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창수 목사 (남가주사랑의교회)
중국의 시사평론가인 장지엔펑이 쓴 “인생의 지혜가 담긴 111가지 이야기”에 이런 글이 나옵니다. 미국을 방문한 한 중국 여류작가가 뉴욕의 거리에서 꽃을 파는 노부인을 만났습니다. 낡은 옷을 걸친 노부인은 몸은 매우 허약해 보였지만 얼굴은 자상하고 기쁨에 넘쳐 보였습니다. 여류작가는 꽃을 한 송이 고르며 물었습니다.
작가: "기분이 좋아 보이시네요?" 노부인: "왜 아니겠어요. 모든 것이 이토록 아름다운데요." 작가: "당신은 번뇌를 달관할 줄 아는가 보군요. 고통이나 고민에 대해 마음 편히 생각하는 재주가 있으신 것 같군요." 여류작가는 별 생각 없이 말했습니다. 하지만 노부인의 대답에 작가는 크게 놀랐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성 금요일은 전 세계의 가장 불행한 날이었죠. 하지만 예수님은 사흘 후에 부활하셨어요. 불행을 만났더라도 사흘만 기다리면 모든 것이 회복될 거예요." 슬픈 일이 있을 때 사흘을 기다린다... 평범하지만 얼마나 철학적인 생활방식입니까?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고통을 당했을 때, 소망이 없는 것 같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 슬픔과 고통 중에서 인내하고 기다린다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힘을 내서 기다리다가도 곧 지치게 되고, 문제가 빨리 안 풀리면 쉽게 좌절합니다. 낙심이 원망이 되고 마음에 분노가 쌓이면 영과 육에 병을 얻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고귀한 생명을 포기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어떤 고통이나 번민에도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든지 결론이 난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올 이 고통의 끝을 기쁨으로 맞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무엇을 얻고자 하는 사람에게 기다림은 피할 수 없는 필수 코스입니다. 언젠가 화랑에서 놀라운 풍경 사진을 보았습니다. 누구의 발자국도 없는 데스밸리의 사막 한 가운데에 돌멩이 하나가 물음표를 그린 사진이었습니다. 이 환상적인 장면을 찍기 위하여 아마도 사진작가는 사막에서 살인적인 날씨를 견디며 오랜 시간을 기다렸을 것입니다. 많이 기다렸기에 기쁨도 컸을 것입니다. 아기를 잉태한 엄마는 10개월의 기다림 끝에 생명을 낳는 기쁨을 누립니다. 신앙도 기다림의 여정입니다. 그러나 아무 목적 없는 기다림이 아닙니다. 무작정 기다리는 것도 아닙니다. 기다림의 목적과 대상이 분명하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 기다림을 포기하고 ‘우리’를 인도할 금송아지를 만들게 됩니다. 신앙의 기다림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능동적인 기다림입니다. 새 힘을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기다림입니다. ‘여호와를 믿고 기다리는 자가 새 힘을 얻는다’(Yet those who wait for the Lord will gain new strength, 사 40:31).
지금 깊은 슬픔 가운데 있어서 힘드시나요? 십자가의 죽음 사흘 후에 영광의 부활이 있었던 것처럼, 고통의 시간을 믿음으로 기다리면 기쁨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것을 믿는 사람은 고통 가운데서도 기다림을 평안함으로 감당할 수 있습니다. 부활절을 지낸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부활의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고통의 끝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기다림으로 부활의 예수님을 만난 사람을 그 고통이 기쁨으로 바뀌는 것을 경험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매일 부활의 주님을 기다리시나요? 오늘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