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계시에 근거한 삶(겔12:17‐25)찬500장 구약선지자인데도 복음의 삶의 성격을 어떻게 보여줍니까? 첫째, 포악으로 가득한 땅이 황폐하게 된(19) 그 시대에 성령은 유다의 참상을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그들은 악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인 의, 인, 신은 빛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회개와 믿음으로 착하게 변화시키십니다. 둘째, 모든 묵시가 사라지는 시대를 맞습니다(22). 이스라엘의 생명은 묵시인 하나님의 말씀에 걸려있는데 묵시를 무시함은 모든 생명과 복의 원천을 무시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언이 성취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일부러 잊고 자기 힘으로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다는 자율주의의 망상에 사로 잡혔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잘되리라는 현대인의 주장은 계시를 무시한 말입니다. 계시는 구원과 심판을 동시에 말하기에 그 앞에 정직하게 서서 주의 뜻이라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리라는 겸손한 마음을 갖게 합니다. [화]말씀의 성취(겔12:1‐16)찬72장 예레미야 선지를 통해 보여진 심판과 구원은 다시 에스겔을 통해 보여졌습니다. 이 둘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성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첫째, 심판의 성취‐우상숭배의 죄 때문에 심판받은 이스라엘은 결국 바벨론 포로가 됐습니다. 칼과 기근과 지진 등으로 온 땅이 황폐하게 될 것입니다. 외적 황폐보다 더 무서운 것은 영적 황폐입니다. 하나님과 산 교제가 끊겨진 비참한 자리에 떨어져 종노릇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종말심판의 전주곡입니다. 둘째, 구원의 역사–그런 진노 중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구원을 책임지십니다(28). 그 분이 하신 구원약속은 하나도 떨어지지 아니하고 반드시 성취됩니다. 신실한 말씀 앞에 서서 그것에 성실한 자가 복됩니다. 그리스도가 오신 때부터 시작된 종말시대 곧, 우리 시대는 제도적으로 은혜를 주시는 때요 구원의 날입니다. 엄청난 구원과 심판 앞에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갑시다. [수]우리 시대의 선지자, 성경(겔13:1‐23)찬 502장 고금을 통해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파수하는 일을 주목하십니다. 본문은 그 복됨과 위험성을 어떻게 보여줍니까? 첫째, 그 위험성–묵시를 받은 선지자가 그대로 증거하지 않고 거짓된 평안을 알릴 때 백성들이 회개할 수 없었습니다. 계시를 받지 않고 자기 욕심에 끌려 말했기 때문입니다. 회칠한 무덤같은 그들에게 폭우와 폭풍으로 모두 무너뜨리신다고 하셨습니다(11‐13). 그 나라의 흥망성쇠는 선지자의 역할에 놓여있습니다. 교회의 유일한 계시인 성경을 사랑하고 그 말씀에 정직하게 서는 사람만이 살아납니다. 둘째, 그 중요성‐어두움 속의 빛처럼 그리스도인은 성경에 귀를 기울여야 살아납니다. 성경을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으려는 흐름을 경계하며 성경의존사색의 구원을 세워야합니다. 바른 성경관을 이탈하려는 우리 시대일수록 더욱 그러합니다. 성경의 절대 선지자의 역할을 인정하고 그것에 성실합시다. [목]개별적 구원(겔14:12‐23)찬204장 에스겔을 통해 하나님 백성의 구원이 어떤 성격을 가집니까? 개인적이고 독립적인 구원임을 보여줍니다. 첫째, 다니엘의 중보기도로 개인의 심판이 제해질 수 없습니다. 하루에 세 번 기도한 경건의 본인 다니엘이 구원역사에 쓰임 받았다 할지라도 그 공로로 누구를 결코 구원할 수 없습니다. 자기의 공의로 자기만이 구원을 받습니다(14). 둘째, 노아의 중보사역으로 구원받지 못합니다. 그가 당대에 의인이었을지라도 자신만이 자기 의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 영향은 그리스도인의 구원에 아무 영향을 줄 수 없습니다. 셋째, 욥의 인내의 경건으로도 남을 구하지 못하고 그 자신만이 구원받습니다. 하나님의 빛이 비추일 때 그는 재에 앉아 다시 회개하는 자가 됐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 십자가의 공로만을 믿을 때 옵니다. 에스겔을 통해 보여주신 개별적 구원진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더 선명해졌습니다. 오직 예수신앙을 따라갑시다. [금]그 사랑을 거절치 말라(겔15:1‐8)찬360장 포도나무 같은 이스라엘이 왜 불심판을 받았습니까? 첫째, 최대의 사랑을 거절했기 때문입니다(6‐7).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아는 특권을 가지고 그와의 언약을 맺었어도 이스라엘은 거절해 우상숭배에 떨어졌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 해도 이 믿음을 지키지 않을 때 그 사랑의 맛을 누리지 못합니다. 성령은 이 일을 위하여 오셔서 하나님과 그의 사랑을 깊이 알게 하십니다. 둘째, 열매를 맺지 못했기 때문입니다(2‐3). 하나님에게 복종하고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일을 하지 못하고 도리어 불순종과 배반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웠습니다. 즉, 하나님의 형상인 의, 인, 신을 나타내기보다 사탄의 형상, 불의, 무자비, 불신실성을 나타내는 도구가 됐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는 그 분과의 교제를 힘쓰기 위해 포도가지가 나무에 붙어있듯이 기도와 말씀으로 그와의 연합에 성실해야합니다. 그때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요15:5). [토]구속의 사랑(겔16:1‐14)찬495장 심판 중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낸 본문은 구속을 어떻게 보여줍니까? 첫째, 자기의 수고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절대불능에서 구속하셨습니다(3‐7). 예루살렘의 시작을 가나안, 아모리와 헷 족속이 기거하는 곳에서 시작해 나으시고 길러주신 것은 벌거벗은 신생아처럼 밖에 버려진 상태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구원 역시 시작이 미약하고 허물과 죄로 죽은 자였습니다. 이 절대가난상태를 아는 것이 복입니다(마5:3). 둘째, 그를 하나님의 소유로 삼으셨습니다(8). 발가숭이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정착 그리고 왕정시대를 통해 하나님의 언약백성을 뚜렷하게 나타내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구속은 시작부터 진행과정이 모두 은혜이므로 모든 일에 항상 기뻐하며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살전5:16‐17). 셋째, 영화롭게 하셨습니다(9‐14). 그 구속이 실질적인 영화로 나아갑니다(창12:3). 그 은혜를 힘껏 찬송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