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창수 목사 (남가주사랑의교회)
아버지와 4살 난 아들이 기차를 탔습니다. 아버지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창문 밖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고 아들은 기차 안에서 난장판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승객들이 소란을 피우는 아들을 방치하는 아버지에게 참다못해 한마디 했습니다. ‘여보세요. 아이를 잘 돌보세요. 아이가 너무 소란을 피워 남에게 폐를 끼치고 있어요.’ 아버지가 정신이 돌아왔는지 승객들에게 거듭 사과를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경황이 없어서요. 용서해주세요. 사실 이 아이의 엄마가 암으로 죽었어요. 아이는 엄마의 죽음을 알지 못해요.’ 그 말을 들은 승객들은 소란을 피우는 아이와 그 아이를 방치한 아버지를 측은히 여기게 되었고, 알지 못하고 비난한 일에 대해 오히려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고 합니다.
‘이해’는 영어로 ‘understand’(언더스탠드)입니다. ‘understand’(언더스탠드)는 ‘under’(아래)와 ‘stand’(서 있다)의 합성어로 ‘아래에 서 있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내 눈높이를 낮추어야 그 사람의 입장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내 눈높이에서 남을 아래로 내려다보기 시작하면 남을 이해하기보다는 오해하거나 우습게 여길 수 있습니다. 또한 아메리칸 인디언 속담에 ‘남의 신을 신고 걷고 십 리를 걸어가 보기 전에는 그 사람에 대해 말하지 말라’(Do not judge a man until you have walked a mile in his shoes)는 말이 있습니다. 논어에는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성경은 ‘미련한 자는 남을 이해하려 들지 않고 자기 의견만 내세우기 좋아한다’(잠18:2, 현대인번역)라고 말씀합니다. 이해하지 못하면 잘못 판단하는 실수를 범하기가 쉽습니다. 내 기준으로 판단함으로 인한 오해와 갈등이 생깁니다.
어느 교인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우리 교회 케어사역(CA-RE Ministry) 중에 암환자들을 위한 음식을 만드는 만나사역이 있습니다. 여러 헌신된 봉사자들이 매주 모여 암환자들을 위해 기도하며 음식을 만들어 배달해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봉사자가 어느 암환자 집을 방문했을 때 병에 담아 배달한 국이 손도 대지 않고 상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봉사자는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버려야 해서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왜 국에 전혀 손을 대지 않았는지, 입맛에 맞지 않았는지, 조심스럽게 물어보았습니다. 암환자는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힘이 없어 병을 열지 못해 먹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고 봉사자는 마음이 뭉클했고 섬김에 대하여 다시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봉사자는 어려운 가운데 시간을 내어 기도하며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짜거나 맵지 않게 음식을 만들어 하나님의 사랑으로 아픈 사람을 섬기는 것을 기쁨으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음식이 전혀 손을 대지 않은 채로 상해서 버려지는 것을 보며 마음이 상했습니다. 자신의 정성을 몰라주는 것 같아서 좀 섭섭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암환자가 기력이 없어 병을 열 수 없어 못 먹은 것이라는 것은 상상도 할 수도 없었습니다. 작은 오해와 섭섭함은 저들의 사랑과 정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해(understand)의 부족이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섬김도 그 대상을 언더스탠드(understand)하지 못할 때에는 오해를 가져옵니다.
올해 남가주사랑의교회는 더 열심히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섬기려고 합니다. 그런데 누구를 섬기려면 먼저 대상을 언더스탠드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어떻게 언더스탠드를 바로 할 수 있을까요? 우리 예수님은 언더스탠드(understand)의 대가이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이해하시기 위해 우리 곁으로 오셨습니다. 하늘보좌를 버리시고 자발적으로 낮은 곳으로 오셨습니다. 우리의 못남을 아시면서도 절대 우월한 눈길로 우리를 내려다보지 않으시고 부정적으로 보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우리들의 세밀한 부분까지도 관심을 가져주시고, 배려해주시고, 끝까지 사랑해 주십니다. 겸손과 사랑으로 섬겨주십니다. 저도, 성도님들도 예수님처럼 먼저 우리의 이웃을 언더스탠드하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처럼 내 이웃을 내려다보지 않고 그 입장에 서서 이해하는 ‘언더스탠드 맨’이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