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투스는 외적으로 내적으로 평화를 확립”

이정현 목사

Q: 목사님의 설교 중에 팍스 로마나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것이 어떻게 생겨난 말인지요? 그리고 로마인들의 황제숭배는 언제부터 생겨난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 실비치에서 김권사

 

A: 좋은 질문입니다. 시저가 죽은 후에 그리고 후계자로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를 지명했습니다. 그는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대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18살밖에 나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시저의 심복 부하였던 안토니우스는 38세로 그를 어린 철부지로 여기며 얕보았습니다. 그래서 옥타비아누스는 후계자가 되었지만 보이지 않게 이 두 사람이 정적으로 치열하게 서로 격돌하게 되는데 로마 제국이 둘로 나누어져 그 싸움은 20년간이나 계속이 됩니다. 옥타비아누스는 어릴 때부터 장이 약해서 언제나 새처럼 소식을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전쟁에 돌입하면 면밀하게 이해관계를 계산하며 적과 맞서 용감히 싸우는 기질이 있었습니다. 시저는 자신과 정반대의 기질을 가진 그를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옥타비아누스는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와 연합된 안토니우스를 악티움해전에서 제압했습니다. 그래서 옥타비아누스는 반란을 완전히 제압한 후 로마로 금의환향하면서 외친 것이 강력한 로마 힘에 의한 평화, 팍스 로마나(Pax Romana)입니다.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엄청난 도약이 이루어졌는데 그는 오랜 기간의 정적들을 제거하며 내란을 종식시켰고, 혼돈과 폭동이 사라졌고, 질서가 확립되었으며 예술과 농업, 상업이 발전되었고 법이 구현되었습니다. 아우구스투스는 외적으로 내적으로 평화를 확립했습니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은 질서, 평화, 안전을 보장하는 선정이었기에 그는 군대를 재정비해 병사를 50만에서 20만으로 줄였고 나머지 30 만명은 귀향시켜 토지를 주고 농업에 종사하게 했습니다. 또 국가에 진 빚을 탕감해 주고 관료조직을 재정비했습니다. 그는 귀족 출신의 원로원 가운데  20여명을 선발하여 정치의 요직을 관장하는 추밀원 의원으로 임명하여 원로원을 통제하게 했습니다.                                                                    

원로원은 주전 29년부터는 그를 임페라토르(황제 Imperial highness)에 덧붙여 프린키페스 (제1인자, 제1시민)의 칭호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Exalted(숭고한, 경외할만한 존엄사) Augustus(아우구스투스)라는 이름을 붙여주었고 인간보다 높고 신보다는 약간 모자라는 신분을 부여했습니다. 그 후부터 온갖 맹세와 제물들이 제국의 머리이자 하늘이 내린 신과 같은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 바쳐졌습니다. 예수님이 베들레헴에 탄생했을 때 누가복음 2장 1절을 보면, 바로 이 아우구스투스가 인두세를 받기 위해 천하로 다 호적하라고 호적령을 내렸을 때 입니다, 그는 AD 14년 폐렴으로 사망하자 원로원은 그를 신으로 명명했습니다.

02.11.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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