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저는 중국에 사업차 투자하였다가 지난 8년간 큰 손해를 보았습니다. 다른 형제들의 돈도 빌렸습니다. 1년 전부터 저희 부부가 새벽기도회에 나가 기도하면서 작은 비즈니스를 시작하였는데 형편이 조금씩 나아져 빚을 갚고 있습니다. 왜 그리스도인에게 이런 쓰라린 고난과 실패가 찾아오나요?
-애나하임에서 박 장로
A: 구스 내시는 예루살렘에 예배 차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이사야서를 읽었지만 빌립이 가까이 와서 해석해주기 전에는 잘 깨닫지 못했습니다. 빌립은 이사야 53장에 해당하는 그 어린 양은 고난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해석하여 깨우쳐 주었습니다. 신구약 성경의 말씀도 제대로 깨달으려면 바른 해석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 성도들의 삶 속에 일어나는 고난과 고통의 제반 문제들도 잘 해석하는 영적 지혜가 필요합니다.
인생은 해석입니다. 해석을 잘해야 합니다.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성공과 실패, 불행과 행복이 좌우됩니다. 자연은 밤과 낮의 연속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도 밤과 낮이 있습니다. 문제는 어두운 밤과 같은 인생의 시련도 절대 긍정의 믿음의 시각으로 해석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를 믿기 때문입니다. 주를 믿는 성도들에게는 “인생의 실패나 슬픔이나 눈물이나 질병이나 아픈 상처와 추억도 다 합동해서 내게 유익이 되게 합니다. 이것에 대한 유명한 성경구절이 로마서 8장28절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여기의 모든 것은 좋은 일뿐 아니라 안 좋게 보이고 고통을 주고 불행하게 만드는 것들까지 포함됩니다. 절대 선이라는 하나님의 섭리의 약속을 믿고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환경 속에서도 참고 인내하며 절망하지 말고 절대 긍정, 절대 감사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장로님께 이야기 하나 소개합니다.
사업에 실패하여 빈털터리가 된 한 청년이 주머니에 한 약병을 넣고 뉴욕의 뒷골목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업실패로 낙심하여 자살하기 좋은 으슥한 장소를 찾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골목에서 한 사람을 보게 됩니다. 두 다리가 다 잘린 한 장애인이 타이어를 다리에 감고 작은 손수레를 밀면서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나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장애인은 청년을 보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일터로 불편한 몸을 이끌고 나갔습니다. 청년은 그 때 번쩍 정신이 들었습니다. “나는 저 장애인에 비하면 얼마나 사지가 건강하고 좋은 학력에 많은 경험이 있고 가족과 집도 있는 사람인데 한번 실패로 약을 먹고 죽으려고 하다니...”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청년은 약병을 쓰레기통에 집어던졌습니다. 그는 생각을 바꾸고 해석을 달리했습니다. “내가 너무 어리석었구나. 이 세상에는 나보다 불행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나는 바보같이 한번 실패했다고 이렇게 쉽게 자포자기를 하려 하다니....” 그래서 마음을 굳게 먹고 전보다 더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세계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되었는데 그가 바로 미국의 강철 왕 카네기입니다. 그는 자기 인생의 실패와 고난에 대한 해석을 바로 하자 실패를 통해 성공으로, 불행을 바꾸어 행복으로 바꿀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인생은 해석입니다. 해석이 인생의 미래와 운명을 좌우합니다. 과거의 실패도 비싼 수업료를 내고 사업에 대한 지혜와 지식을 배웠다고 플러스 발상으로 생각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