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목사 빛과소금의교회 / (310)749-0577 Johnjunghyunlee@gmail.com
Q: 제 남편이 고치지 못할 암으로 고생하며 키모데라피를 받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성경지식으로는 죽음은 죄의 형벌이라고 아는데 우리는 이제 예수를 믿어 죄책이 다 제거되었는데 왜 죽음의 과정이 여전히 성도들에게도 찾아오는지요? 이것을 신학에서는 어떻게 해석하는지요? 그리고 죽음의 두려움이 많은데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요? -그라나다힐에서 유 권사
A: 사랑하는 남편이 암으로 고생하고 있는데 인생의 동반자인 부인께서 마음의 심적 고통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의사의 손길을 통해 잘 치료하여 고쳐주시기를 기원합니다. 믿음의 용기를 가지시고 이 질병과 싸워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권사님, 참으로 좋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인간이 자기 힘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두 가지인데 죄 문제와 죽음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 죄 문제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해결해주셨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죽음을 죄에 의해서 죄에 대한 형벌로서 이 세상에 들어온 것으로 지적합니다. 죽음은 하나님의 심판과 정죄와 진노의 표현이요 죄의 값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은 죄책에서 해방되었는데 왜 신자들도 죽느냐? 라는 질문이 제기됩니다. 분명 신자들에게도 죽음이 옵니다. 그러나 신자의 죽음은 죄의 형벌이 아닙니다. 더 이상의 죄의 정죄아래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우리 신자들에게 죽음이란 고통스런 체험을 통과하게 하시는가요? 이것은 하나님께서 칭의 받은 자기 백성을 성화하여 천국에 들어가는 준비로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죽음은 인생 훈련의 끝으로 보아야 합니다. 인생의 모든 훈련이 끝나고 영광의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이라는 것입니다(딤후4:7-8).
그래서 성도의 죽음을 죽는 것이 아니라 영광의 세계로 옮겨진 것입니다. 그래서 영국의 파크 목사님은 자기 아내가 죽었을 때에 아내의 묘비에 She ascended to the Heaven이라고 썼습니다. 성도의 죽음은 형벌의 의미가 부분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에게 형벌이 남아있다는 관념은 연옥 불의 카톨릭 사상입니다. 성도들의 죽음에 대한 신학자들의 견해를 보면 한국의 조직신학자였던 박형용 박사는 그의 책 종말론에서 성도의 죽음을 훈련의 정점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시편 116: 15절을 인용하였습니다. “성도의 죽는 것은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 조직신학자인 루이스 벌콥은 “죽는다는 생각, 죽음이 임박했다는 의식,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대단히 유익한 효과를 끼친다. 교만한 자를 겸손케 하고 육욕을 억제케 하며 세상으로 향하는 정신을 제어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고 살려는 마음을 일으킨다”고 말했습니다.
제 주변에는 훌륭하신 목사님도 육신의 암 투병하는 분들이 몇 분 있습니다. 어차피 우리의 육신의 생명은 제한적입니다. 언젠가는 돌아가는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죽고 사는 생명의 기간은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그리고 성도의 죽음에 대한 태도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성화 완성하여 천성에 들어가는 시작입니다. 사망 저편에 주께서 예비하신 영광의 처소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육체의 장막집을 떠나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으로 가는 것입니다(고후5:1, 8). 그래서 요한 칼빈 선생은 임종을 앞두고 7시간을 기도하면서 로마서 8:18절을 암송하였습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다가올 영광과 족히 비교 할 수 없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