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변화의 삶(막9:1-13)찬204장 변화산에서 변형된 주님의 영광의 모습은 재림하실 주님의 형상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의 서신에서 성경의 신적권위를 말하면서 이 사건과 대조시킨바 있습니다(벧후1:16-17). 이것을 본 세 제자의 변화는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첫째, 마음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는 고백이 증거합니다 그의 영광을 주목할 때 그의 형상으로 화하여 가는 원리(고후3:18)가 여기에도 적용됩니다. 그 때 그들에게 일어난 극적 변화는 그리스도안의 참 만족이었습니다. 장소와 난관이 문제가 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주의 임재를 접한 사람들의 공통된 고백이었습니다. 둘째, 주님 중심한 생활로 변했습니다. 상황이 어찌하든 주님을 중심하고 거기에 안주하려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완전한 피난처는 그리스도 안입니다. 그리스도 안의 영적 변화는 날마다 추구해야할 우리의 목표가 돼야합니다(롬12:1-2). [화] 능력의 삶(막9:14-29)찬210장 능력의 삶은 믿음으로 되는 것을 본문은 어떻게 보여줍니까? 첫째, 할 수 있으면 해달라”(23)는 식의 부탁은 주님을 아주 경멸하는 무서운 불신앙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믿고 일사불퇴 하는 백부장의 믿음을 크다하셨습니다. 구원도 믿음으로, 구원의 삶도 믿음으로, 성령충만도 믿음으로, 이웃사랑도 믿음으로, 그리고 영혼을 구원함도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무슨 상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둘째, 최소한의 믿음일지라도 주님은 일하십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음을 도와주소서”(24)라는 이 믿음은 말씀에 달라붙을 때 일어나는 반응입니다. 주님의 책망을 들었을 때 그 순간 성령이 일하여 진실된 믿음을 고백하게 했습니다. 성령이 일하심으로 믿음이 생기고 믿음으로 나갈 때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도매금으로 넘어가지 않고 개별적으로 믿을 때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믿음의 역사를 이룹시다. [수] 믿음의삶(막10:1-52)찬192장 소경 바디매오의 믿음은 자기를 구원할 수 있는 구원하는 건강한 믿음이었습니다(52). 그 믿음은 세 가지 요소를 포함합니다. 첫째,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믿음의 대상으로 삼았고 그를 무조건적으로 택하고 믿었습니다. 메시야가 예수라는 사실의 절대 믿음으로만 구원을 이룹니다. 기독론적 고백이 분명치 않은 자는 기초가 없는 사람이기에 요동합니다. 둘째, 거기에 자기를 던졌습니다. 방향을 정한 그는 어떤 장해가 몰려와도 물러설 수가 없었습니다. 믿음의 길에 만나는 모든 문제는 그에게로 달려갈 수 있는 징검다리일 뿐입니다. 셋째, 그는 소원을 내놓았습니다. 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는가 라는 질문에 즉시 그의 마음에 품은 보화 같은 소원을 내놓았습니다. 네 믿음이 네 소원을 이룬다고 선언하실 때 그는 문제를 해결 받았습니다. 우리 속에 소원을 두고 행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정말 기이하십니다. 주를 위한 소원으로 가득 찬 사람이 되는 것이 복됩니다. [목] 기도의 삶(막11:12-26)찬184장 본문을 통해 기도의 어떤 교훈을 배웁니까? 첫째, 성전청결사건을 통해 그리스도는 자신의 성전됨을 주장하시며 기도의 중요성을 가르치셨습니다. 지금 이 보좌는 신자의 마음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할 이유가 이것 때문입니다. 둘째,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내지 못할 때 저주하심으로 말라버리는 사건은 기도의 교훈을 가르치심입니다. 어떻게 기도해야하나요? 1)문제의 산을 향하여 믿음으로 명해야합니다. 이 산을 바다에 들리어 던지라고 해야 합니다. 구체적 기도의 제목 곧, 생선, 알 그리고 떡 세 덩이를 달라고 구해야합니다. 2)믿어야합니다. 주님과 그의 약속과 전능하심을 신뢰하고 받아들이고 위탁하는 것입니다. 구하는 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는 일은 감사와 찬양으로 나타나야합니다. 3)용서해야합니다. 기도응답의 방해는 죄입니다. 그 죄도 하나님의 교통을 막는 용서치 않는 마음입니다. 영생의 흐름을 차단하는 거침돌을 제할 때 기도가 응답됩니다. [금] 헌신의 삶(막14:6)찬193장 그리스도인 헌신의 삶을 한 폭의 그림처럼 보여주는 본문은 헌신에 관한 무슨 교훈을 줍니까? 첫째, 베다니 한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한 여인이 옥합의 향유를 주님 머리에 붓는 일은 헌신의 삶을 잘 보여줍니다. 장년 한 사람 1년 수입인 300데나리온 되는 옥합을 깨트릴 때 주님은 자신의 장사를 기념한 제물로 받으시고 그의 이름을 궁창의 별처럼 빛나게 해주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오직 주께 부어드리는 것이 헌신입니다. 둘째, 구제보다 먼저가 주님이어야 합니다. 그때 가난한 사람을 돕지 않고 허비한다고 화를 낸 가룟 유다는 나중에 주님을 파는 자가 됐습니다. 주님에 대한 헌신은 허비가 아닙니다. 주님에게 몸을 바쳐 산 제물로 삼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 속에 생명이 있고 먼저 하나님나라를 구할 때 진정으로 구제할 수 있습니다. 이 순서가 중요합니다. “무엇이 되는 것(to be)은 무엇을 하는 것(to do)”의 원동력입니다. 그 길로 갑시다. [토] 말씀의 삶(막14:28-37)찬168장 재림을 준비하는 최상의 길도 말씀을 따르는 일이어야 합니다. 본문은 무엇을 가르칩니까? 첫째, 주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됩니다(31). 주님은 산상보훈에서 율법의 성취를 말씀하실 때 사용하신 내용을 재림의 교훈에도 사용하셨습니다. 성경의 권위성(완전성), 성경의 명료성(명백성) 그리고 성경의 성취성(종결성)을 강하게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만이 그의 백성의 반석이며 생명이며 양식이며 소망이며 빛입니다. 둘째, 말씀의 주권을 따라가야 합니다(32). 성자와 성령이 성부와 일체이심으로 구체적인 재림날짜를 아실 텐데도 아버지만이 아신다고 말씀하신 것은 주권인정의 본입니다. 모든 것에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고 그가 하신 것만 하셨다고 하신 성자는 전적으로 아버지께 복종하시고 그만을 높이셨습니다. 신자는 주님의 주권을 인정할 때 평안하고 행복합니다. 말씀을 대할 때마다 그 권위를 따라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