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와 알맹이

변명혜 박사 (아주사퍼시픽대학교 교수)

얼마전 퇴근하는 길에 가벼운 교통사고가 났다. 차를 고치기 위해서 두주 정도 맡겨야 했는데 마침 그 기간에 한국에서 언니와 형부가 다니러 오셨다. 보험에서 렌트카가 커버되지만 낯선 차를 타기도 싫고 해서 뉴욕에 있는 막내가 다니러 올 때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차고에 있던 헌 차를 타기로 했다. 이십 이만 마일을 뛰었지만 프리웨이를 달릴 때 갑자기 설까봐 조금 불안한 것을 제외하고는 잘 달리는 편이다. 기능이 불편한 것보다 외관이 낡은 것이다. 헌 차를 타는 것이 불안했는지 같이 기도모임을 하는 사모님이 자기 집에 렌트해놓고 안 타는 차가 있으니 쓰라고 배려해주셨다. 내 것도 아닌 비싼 외제차를 타는 것이 부담되어서 괜찮다고 사양을 했다.

학교나 교회를 갈 때는 차가 낡은 것에 대해서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형부나 언니가 사람들을 만나러 갈 때마다 모셔다 드릴 때는 헌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이 마음이 쓰였다. 형부의 어린 시절 친구 중 한 분은 사업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자리를 잘 잡으신 장로님이셨다. 그야말로 똥차로 형부를 여러 번 그 분을 만나는 장소로 모셔다 드리면서 그 장로님이 “처제가 살림이 어려운가보구나. 미국 온지 오래 되었다면서 저렇게 헌 차를 타고 다니네” 하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물론 그 장로님이 차가 너무 낡았다고 걱정 한 것도 아니다. 물질의 풍부함을 부러워 한 적도 없고, 평생 좋은 차를 타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안해본 내가 낡은 차를 타는데 대한 다른 사람의 반응을 생각하는 것을 보며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얘, 어느 차를 타느냐가 중요하니, 그 속에 탄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하니?”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현대의 가치관은 성공을 강조하고 성공의 정의는 주로 겉으로 보이는 성취, 업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도 그 사람이 지닌 것, 즉 외모, 지위, 소유 등 밖으로 드러나는 것에 기초한다. 우리 크리스천의 삶은 주님을 따르는 것이라고 머리로도 알고 입으로도 고백하지만 우리의 삶이 얼마나 많이 세상의 가치관에 물들었는지 생각해보면 깜짝 놀랄 정도다. 우리도 좋은 차를 타는 사람을 우대하고 일류대학에 가는 아이들을 무조건 부러워하며 인품보다 외모로 사람을 쉽게 판단한다. 그리고 나의 소유나 업적이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 변변치 못하면 스스로 주눅이 들어 버린다.

요즈음에는 과일, 야채의 껍질에 영양가가 많다고 고구마, 포도를 껍질째 먹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 껍데기는 속의 내용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껍데기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속에 숨겨져 있는 알맹이다. 선물을 받으면 물론 예쁘게 포장한 선물이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포장지 안에 들어 있는 내용물이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겉사람보다 속사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신다. 겉으로 보이는 것, 드러나는 것에 마음을 쏟으며 사는 크리스천이 되기보다는 심령에 숨은 사람을 가꾸는 일에 우리의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 할 것 같다. 신학교 시절 모든 학생들의 존경을 받던 교수님께서 아주 오래된 차를 깨끗이 닦아 타고 다니시던 것을 본 기억이 난다. 내 안에 숨겨진 속사람이 주님의 은혜로 충만할 때 우리는 우리의 소유나 성취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당당하고 떳떳하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lpyun@ap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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