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구원관인 해탈은 신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서 얻어진다고 말합니다.
Q: 과거 한국의 모 비교 종교학 교수가 기독교외의 다른 종교에도 하나님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는 것처럼 말하며 쓴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된 적이 있습니다. 목사님 불교와 기독교의 구원관이 무엇이 다른지요? 알고 싶습니다.
- 실비치 한 장로가
A: 좋은 질문입니다. 오래전에 감리교 신학대학 총장이었던 변선환이라는 신학자가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라고 말하면서 기독교와 불교의 대화를 모색하다가 나중에는 “불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다가 보수적인 감리교 목사들에 의해 비판받다가 결국은 1992년 종교재판에서 출교를 당했습니다. 나중에는 홍아무개란 교수란 분도 이와 비슷한 종교다원주의의 말을 하다가 면직당했습니다.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특징이 합신의 이승구 교수가 말한 것처럼 다원주의적 성향을 띠는데 마치 과거에는 개스로만 차가 움직였는데 현재는 개스와 전기 겸용으로 가는 하이브리드 차처럼 종교도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다고 하면 독선이고 배타적이라면서 기독교를 공격합니다. 오늘날 WCC운동에서도 상당히 종교다원주의적 성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태양이 하나라서 불편한 적이 있습니까? 나를 낳으신 부모님도 한 분이십니다. 마찬가지로 천국가는 길도 오직 한 길입니다. 그 길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불교에서는 인생은 끝없는 고통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불교는 끝없는 고통을 이야기하는 생의 윤회로부터 해방하고 탈출하는 해탈의 구원을 추구합니다. 해탈을 성취하는 방법은 다양하게 주장하는데 산을 중심으로 발전한 불교는 어떤 길을 택하든지 정상에 도달하면 된다는 다원적 입장을 취해 왔다고 봅니다. 불교의 구원관인 해탈은 신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서 얻어진다고 말합니다. 해탈을 통하여 열반(涅槃, nirvana)의 경지에 이르면 윤회(輪廻, reincarnation)를 벗어나게 된다. 실제로 석가모니(釋迦牟尼, Sakyamuni)는 고행을 통하여 완전한 깨달음을 얻어 붓다(Buddha)의 칭호를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누구나 자신처럼 노력해 부처가 되는 것,성불(成佛)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이란 불교의 해탈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구원(救援, salvation)은 “죄로부터 해방되어 하나님과의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생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가능한 것입니다(Sola Fide). 불교의 구원관과 기독교의 구원관이 무엇이 다를까요? 불교나 다른 종교는 자기 노력으로 해탈하여 능동적인 의를 추구한다면 기독교는 수동적인 의를 추구하는데 인간은 신학적으로 완전 타락, 완전 무능력한 존재이므로 인간의 노력과 수양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해 이루신 구원의 사건(Salvation Event)을 나를 위한 것으로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의를 강조합니다. 즉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 안에 있는 의가 나에게 즉시 전가가 되어 죄가 용서함 받고 의인이 된다는 칭의의 원리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도 로마의 스칼라산타 다리를 고행하며 무릎으로 기어올라 용서함과 의를 받으려고 추구했으나 그것이 불가능하고 허구임을 깨달았고 롬 1:17절 말씀처럼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천명했습니다.
06.03.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