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힘내세요!

변명혜 박사 (아주사퍼시픽대학교 교수)

여성 사역자의 목사안수에 반대하는 보수적인 교단에서 신앙생활을 한 나는 혹시 내가 남자로 태어났더라면 목회자가 되고 싶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설교말씀을 통해 사람들의 영혼에 영향을 주어서 그들이 주님을 알고 사랑하게 하는 것이 사람으로서는 가장 귀한 일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의 소원을 아셨는지 수요예배, 어린아이들과 부모의 연합예배 설교는 부탁받은 적이 있었고 설교라기보다는 강의한다는 마음으로 강단에 섰었다. 그런데 한국에 다니러 갔을 때 작은 시골교회에서 주일 대예배 설교 초청을 했다. 나는 안수 받은 목사가 아니라고 말씀드려도 목사님은 교수들도 강단에 세운 적이 있다고, 벌써 주보에 광고를 했으니 설교를 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렇게 해보고 싶던 설교였는데 막상 할 기회가 주어지니까 얼마나 부담이 되든지 설교를 앞두고는 언니들하고 여행 중에도 노트를 들고 다니며 메모하고, 언니들 잠 방해할까봐 새벽에 살짝 일어나서 불도 못 켠 채 어렴풋한 새벽 빛 밑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기도 했다. 그때 깨달았던 것이 목사님들이 매주 설교를 준비한다는 것이 참 귀한 특권이지만 한편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하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은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부족한 것이 쉽게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우리는 앞에 선 리더를 비판하고 마치 그 자리에 내가 서면 훨씬 잘할 것처럼 생각한다. 목사님의 설교가 은혜가 안된다고 불평한다. 설교가 지루하다고도 한다. 설교 탓은 어찌 보면 설교에 특별한 은사가 있는 목사님들의 설교를 바로 바로 들을 수 있는 인터넷이 우리들의 귀를 한껏 높여 놓은 부정적인 영향이기도 하다. 성도가 줄어도 목사님 탓, 헌금이 줄어도 목사님 탓이다. 물론 교회 전체를 이끌어나가는 분으로서의 책임은 있겠지만 왜 모든 것이 목사님 탓이어야 하는 것인지를 생각해봤다.

“마켓팅에 물든 기독교”를 쓴 옥성호 씨의 말처럼 세상기업 운영 철학이 교회에도 많이 들어와 있는 것이 사실인 듯하다. 목사님은 목양이 가장 우선이며 인품이 가장 귀한 덕목이어야 하는데 목사님을 기업체 CEO(사장)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리더십에 관한 책을 쓴 블랙커비는 목사에 대한 기대가 CEO 모델로 바뀌면서 훌륭한 리더십에 대한 교회의 평가가 달라졌으며 교인 수, 헌금 액수, 건물로 목사의 능력이 평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회의 세속화가 가져온 또 하나의 현상이다. 주님을 향한 소명이나 헌신, 성도를 향한 사랑보다는 생산해내는 결과에 따라 사역을 평가하고 목회를 평가하는 것이다. 만약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사역을 현대 교인들이 목사님들에게서 보기 원하는 성공적CEO 모델로 평가한다면 예수님은 아무 교회도 청빙하지 않을 아주 무력한 사역자라는 평가를 받으셨을 것 같다. 도대체 예수님이 얼마나 무력했으면 제자들이 식사할 시간도 없을 정도로 예수님을 따라 다니던 수많은 군중들이 다 떠났단 말인가? 또 삼년 동안 열심히 했던 제자훈련은 얼마나 비효율적이었기에 핵심제자 열두 명마저도 다 도망가고 말았을까?

리더로서 아무 것도 이루어 놓은 것이 없는 것 같은 분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셨다. 그러나 그 분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셨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구원을 이루셨다. 물론 부활이 있었기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승리하신 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의 평가와는 차원이 다른 나라이다. 그의 나라를 위해 이 땅위에서 목회의 소명을 갖게 하셨고, 그의 교회를 위해 늘 애쓰는 자신의 종들이 세상의 성공적 기준에 따라 마구 판단 받는 것을 보시는 예수님의 마음은 무척이나 쓰리고 아프실 것 같다.

이미 너무 많은 업무와 책임으로 지쳐있을 우리의 목사님들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한 눈길, 위로의 한마디, 그리고 혹시라도 부족한 부분으로 생각되는 것을 하나님께서 채워주시기를 구하는 기도이다. 조지 바나의 설문에 의하면 이미 90%의 목사님들이 자신들은 리더십의 은사가 없다고 생각하고 마음에 부담을 갖고 계시기 때문이다. lpyun@ap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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