콥트교회, AD60년 마가의 선교에서 시작, 역사 자체가 고난의 연속

Q: 내년에 이집트 성지를 방문하려고 합니다. 작년에 IS에 의해 살해된 21명의 이집트의 콥트 교인들이 죽음 앞에서도 마지막까지 신앙을 지켰다고 합니다. 이집트의 콥트교는 어떻게 생긴 것이며 보다 상세히 알고 싶습니다. -토렌스에서 이희은

A: 이집트 인구의 90% 가량이 현재 이슬람 수니파인 이슬람 국가입니다. 이집트의 기독교 종파를 콥트교라고도 합니다. 콥트라는 말은 아랍어의 깁트를 영어로 표현한 것으로 아랍어로 깁트는 이집트에 사는 원주민을 말합니다. 콥트정교회 신도들 수는 현재 이집트 전체 인구의 12-15%, 최대 1200만 명가량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집트에서는 현대에도 수천 개의 교회에서 예배가 열리고 있습니다. 콥트 정교회 신도들의 숫자는 20세기 후반기부터 증가세에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이집트 콥트정교회는 아프리카 각국에 기독교를 전파하는 근거지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이집트의 콥트 교도 21명이 IS에 의해 목베임을 당해 죽었습니다. 타와드로스 2세는 성명을 통해 “그들은 죽음이 임박한 순간에도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외쳤으며, “IS는 이슬람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 공포심을 심기 위한 의도로 동영상을 공개했으나, 콥트교인들이 보여준 용기는 기독교 신앙을 가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다”면서 이같이 전했습니다.

이집트 기독교는 1세기 중엽인 AD 60년 마가의 선교에서 시작됐습니다. 이후 사막의 수도사들에 의해 수도원 운동이 확산됐고 이집트 제2의 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오리겐과 아우구스티누스 등 당대 최고의 신학자들을 배출했습니다. 또 아타나시우스와 키릴로스 같은 걸출한 지도자들이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알렉산드리아는 3-4세기 교회의 스승들이 많았습니다. 그리스 출신 클레멘트와 그의 제자 오리겐 등이 대표적인 학자입니다. 하지만 3세기 말 로마로부터 피비린내 나는 핍박을 받으면서 수많은 콥트교도들이 순교했습니다. 핍박은 이른바 ‘은자(隱者)’의 삶을 발전시켜 사막의 수도원운동 등 독특한 콥트 기독교의 정체성을 형성했다고 합니다.

총신대 라은성 교수는 “콥트교회 역사 자체가 고난의 연속이었다”며 “교회가 시작된 때부터 이집트 문화 속에서 어려움을 겪었고 4-5세기에는 유대파와 이교도 등과 싸웠다”고 말했습니다. 이슬람이 지배적인 이집트에서의 기독교는 주류 무슬림들에게 극도의 차별을 받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카이로 부근 협곡 ‘성 시몬 동굴성당’ 부근에 ‘자발린’(쓰레기 마을)입니다. 무슬림들이 버린 쓰레기를 처리하면서 사는 마을인데 3만5천이라는 꽤 규모가 큰 마을입니다. 내년에 이집트에 가면 그곳에 방문하는 것이 좋습니다. 콥트정교회는 풍습이 독특한데, 콥트교회에서 지키는 성탄절은 1월 7일이고 성탄 40일 전부터 단식을 한다고 합니다. 또 부활절이 오기 전 55일간 단식을 한다고 합니다. 낮에 음식물 섭취를 하지 않고, 육식을 피하고 올리브유로 요리한 음식만 먹습니다. 또 콥트정교회 교인들은 보통 태어나 어릴 때부터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기억하는 의미, 그리고 일평생 기독교인으로의 신앙과 정체성을 유지하겠다는 의미로 손목 안쪽에 하늘색 십자가 문신을 새기고 평생을 산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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