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창수 목사 (남가주사랑의교회)
오랜만에 연필로 글을 써보았습니다. 요즘엔 연필보다는 볼펜을 더 많이 사용하고, 심지어 스마트폰과 같은 디지털(digital) 매체가 연필을 위협하고 있지만 아직도 연필은 우리에게는 중요한 물품 중 하나입니다. 연필의 총 길이는 지우개를 포함해서 고작 7.67인치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작은 연필이 가진 잠재력은 참으로 무궁무진합니다. 연필 한 자루로 56km의 줄을 그을 수 있고, 4만5천 단어를 쓸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연필 두 자루만 있으면 한 편의 장편소설을 쓸 수 있다고도 합니다. 크리스천들은 영적인 연필과 같습니다. 우리는 연필처럼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때로는 세상의 풍조 속에서 과거의 유물처럼 불필요한 존재 같이 취급을 당하기도 하지만 우리 크리스천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와 재능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은사와 재능으로 섬겨야 할 대상과 이루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연필이 연필의 역할을 잘하려면 먼저 심을 덮고 있는 외피가 깎여야 합니다. 날카로운 칼로 깎기거나 자동 연필 깎기 속으로 몸이 들어가서 깎여야 합니다. 깎이어 심이 드러나게 해야 합니다. 깎이는 것은 아픔입니다. 덜 깎이면 심이 무디고 너무 깎이면 심이 부러집니다. 알맞게 깎여야만 연필은 제구실을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도 영적으로 깎여야 합니다. 자아가 깎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깎이어야 합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쓴 뿌리가 뽑히고, 분노와 교만, 쓸데없는 자존심이 깎일 때 우리는 예수님을 닮은 제자가 될 것입니다. 연필에는 조그만 지우개가 달려 있습니다. 지우개는 연필의 한 부분입니다. 지우개는 연필이 쓴 틀린 글씨나 모양을 고쳐줍니다. 연필의 모든 실수와 잘못을 깨끗이 지워주고 다시 쓸 기회까지 줍니다. 그러나 연필이 실수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솔직히 인정하고 지우개의 도움을 요청해야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지우개는 연필이 예쁜 글씨로 쓰임을 받을 수 있도록 조용히 연필의 실수를 덮어줍니다. 연필과 같은 우리 인생은 실수를 많이 합니다. 영원히 지우고 싶은 부끄러운 일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실수와 실패를 솔직히 인정하고 고백하는 자에게는 다시 새롭게 시작하여 새로운 미래를 쓸 수 있도록 용서라는 지우개로 인생의 얼굴을 깨끗하게 지워주십니다.
연필의 핵심 역할을 감당하는 것은 가운데 박힌 심입니다. 연필의 겉모양이 아무리 화려하고 아름다워도 그 중심에 심이 없으면 쓸모없는 나뭇조각에 불과합니다. 심이 무너지면 일정한 굵기를 유지할 수 없고 심이 골아서 자주 부러지면 연필의 몸은 계속 깎이는 고통을 겪습니다. 또한 심이 중심에 제대로 박혀 있지 않아도 제구실을 못합니다. 심의 두께와 칼라가 연필의 질과 용도를 결정합니다. 그러므로 연필심이 연필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크리스천들에게 영적인 심은 내면의 세계, 즉 인격입니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은 겉의 화려함보다 내면의 아름다움이 더 중요합니다. 예수님처럼 온유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남을 나보다 귀하게 여기는 겸손함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함으로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끝으로 연필은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연필의 크기나 심의 질 그리고 지우개의 성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연필은 누군가의 손에 들려져야 합니다. 누군가의 엄지와 중지 그리고 검지 사이에 쥐어져서 움직여져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쓰임을 받는 존재가 되어 걸작을 쓸 수 있습니다.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인생들입니다. 테레사 수녀는 우리가 ‘하나님의 손에 잡힌 몽당연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보잘것없는 인생일지라도 예수님의 손이 우리의 인생을 움직이면 우리는 하나님의 도구가 됩니다.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몽당연필 같은 인생이 걸작 인생으로 세움을 받습니다. 우리 인생의 연필심이 하나님께 쓰임 받아 다 닳게 되는 순간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 사랑의 손으로 우리를 당신의 품으로 옮겨주십니다. 모든 성도들이 끝까지 예수님의 손에 쥐어진 연필이 되어 심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쓰임 받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