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상담

고난과 역경의 소용돌이, 믿음으로 극복한 승리의 축제

이정현 목사 빛과 소금교회 / (310)326-9092 E-Mail: LSPC0316@yahoo.co.kr

Q: 미국의 청교도들과 추수감사절의 유래에 대해서 보다 상세히 역사적으로 배경을 알고 싶습니다. -토랜스의 정 집사

A: 추수감사절의 유래는 1620년 영국에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국에 온 청교도들 즉 필그림 파더스(Pilgrim Fathers)의 이야기에서 시작이 됩니다. 영국에 있었던 청교도들은 사실 신앙의 핍박을 많이 받았습니다. 1558년 처녀의 몸으로 왕이 된 메리여왕은 광신적인 가톨릭 신앙인으로 종교개혁을 반대하면서 신교도들을 많이 핍박하였습니다. 청교도들을 많이 잡아 런던서쪽에 있는 사형장으로 끌고가 불에 태워 죽였습니다. 그래서 피의 여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잔인했던 메리여왕은 5년 후에 온몸에 알 수 없는 독창(피부병)이 번져 저주스럽게 죽고 말았습니다.

그 후 엘리자베스 1세 여왕과 제임스 6세가 다스렸지만 나아지는 것은 별로 없었습니다. 영국 국교회의 대표들은 제임스 6세를 만나 교회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신앙의 자유를 호소했으나 묵살당하고 말았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청교도들 사이에 의견이 둘로 나눠지게 되었습니다. 한쪽에서는 계속 투쟁할 것을 주장하였고 또 한쪽에서는 신앙의 자유를 찾아 밖으로 나가자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청교도들의 일부는 정든 고향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암스텔담 항구를 떠났습니다. 61일간의 항해 끝에 케이프 코드에 도착했으나 인디언들의 위험을 느껴 다시 승선하여 항해하다가 결국 플리머스에 정착했습니다.

도착한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고 눈도 많이 왔습니다. 식량난과 추위에 떨고 살았으며 생활은 비참하였습니다. 겨울을 지내는 동안 44명이 사망하였습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영양실조와 기아로 말미암아 대부분이 폐결핵을 앓게 되었습니다. 1621년 초 하루에는 하루에 세 명이 죽었습니다. 사람이 죽어도 몰래 장례식을 치러야 했습니다. 사람 수가 줄어드는 것을 인디언들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봄이 되어 유럽으로 돌아가는 배가 있었습니다. 청교도들의 비참한 상황을 보고 선장은 돌아갈 것을 권고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명도 돌아갈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 고생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자는 후퇴할 것이 아니라 이 봄에 새 땅에 씨를 뿌려야 합니다.”

그러던 중 이민 온지 3년이 되는 해 가을에 추수가 좋지 못했습니다. 어려움이 극도로 심했습니다. 청교도들은 과거 영국에서부터 어려울 때는 금식하며 기도하였는데 그 날도 금식하며 기도하려고 한 노인이 제의했습니다.

“우리가 어려운 문제만을 생각하고 금식하며 울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날을 정합시다.” 첫 번째 감사절을 지키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청교도들의 추수감사절은 좋은 환경, 좋은 조건, 좋은 결과에 의해 생겨난 축제가 아니라 고난과 역경과 불행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믿음으로 극복한 결과 생겨난 승리의 축제라 함이 좋은 줄 압니다.

청교도들의 신앙을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몇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신앙생활을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감수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순수하게 말씀대로 살았습니다. 셋째, 역경 중 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감사 할 줄 알았습니다. 결국 청교도의 이 신앙이 미국의 기초가 되었고 미국을 새롭게 강대국으로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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