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인자의 권세(막2:1-12)찬14장 본문에서 보이는 그리스도의 자기주장을 통해 우리는 2가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한 중풍병자를 고치신 사건은 기적적 치료보다 주님의 돌발적인 자기주장이 더 중요합니다. 그 자신이 다니엘예언에 나온 인자(단7:13)로 하나님의 신성을 가지신 중보자란 선포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죄를 사하는 분이시란 주장과 함께 그 의미를 증폭시키심으로서 자신의 하나님 되심을 강조하심입니다. 우리는 이 놀라운 자기주장을 믿는 사람입니다. 둘째, 이 선포가 당대 서기관들에게 미친소리 내지 신성모독으로 평가됐으나 사실이었습니다. 인자로서 그는 십자가 위에서 자기백성의 모든 죄를 다 담당하시고 중풍병 같은 죄에서 완전한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를 믿는 자는 영육이 온전해지는 완전치료가 일어납니다. 이 인자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는 우리는 진정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 확신으로 살아갑시다. [화]안식일의 주인(막2:13-28)찬57장 안식일의 진리가 점점 희석돼가는 우리 시대에 본문의 가르침은 우리 가는 길의 밝은 등불과 같습니다. 첫째, 부르신 분을 잘 알아야합니다(13). 주님의 부르심은 절대권위의 소명입니다. 그러므로 부르실 때 목적이 있고 부름에 응할 수 있는 힘을 주시고 그 목적을 이루는 은혜를 주십니다. 나를 부르신 부름을 따라 효과적인 사역을 이뤄야 합니다. 둘째, 새 시대에 맞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22)는 선포는 어두움을 광명으로 밝히는 낮과 같은 시대란 것입니다. 이것을 주님은 혼인잔치 날이라고 했고 바울은 구원의 날, 은혜의 날 곧 희년이라고 했습니다. 그날에 교회는 새시대에 맞는 새로운 삶을 요구받습니다. 참 안식을 누리는 것입니다. 일보다 안식이 더 중요합니다(28). 내용이 없는 껍질의 아름다움은 추함이고 독입니다. 이 가르침을 귀히 여깁시다. [수]귀신을 대적하자(막5:1-20)찬393장 귀신의 활동은 그 나라의 임함을 증거하는 본문은 어떻게 귀신을 대적하라고 가르칩니까? 첫째, 귀신은 첫 아담을 넘어뜨린 시험하는 자인 마귀를 가리킵니다. 본래 천사장이 자기 처소를 지키지 않다가 저주받아 쫓겨나 세상에서 활동하도록 허락받았습니다. 때로는 천사의 영광으로, 때로는 우는 사자처럼 공략해 시험에 들게 합니다. 둘째, 마귀는 언제나 손해를 끼칩니다(13). 돼지 2천마리에게 들어간 것만 보더라도 마귀는 두루 행하는 자이고 거처를 찾아 안주하려 하고 들어가 손해를 보게 합니다. 셋째, 그러나 주님의 말씀 앞에 쫓겨납니다(19). 고침받은 그 사람에게 주님은 먼저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가정의 선교사로 돌아갔습니다. 부모와 자녀가 복음화 되는 것이 제일 급선무입니다. 아담 이후 재림까지 먼저 가정의 말씀화, 가정의 경건화, 가정의 성령 충만화가 우선입니다. 이곳으로 갑시다. [목]앙망하는 믿음(막5:24-34)찬410장 12년간의 만성혈루증으로 고생하던 한 여인이 많은 의사와 좋은 약을 다 써보았으나 돈만 탕진하고 중해진 절박한 상황에서 완전히 치료된 것이 앙망의 믿음으로 나타났습니다(5:28). 첫째, 그는 주님의 소문을 듣고 생각의 날개를 주님에게로 펼쳤습니다. 주님을 주목 만해도 믿음이 발생하고 능동적인 자세로 주님의 옷가에 손만 대어도 나으리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이것은 주님을 앙망하는 과정에 생긴 결정체입니다. 성령이 이 사색의 과정 속에 역사하신 것입니다. 둘째, 종전에는 주님이 친히 수동적으로 치료받게 하셨으나 여기서는 기도자의 작은 믿음의 행동으로 일하셨습니다. 자발적인 겸손한 생각을 그대로 시행하자 즉각 치료되었습니다. 앙망의 신앙은 이런 씨앗을 가집니다. 물론 그 능력이 나간 것을 주님이 벌써 아셨습니다.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앙망의 믿음이 역사를 만듭니다. [금]위험한 전통(막7:1-13)찬189장 본문은 인간적 전통의 위험성을 어떻게 보여줍니까? 첫째, 사람의 교훈과 하나님의 말씀의 대립은 에덴동산 때부터 있어온 싸움입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는 마귀의 말을 듣고 받아들일 때 눈은 뜨여 지혜로워졌지만 인본주의적 지혜로 하나님을 항상 대적하는 지식으로 떨어졌습니다. 그 역사는 에덴에서 쫓겨난 후에도 온 인류에게 전승되어온 죄의 뿌리였습니다. 인간교훈이 하나님의 교훈을 대신하고 자기주의, 자율주의가 되어버렸습니다(7). 둘째, 유대인의 전통은 말씀의 적용으로 시작됐으나 말씀을 폐하는 죄의 온상이 됐습니다(9). 안식일 성수를 위해 만든 랍비의 29개 적용조항이나 손 씻는 의식은 모두 내용보다 적용에 무게를 두는 형태가 됐습니다. 그 결국은 사망이며 심판입니다. 말로는 주를 존경하나 마음으로는 배척하는 외식주의로 나가게 했고 경건의 모양을 띤 불경건이 지배는 비참한 삶을 만들었습니다. 이 외식을 경계합시다. [토]마음의 숨은 죄(막7:14-20)찬194장 예수님이 친히 겉과 속을 구분해 마음의 내부를 보여준 분문은 마음의 숨은 죄에 관해 무엇을 가르칩니까? 첫째, 신자의 마음을 영 혹은 영혼으로 지성, 감정, 의지가 머무는 좌소라고 합니다. 주님은 마음속에 있는 악한 생각이 밖에 있는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악한 생각은 12가지 성향 곧 음란,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독, 속임, 음탕, 질투, 비방, 교만 그리고 우매함을 가집니다. 하나가 열둘로 새끼를 치며 열둘이 또 다른 무수한 죄와 죄책과 사망의 새끼를 치듯이 죄악의 승법번식이 일어납니다. 둘째, 그 특징은 음란(불신실)입니다. 성경은 우상숭배를 영적음행으로 보고 이 세대를 음란하다고 평가했습니다. 이것이 자아의 본질로 여기서 모든 죄가 여러 모양으로 나타납니다. 바리새인의 외식에서 벗어나는 길은 자기를 부인하는 길 뿐이다. 그러므로 말씀에 근거한 믿음만이 참 구원에 이를 수 있게 합니다(시1:3). 그 길 로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