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 은 인간 구원문제와 관련...일반적으론 섭리 사용

Q: 어떤 분이 기도할 때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이 예정하신 시간에 모여 오늘 이 모임을 가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라는 문구를 자주 쓰시는 데 예정이라는 말을 이렇게 써도 되는지요? -토랜스에서 김 집사

A: 많은 분들이 이 분의 기도처럼 그렇게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단어 사용은 신학적으로 볼 때 예정이라는 단어보다는 섭리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모였다”는 단어보다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오늘의 모임을 가지게 하심을 감사드린다고 함이 옳다고 봅니다. 예정은 주로 인간의 구원과 상관이 있다고 보면 좋습니다. 루이스 벌콥(Louis Berkhof)의 조직신학 책을 보면 1)이스라엘을 특별한 사역을 위해, 특별한 권리를 위해 선택하심(신4:37) 2)개인을 어떤 직무 혹은 특별한 봉사를 위해 선택하심(신18:5) 3)개인을 하나님의 자녀와 영원한 영광의 후사로 선택하심(마22:14 롬11:5)인데 주로 3번째의 구원문제와 관련하여 가장 많이 사용됩니다. 사도바울은 엡1:11절에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었다”고 말했고 엡1:4-5절에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장로교 주경 신학자였던 박윤선 박사의 “개혁주의 교리학”이란 책을 보면 예정자는 하나님 아버지이시고 예정은 기계적 필연성이나 인과법칙의 산물이 아니고 하나님의 자의적 결정으로 된 것입니다. 인생들에 대한 예정은 주로 2가지가 있는데 구원에의 선택(Election)과 멸망에의 유기(Reprobation)가 있습니다. 선택은 그 상대자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그를 구원하시기로 택하심이고 유기는 그 상대자가 죄인인고로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뜻이 그를 멸망하도록 버리심입니다. 또한 그 예정은 조건적인 것이 아니고 무조건적인 선택입니다. 그리고 한번 선택한 사랑은 변치 않으시고 그 택한 자를 궁극적으로 끝까지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학적으로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 곧 끝까지 구원이라고 부릅니다.

‘섭리’라는 단어는 예정과는 사뭇 그 사용하는 의미가 다릅니다. 박유선 박사의 개혁주의 교리학을 보면 1)하나님이 창조한 만물을 보존하심(preservato) 2)그가 만물 안에서 이미 세우신 자연법칙을 따라 만물을 작동시키는 협력(concursus)과 3)그가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왕으로서 통치(gubernatio)하심입니다. 특히 행 17장 24-29절의 말씀은 통치와 보존에 대하여 자세히 가르칩니다. 1)우주 전체(시103:19) 2)물질세계(시104:14) 3)짐승들(시104:21) 4)민족들의 일(욥12:23) 5)인간의 출생과 인생의 운명(시139:16) 6)우발적이거나 하찮게 보이는 일들(잠16:33) 7)의인들에 대한 보호 8)하나님의 백성에게 쓸 것을 공급하심(신8:3) 9)기도응답(시65:2) 10)악인들의 죄를 들춰내고 벌하심 등입니다. 그러므로 예정은 주로 인간의 구원문제에 대해 말할 때 그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구원문제외의 일반적인 일들은 주로 하나님의 섭리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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