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준 목사(뉴욕새생명장로교회)
[월]주님만을 의지하는 삶(시13:1-2) 신실하고 경건한 성도가 가장 괴로운 것은 하나님이 나를 멀리하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잊으셨습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신 것은 아닌지요?” 언뜻 듣기는 상당히 믿음이 없어 보이고 말도 안되는 탄식같지만 이 기도는 주님만을 의지하는 경건한 성도의 진실한 외침인 것입니다. 2절에도 “내가 나의 영혼에 경영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쳐서 자긍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하며 부르짖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나의 마음속에 경영하는 것을 쌓아 둔다”라는 뜻으로써 마음속으로 수많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가 결국 해결하지 못하고 문제를 쌓아둔다는 뜻입니다. 이 때 우리는 “어느 때까지입니까?”라고 탄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그 탄식이 주님을 더욱 깊이 만나고 결국은 주님께 더욱 감사하며 주님을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화]나를 후대하시는 하나님(시13:3-6) 신실하고 경건한 성도는 하나님이 멀리하시는 고통가운데도 오직 믿음으로 더욱 기도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의 매력입니다. 본문에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킨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나의 눈을 밝히소서!” 왜냐하면 내가 사망의 잠을 자고 원수가 나를 이겼다고 조롱하며 기뻐하는 것을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내가 죽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내가 실패하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 영광을 가리고 원수가 기뻐하는 것은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더욱 더 주님께 매달리며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는 것입니다. 결국 다윗은 이미 마음에 응답을 받고 기뻐합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후대하십니다. 후대하신다는 뜻은 내가 받아야 할 것 이상으로 넘치게 혜택과 축복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수]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시14:1-4) 시14편은 53편과 그 내용이 거의 동일한 시로 어리석은 자의 모습과 그 종말에 대해 자세히 보여줍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 나와서 신앙을 고백하고 기도하며 찬양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은혜입니다. 기도도 내가 알아서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기도하게 하시는 은혜가 먼저입니다. 내가 아무리 기도하려고 해도 하나님께서 은혜주시지 않으면 기도할 수 없습니다. 주목해야 할 구절 3절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히브리원문에 보면 강조형을 사용함으로써 다 치우쳐서 선을 행하는 자가 한 사람도 없고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주님의 은혜로 지혜로운 삶을 사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래서 죄인인 우리가 새 생명을 입고 오늘도 은혜가운데 산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요 축복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목]어리석은 자의 모습(시14:1-3) 본문에 “어리석은 자”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나발”이라고 하는데 이 단어의 뜻은 “나뭇잎이나 꽃이 시들어가고 떨어지고 색이 바라서 죽어가는 것을 의미”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즉 영적으로 표현하면 지혜와 이성 그리고 정직함과 경건함이 모두 빠져나간 사람을 말합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구원받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사는 것을 감사하면서 어리석은 자의 모습과 그 결과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고 합니다. 불신자가 되는 것은 그의 머리에서가 아니라 먼저 마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들은 마음속에서부터 괴상한 주장을 합니다. 우주에 충만하신 하나님을 자기 눈에 안 보인다고 안계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살아계심이 믿어지지 않습니까? 그리고 눈으로 보지 않습니까? 진정 믿고 주님께 나오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요 복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아멘! [금]어리석은 자의 모습(2)(시14:3) 어리석은 자는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3절에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더러운 자가 되었다”는 뜻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래서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은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 성경은 이러한 사람을 더러운 자라고 표현합니다. 이런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말씀이 믿어지지 않습니까?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이 들려지고 순종하기 위해 애쓰고 있지 않습니까?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특별히 “함께 더러운 자가 된다”고 했기 때문에 내가 누구와 함께 있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잠13:20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정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하며 말씀이 믿어지고 들려지고 순종하게 되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토]어리석은 자의 최후(시14:4-7) 어리석은 자는 회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고 악을 행하면서도 어리석은 자의 특징은 회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악을 행하기를 두려워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요, 성도들과 함께 바르게 살려고 몸부림치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릅니다. 나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고 하나님께 나올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축복입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기도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은 정죄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특별히 5절에 어리석은 자들의 종말을 보여주시는데, “거기서”-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공포가 이들을 사로잡을 것입니다. 마음이 어리석은 자, 하나님을 거부하는 자, 마음 깊숙한 곳에 두려움과 공포가 가득찬 가운데 정죄를 당하는 것입니다. 오늘 영원한 생명을 얻고 영원한 자유를 누리며 주님이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니 우리가 얼마나 복된 사람들인지요!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