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목사 빛과소금의교회 / (310)749-0577 Johnjunghyunlee@gmail.com
Q: 얼마 전에 이스라엘의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통곡의 벽에서 정통 유대인들이 벽에 기대어 기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슬람의 성지인 황금사원도 보고 왔습니다. 통곡의 벽과 황금사원에 대해 더 상세히 알고 싶습니다.
A: 형식적 유대종교의 상징인 웅장하고 화려한 예루살렘의 성전은 예수님이 예언한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짓밟히리라”(눅21:24). 제자들이 웅장한 예루살렘 성벽을 가리켜 보이자 예수님은 “너희가 이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예수님의 예언대로 주후 70년에 로마의 디도장군이 와서 예루살렘 성을 포위할 때 7개월간 포위되었다가 성전이 불탔습니다. 그리고 110만명이 죽고 9만7천명이 포로가 되었다고 합니다. 성이 포위된 동안에 예루살렘 성은 굶주리고 강도떼가 번성하고 인육을 먹는 사태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신성종 목사가 쓴 요한계시록 강해를 보면 로마의 디도장군이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할 때 성전 서쪽의 딱 한군데, 이른바 통곡의 벽이라 불리우는 벽을 남겨 두었습니다. 이것은 로마인들이 일부러 남겨둔 것입니다. 즉 로마가 얼마나 강한 나라인가를 깨닫게 하고 두려움을 갖게 하려고 하기 위해서 일부러 남긴 것입니다. 남상학의 시솔길이란 인터넷 정보에 의하면 오늘날 남아 있는 벽의 지상부분은 길이 약 50m, 높이 약 20m 모두 43단으로 되어있다고 합니다. 그 중 상부 17단은 후대에 쌓았으나 하부의 26단은 헤롯왕 시대 특유의 테두리가 있는 길이 4-5m, 높이 1m의 규모로 다듬은 돌로 쌓았습니다. 그 후에 유대인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4세기 비잔틴 시대에 들어와서야 그들은 1년에 단 한 번 신전이 파괴된 날로 전하는 아브월(Ab월:유대력 5월) 9일에 허물어진 신전을 찾아가 나라의 멸망과 그로 인해 유대민족이 세계 각처로 유리하게 된 것을 슬퍼하며 통곡하며 울었다고 합니다. 이런 관습은 수세기 동안 계속되었지만 이 성전터를 주후 682년에 무슬림이 점령하면서 무슬림 사원인 오마르 사원(황금사원)을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그 지성소 자리에 건설했습니다. 이곳에서 모하메드가 알라에게 계시를 받았다고 믿기에 제 2성지로 정하고 2억이 넘는 아랍인들이 경배하고 아끼고 있습니다.
이슬람 성소(聖所)가 건설되고 이 지역이 요르단 령에 속하게 되면서 유태인들의 통곡의 장소는 서쪽 벽으로 옮겨져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이로 인해 이 벽은 세인들에게 ‘통곡의 벽( Wailing Well)’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지금의 예루살렘은 신 예루살렘과 구 예루살렘으로 나눠지는데, 1973년 제3차 중동전쟁인 6일 전쟁이 일어났을 때 요르단 서안을 점령하고 바로 이 구 예루살렘 지역을 이스라엘이 요르단으로부터 빼앗아 행정적으로 이스라엘의 영토로 만들었습니다. 그때 이 통곡의 벽이 유대인의 수중에 들어온 것이다. 당시 이곳을 점령한 이스라엘 공수부대는 통곡의 벽 앞에서 서로 얼싸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