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하나님 사랑의 체험(겔16:15-34)찬208장 본문은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이스라엘의 음행을 보여줌으로 감사치 않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위험을 경계합니다(22). 음행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외적인 화려함과 부요함을 신뢰함으로 찾아옵니다(15). 하나님의 선물로 우상을 만들고(16-19) 심지어 자녀를 불에 넣어 죽이는 열심으로 우상을 섬겼습니다(21-22). 이 음행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 감사 하지 않을 때 일어나는 결과입니다. 그런 자에게 주어진 소망의 길은 사랑의 회복입니다. 방자한 음부 같은 자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는 것이 특효약이며 치료책입니다(30-34). 우리 가정은 그 사랑이 마음에 부어지기를 구해야합니다(롬5:5). 그 사랑을 아는 자만이 자극적인 유혹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합시다. [화]하나님의 치료(겔16:35-52)찬217장 본문은 행음자와 같은 예루살렘의 죄악이 어떠하며 그것을 그치게 하는 하나님의 손길이 무엇인가를 보여 줍니다. 먼저, 예루살렘의 죄는 소돔 고모라보다 더 극심해 교만 때문에 복을 관리하는 능력을 상실하여 가난한 자를 용납할 틈이 없었고 자신마저 통제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해결책은 뜨거운 심판의 맛을 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말로 안 될 때 하나님은 비상수단으로 심판을 사용하십니다. 부를 빼앗아 가시고 은혜를 거두시고 수치를 당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비상수단을 동원한 치료였습니다. 매를 맞아 손해보고 회개하는 것보다 회개에 힘씀으로 성령의 은혜를 받아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경건으로 무장하는 성도가 되어야합니다. 주님의 치료를 잘 받는 가정이 됩시다. [수]하나님의 회복(겔16:53-63)찬414장 긍휼 없는 심판 중에서도 한번 약속하신 것을 기어코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루살렘이 사마리아와 소돔과 함께 포로에서 돌아올 것을 예언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만을 위한 구원이 아니라 그들을 통한 온 민족의 택한 자를 구하려는 매스터플랜은 이스라엘이 먼저 심판을 받고 스스로 죄인임을 깨달은 다음에라야 새 역사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주께로 돌아오는 민족에 그들의 원수들이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이 예언은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완전히 성취되어 지금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는 대상이 모든 민족(all nations)이고 그를 믿기 만하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자가 되도록 되어있습니다. 이 회복시대의 큰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고 감사와 순종으로 응답하는 가정이 됩시다. [목]하나님 섭리의 손(겔17:1-10)찬459장 또 하나님이 정하신 고난의 길일지라도 감사함으로 받는 믿음이 절대 필요함을 비유로 가르쳐주셨습니다. 요셉처럼 섭리를 감사함으로 받으라는 것입니다(창50:20). 첫 번 독수리인 바벨론의 느브갓네살은 백향목(유다)의 연한 순 곧 여호야긴을 잡아가고 그 자리에 시드기야를 대신 세웠습니다. 그러나 시드기야는 두 번째 독수리인 애굽 바로에게 도움을 구하다가 바벨론의 노여움을 사 죽임을 당합니다. 이 징계는 하나님의 섭리를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섭리를 믿어 참 위로를 얻으려면 하나님의 뜻을 바로 이해하고, 고난을 감사함으로 받으며, 겸손하게 인내를 배워야 합니다.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섭리의 위로 가운데 사는 가정이 됩시다. [금]하나님나라의 도래(겔17:11-24)찬362장 어제 비유를 해석한 22-24절에는 메시야 왕국의 강림을 약속합니다. 바벨론 포로 시절에도 하나님 나라의 통치는 계속되었음이 바벨론과의 언약을 세우심으로 나타났습니다. 유다 땅에서의 언약 순종에 실패한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고난 속에서 언약의 신실함을 체험적으로 배우게 하셨습니다. 마침내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이루어지는 완전한 소망은 작은 겨자씨 같이 겸손과 부요와 번성으로 예수 안에서 이루어졌고, 지금은 완성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가정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성령 안에서 그 나라의 부요를 맛보며 살아가는 의의 가정을 만듭시다. [토]심판의 개별성(겔18:1-18)찬204장 유대인의 회개치 못하는 이유를 조상에게 책임 전가 하는 그릇된 생각에서 비롯되었음을 깨우치시려고 하나님은 개별적인 심판과 구원을 단행하십니다. 의인은 자신의 의로 구원을 받음(5-9)을 확실히 하셨습니다. 이것은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을 전제로 한 것 입니다. 행함 있는 믿음이기 때문에 백보좌 앞에 서는 행위가 심판의 기준인 것처럼 보였을 뿐입니다(마25:35-40). 그러므로 구원받은 사람은 행함으로 그 믿음을 증명해야합니다. 또 악인은 자신의 악으로 심판을 받습니다. 악인의 악 때문에 자기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고(1-13) 아비의 죄와 아들의 의가 서로 무관함이(14-18) 개별적 심판의 진리를 통해 보여줍니다. 심판대 앞에 서야 할 우리 가정들은 서로 사랑하되 심판받을 자처럼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