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령 목사(캄보디아선교사)
[월] 경건한 슬픔(고후7:2-16)찬495장 경건한 슬픔은 신자 여정에 항상 필요한 중요한 영양소입니다(10). 이 근심으로 신자는 영적 자양분을 공급받아 성숙한 사람으로 자라기 때문입니다. 어떤 유익인가요? 첫째, 7가지 유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간절성 곧 진지해지며 자신을 깨끗이 하려고 노력하고 의분을 가지며, 두려움 곧 영적 경각심을 가지며 인내로 갈망하는 관심을 가지며 그리고 의가 나타나기를 진지하게 기다리게 됩니다. 우리의 본 바울은 경건한 근심이란 영양소를 공급받아 사역했습니다. 둘째, 그러나 사망에 이르는 근심을 가지면 불신앙으로 시작해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이스라엘 1세가 광야생활에 실패한 가장 큰 원인은 불평과 원망으로 표현된 불신앙이었습니다. 신자생활에 감사치 않는 마음과 태도와 말은 치명적이 될 수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며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이 마침내 생명에 이르게 합니다. 이런 슬픔으로 충만합시다. [화] 바울의 소망(고후3:12-18)찬432장 바울의 소망은 새 언약의 영광에 참예함에 있었습니다. 모세가 본 영광이 바로 그리스도인 것은 그가 바로 영광의 실체였기 때문입니다. 어떤 소망입니까? 첫째, 구약사람들은 두려움 때문에 영광을 목격한 모세를 볼 수 없었지만 그 영광의 실체이신 그리스도를 보는 신약사람들은 더 큰 두려움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이 기쁨으로 바꿔진 것은 그리스도 안에 가리었던 수건이 벗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변화시키신 것입니다(중생). 둘째, 성령의 자유가 있었습니다. 주가 영이란 말은 승천하신 주님이 성령 안에서 일하시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세상의 모든 성령의 역사는 주님의 역사입니다. 성령이 역사하는 곳에 진정한 자유가 일어납니다. 셋째, 영광에서 영광으로 나가게 하십니다. 죄에서 죄로, 사망에서 사망으로 떨어진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음에서 믿음으로, 은혜에서 은혜로 나가 점점 그리스도를 닮게 하셨습니다. 그를 깊이 알아갑시다. [수] 그리스도인의 만족(고후3:5)찬210장 그리스도인의 만족은 어디서 나옵니까? 언약의 탁월함을 주장하는 사도는 하나님께로 오는 만족을 누리라고 권합니다. 첫째, 그의 만족은 복음에 근거를 두었기 때문입니다. 율법과 복음, 옛언약과 새언약을 대조하지만 비교적 우월성을 넘어 복음의 근본적 본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에서 모세, 아론의 만족이 여호수아보다 더 나은 그리스도에게 있었습니다. 그림자와 실체의 비교처럼 복음이 없는 옛언약은 더 이상 생명없는 것을 주장한 것입니다. 이것은 만족의 근원적 주제로 나가게 합니다. “자기냐, 하나님이냐”라는 문제는 에덴동산에서 벌써 일어났었습니다. 선악과를 먹고 생긴 분별력은 사망을 가져왔지만 생명나무의 실체이신 그리스도를 먹은 신자의 분별력은 하나님에게서 왔기에 참 만족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족케 한 것만이 신자를 만족시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목] 정상적 신자(갈5:16)찬175장 정상적 신자의 삶의 실마리는 성령과 육체의 선택으로 요약됩니다. 성령 받은 신자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첫째, 성령을 따르면 생명의 열매를 맛보나 육체를 따르면 사망을 맛봅니다. 이것은 좁은 길과 넓은 길의 선택입니다. 첫째, 그리스도를 알기전 우리는 그냥 있어도 육체의 부패성을 따르는데 익숙해 항상 사망의 열매인 음행, 더러운 것, 호색, 우상숭배, 주술, 원수맺는 것, 분쟁, 시기, 분냄, 당 짓는 것, 분열, 이단, 투기, 술취함, 방탕함 등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성령을 모신 후 성령을 따를 때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를 맺도록 돼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성령을 따라 행함이 우리가 집중할 일이라고 합니다. 둘째, 성령을 따라가기만 하면 육체의 열매는 자연히 사라집니다. 이것이 복음 안에 약속된 영광스러운 경험입니다. 이 약속을 주장합시다.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금] 자기를 지키라(갈6:11-18)찬518장 자기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살펴야 합니까? 첫째,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을 살펴야 합니다. 인간의 부패성(정욕과 탐욕)은 언제나 성령의 소욕을 대적합니다. 바울은 씨를 심는 비유로 육체를 심으면 사망, 성령을 심으면 영생(의 풍성함)을 반드시 얻는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롬8장 내용과 같습니다. 성령을 따르기만 하면 어떠하든 반드시 영생의 열매를 경험하게 하십니다. 둘째, 자기 일을 살펴야 합니다(4). 율법과 믿음의 첨예한 교훈을 강하게 주장한 바울의 복음은 신자의 삶에서 환경이나 다른 조건보다 그 자신의 자아에게로 돌립니다. 자아, 자기, 육신, 육체로 표현된 죄악의 부패성(살크스)을 어떻게 취급하느냐가 관건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범죄를 보면 먼저 자신을 돌아보라고 하며 자기 일을 살피라고 하고 스스로 속지말라고 당부합니다. 21세기의 혼란 속에서도 나의 갈 길은 바로 자아부인에 집중하는 일이어야 합니다. [토] 율법의 역할(갈3:24)찬519장 율법을 초등학교 교사로 비유한 것은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잘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율법과 복음은 구약과 신약, 모세와 예수님을 대조해 그 불연속성을 설명합니다. 이 말은 구약의 율법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오직 복음으로만 구원받음을 강조합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라면 복음은 죄를 처리할 뿐 아니라 율법의 요구인 의, 인, 신을 완성하는 독특성을 가집니다. 대학교수가 아닌 초등교사로 비유한 것은 율법을 통할 때 복음으로 쉽게 나가도록 그림을 그리듯 깨닫게 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있을 때 우리가 죄인임을 알게 되고 자기를 잘 살필 수 있습니다. 죄인으로 전적무력함을 인정하고 자기 노력의 불가능성을 알고 항복하고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를 받아들이는 믿음을 갖게 합니다. 성령은 초등교사의 자상한 가르침처럼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이끌어 가십니다.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성령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