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목사 빛과 소금교회 / (310)326-9092 E-Mail: LSPC0316@yahoo.co.kr
Q: 초대 한국 교회의 부흥사들의 부흥운동의 유형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어떤 부흥사들이 있었으며 그 특징은 무엇입니까?
-LA에서 신학생
A: 이것은 한국의 초대교회 부흥사들의 유형을 묻는 질문인데 참으로 흥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의 부흥운동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를 방향을 제시해 줍니다.
1920년대에 장로교회가 총회적인 차원에서 노회별로 혹은 지역별로 1주일에서 10일 정도씩 전국적으로 부흥 사경회 운동을 추진했을 때 큰 성과를 거둔 부흥 운동의 지도자는 길선주목사와 김익두 목사였습니다. 이들은 3.1운동 실패 이후의 민족의 독립의지가 좌절된 후에 민족적 좌절과 위기 속에서 있는 우리 민족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길선주 목사와 김익두 목사는 사경회 운동을 통하여 민족의 유일한 희망이 기독교 밖에 없다는 의식을 민족들에게 불어넣었습니다. 김양선 목사는 그들의 영향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은 한국교회에 새 빛과 희망을 주었고 한국 사회에 새로운 시대정신을 불어 넣었다. 그들의 설교단 하에는 거꾸러지는 경관과 죄를 자복하는 선교사가 있었고 기절하는 신사와 강도가 있었고 불치의 병을 고친 병자들이 수두룩했다. 그들의 전도를 통하여 목사와 장로, 교사가 수 천 명 배출되었다. 한국 교회와 교육계의 지도자 치고 그들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들의 손에 세례받은 자가 일만 인 이상이다.”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한국교회에 맥을 달리하는 두 개의 부흥운동이 발흥했습니다. 성결교 부흥운동과 이용도 목사의 부흥운동이었습니다. 성결교의 부흥운동은 강력한 회개를 동반한 전통적인 영적 각성운동이었고 이용도의 부흥운동은 지금까지의 부흥회의 개념과는 다른 새로운 스타일의 기법이 도입된 부흥회였습니다. 1932년에서 1935년까지 3년 동안 성결교회 안에 놀라운 부흥운동이 일어났는데 그중에 하나가 조치원 성결교회였습니다. 신년성회 때 큰 불 즉, 성신의 직접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조치원에서 시작된 성령운동은 곧 부강, 죽전, 시동을 비롯한 주변지역으로 확산돼 나갔고 충남, 수원, 전북 이리 교회, 함경남도 어포리교회, 예원리교회, 간평교회. 홍원교회에서 열린 부흥회에서 성령님의 임재가 강하게 나타났습니다.
성결교 부흥운동은 정남수, 이명직, 이성봉, 이상철, 김응조 목사 등이 큰 활약을 했습니다. 죄에 대한 회개가 성결교 부흥회에서 강조됐고 부흥회기간동안 말씀연구와 세벽기도회를 통한 성결에 대한 강조는 부흥이 개인의 영적 각성 차원을 넘어 삶의 개혁을 동반하도록 대단한 자극을 주었습니다. 이 시대의 성결교의 부흥사들은 죄에 대한 깨끗한 청산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참된 부흥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외쳤습니다. 그 결과 성결교회는 장로교와 감리교에 이어 한국의 3대 교단으로 자리 잡을 수가 있었습니다.
1930년대 초반 또 하나의 부흥운동이 이용도 목사에 의해 전개됐습니다. 1928년 통천읍교회 새벽기도회 도중 악마를 추방하는 신비적인 체험을 한 이용도는 곧 변화를 받고 부흥사로 등단합니다. 1931년 평양 산정현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하면서 이용도는 전국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합니다. 그의 부흥회는 불을 끄고 기도하는 것이라든가 일단의 여성도들이 따라 다닌다거나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하는 일은 이전의 부흥회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의 집회에는 몸을 떨거나 기이한 현상이나 환상을 보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 때 부터 안수가 부흥회의 중요한 요소로 정착했습니다. 이용도 목사의 부흥운동은 체험위주의 부흥운동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체험적인 신앙은 말씀에 병행하지 않을 때 신비주의로 흘러 역효과를 낸다는 것도 많이 역사적으로 한국교회에 교훈해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