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사랑이란?(고전13:1-13)찬486장 하나님의 사랑을 본문은 무엇이라 말합니까? 첫째, 믿음과 소망과 함께 연결된 사랑이 그리스도인 생활의 최종목표입니다(1-2). 그러므로 믿음으로 시작한 삶은 사랑의 열매로 표현돼야합니다. 결코 양보될 수 없는 사랑을 이루려고 나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사랑을 구함으로 생명의 활동을 누려야 합니다. 둘째, 사도는 구속의 중심이고 목표인 사랑을 13가지로 설명하면 인내, 온유, 시기 없음, 겸손, 예의, 이타주의, 성내지 않으며, 악한 생각을 하지 않고, 견딤, 신뢰, 소망입니다. 이는 성령의 열매로 정리해도 되고 하나님의 형상인 의인신으로 요약되기도 하고 여호와의 선과 진실로 정리할 수도 있습니다. 셋째, 이 사랑은 장성한 사람이 가질 특징입니다. 생각과 말과 행하는 것이 아이 같은 사람은 연단을 통해 그리스도의 성품을 갖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하는 자리로 나가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아 그 사랑을 나타냅시다.
[화] 중보자의 사역(요1:35-51)찬364장 전도에 있어 그리스도는 어떤 일을 하십니까? 첫째, 전도의 최종 쟁점은 와서 보아(39) 그리스도를 인격적 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과 사도의 전도방법이었습니다. 영화, 간증 등 수단들을 사용해도 그 목표는 그리스도를 와서 보라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도는 언약백성을 찾는 일이고 개인적으로 그리스도를 만나도록 해주는 일입니다. 둘째, 나다나엘의 구원은 그 내용이 풍성했습니다(51). 의아심으로 시작한 그의 구원은 그리스도의 말씀에 접해 그의 전지성을 깨달았습니다. 무화과 나무아래 있었고 장차 올 메시야를 생각한 그에게 참 이스라엘이요 간사한 것이 없다고 하신 말씀이 눈을 뜨게 해 그를 바로 알아보고 “이스라엘의 임금,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게 했습니다. 그 후 하늘의 풍성한 은혜와 진리를 공급받는 자리에 나가도록 하늘 문이 열려졌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 문을 향해 새 은혜를 구합시다.
[수] 영원한 양식(요4:27-42) 찬318장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무슨 선물을 준비하셨습니까? 첫째 영원한 양식입니다.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32)이란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의 회심과 함께 제자들을 훈련하시는 바로 자신임을 보이셨습니다. 그의 숨은 뜻은 영혼을 건지는 일입니다. 즉 자기백성을 찾는 일, 곧 전도며 선교입니다. 역시 주님은 성령을`통해 내게도 이 영생의 양식을 알리셨습니다. 둘째, 그리스도 자신이 선물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은 그들의 신앙은 직접 그의 말씀하심을 들음으로 온전한 신앙의 자리로 나갔습니다. 온전한 신앙은 말씀에 근거를 두는 것이어야 합니다. 간증을 통하기보다 성경을 직접 연구하고 준행해 맛을 본 신앙이 견고하다는 것입니다. 불같고 방망이 같고 생수 같고 빛 같은 말씀의 성격을 접한 자는 그것을 자기 소유로 삼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때 30배, 60배 그리고 100배의 결실이 따릅니다. 그 자리로 나가 오늘도 이 영원한 양식을 체험합시다.
[목] 생명의 떡(요6:30-40)찬139장 본문에 나타난 생명의 떡이란 무엇입니까? 첫째, 광야 이스라엘이 먹은 만나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상징주의입니다(31). 이스라엘은 일시적 기적의 떡으로 살았으나 새 이스라엘은 참 만나이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원히 살 수 있게 하셨습니다. 아무리 참 떡을 받아도 믿지 못하면 그 부요를 전혀 알 수가 없으며 기적을 체험해도 썩을 양식을 위해 살 수 있습니다. 둘째, 생명의 떡, 참 떡, 하늘로 내리신 살아있는 떡이란(35) 표현에 중요한 것은 수식어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영생, 진리 그리고 새 생명의 삶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신자의 삶으로 성령충만,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히는 삶을 가리킵니다. 셋째, 생명을 얻고 과거 현재 미래를 보장받는 자는 오직 믿는 자뿐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한계성에 머물렀으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참 만족을 누리고 영원한 효력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에서 믿음으로 나가 그 강한 생명을 누립시다.
[금] 죄를 이기는 삶(요7:53-8:11)찬 487장 본문은 신자가 어떻게 죄를 이긴다고 가르칩니까? 첫째, 물증이 확실한 그녀의 두려움과 수치심은(39) 마치 아담과 하와가 금단의 열매를 따먹고 생긴 수치와 같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고소할 거리로 이용했다해도 그 여인은 죄책감에 사로 잡혔습니다. 죄책에 사로잡힌 자는 요일1:9따라 자백해야하며 그 자백에는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는 믿음이 포함돼야만 합니다. 둘째, 7절의 재판과 판결은 오직 하나님의 소관이란 뜻입니다. 무분별한 판결로 하나님을 월권하는 일을 금하신 것입니다. 남을 판단할 때 하나님의 마음을 갖는 것이 우선입니다. 셋째, 양심의 가책받은 그들이 다 떠나갔을 때 주님은 자신도 정죄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간음이란 죄를 무마하는 것이 아니고 주께서 십자가의 죽음으로 담당할 것을 전제한 것입니다. 죄를 이기는 것은 용서받은 은혜의 힘에 의해 좌우됩니다. 용서받은 자의 삶은 죄와 싸우는 삶이어야합니다.
[토] 실로암 소경이 주는 교훈(요9:24-41)찬508장 본문은 어떤 교훈을 줍니까? 첫째, 실로암 소경이 눈뜬 기적이 안식일에 했다고 고소거리를 찾았습니다(31). 외식자들의 능수능란한 방법은 진리와 은혜와 거룩 뒤에 웅크리고 숨기를 잘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말만 하나님께 영광이지, 자기 영광만을 구했습니다.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려면 그를 먼저 즐거워해야만 합니다. 둘째, 소경의 양심 속에 자리잡은 확신은 이상하다는 말로 표현됐습니다(32). 우리는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진리를 따르며 오직 예수 그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확신을 이웃에게 전해야 합니다. 셋째, 처음에는 선지자로 믿던 그는 다시 오신 그 분을 만나 인자로 믿었습니다(35). 인자는 단7:13의 예언된 그 분으로 초자연적으로 오셔서 자기백성을 불러모아 한 나라를 이뤄 그 분께 바치는 이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죽음과 부활로 그 나라의 왕이 되신 그 인자를 믿을 때 구원을 받습니다. 이 놀라운 소식을 오늘도 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