이 있다는 사실과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인생의 깊은 고민에 빠져 삶의 회의를 느끼며 근심에 쌓여 집에 돌아와 누워 있다가 천장을 보았습니다.
성경 한 구절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요14:1절이었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도다. 내가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나 있는 곳에 영접하리라.” 그는 예수님이 누구인지 성경에서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박춘권과 한국인들이 토마스 선교사 일행을 죽인 사건이 눈에 떠올라 마음으로 괴로워하고 있을 때 마4:17절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성경구절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박영식은 그날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을 얻었고 나중에 성경을 도배한 이 집이 평양에서 최초의 교회 즉 널다리골교회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널다리골교회가 나중에 평양 장대현교회의 전신이었고 장대현교회에서 평양의 대 부흥운동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