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종말심판의 인식(겔10:1-22)찬347장 예루살렘에 임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습니다(18).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떠난 증거로서 비극 중 비극입니다. 이가봇의 슬픈 일이 되풀이된 것입니다(삼상4:21). 여기서 우리는 심판에 관한 세 가지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심판은 보좌에서 나온다는 사실입니다(1-2). 바퀴 속에서 “불을 취하라”는 명령이 나온 것을 보면 이것은 하나님이 친히 행하시는 의의 심판임이 틀림없습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심판입니다(13-15). 구약시대일지라도 심판하는 자의 얼굴이 그리스도의 사역을 가리키는 네 생물의 모습을 했기 때문입니다. 동서고금을 통해 유일한 구원주요, 심판주는 그리스도뿐입니다. 셋째, 일사분란한 순종을 따른 심판이었습니다. 심판하는 그룹들은 “각기 곧게 앞으로 행하라”(21-22)는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이 복음으로 구원받은 우리들은 종말심판의 심각성을 느끼며 복음을 힘껏 전해야 합니다. [화]교만을 경계하는 가정(겔11:1-13)찬217장 예루살렘 심판 직전에 일어난 본문은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는 계략을 꾸민 교만한 지도자들의 멸망을 예언 합니다. 그 계략을 아신 하나님은 그들을 철저하게 심판하셨습니다(5,7-11). 원수의 나라, 바벨론에게 항복하라는 메시지가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내리신 최후통첩의 메시지임을 알고 겸손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옳은데, 강퍅한 마음을 가진 그들은 백성의 마음을 이간질했습니다. 불순종에 대해 하나님은 그냥 두실 수가 없어 그들을 철저히 심판하셨습니다. 진정으로 겸손한 지도자, 섬기는 지도자를 구하는 시대입니다. 성경의 축자영감설이 점점 무시되는 때에 더욱 더 성경에 착념해 온갖 교만의 괴물과 맞서 겸손으로 세상을 정복합시다(딤전6:3-5). [수]하나님이 주신 소망(겔11:14-25)찬89장 의를 세우시는 하나님은 긍휼과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예루살렘의 멸망, 바벨론의 무자비한 압제아래 있는 이스라엘에게 소망의 메시지가 임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첫째, 그들로 성소가 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열방의 억압아래 환난을 당할지라도 하나님은 친히 그들 속에 거하시는 성소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둘째, 흩어진 그들을 모아 가나안 땅으로 데리고 오시겠다는 것입니다(17). 하나님이 친히 불러 모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의 젖과 꿀을 먹는 교회를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셋째, 심령의 부흥을 일으키시는 소망입니다. 새 신(new Spirit)을 보내어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럽고 일치하는 마음을 만들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사실상 민족적 이스라엘은 그런 은혜를 잠깐 받았을 뿐이지 진정한 소망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이루어집니다. 그 소망을 가지고 살아갑시다. [목]드러난 의(겔12:1-16)찬262장 행구를 옮기는 행동을 통해 바벨론 포로가 되는 이스라엘에 관한 말씀에서 우리는 의를 반드시 드러내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의가 드러났습니까? 첫째, 회개의 요구 속에 드러났습니다. 한 실물교육으로 그들을 자극시켜 회개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지혜였습니다. 회개는 하나님의 의 앞에 두렵고 정직히 선 자의 반응입니다. 둘째, 고백 속에 하나님의 의가 드러났습니다(16). 정황을 바라본 백성들의 양심적 고백에서 하나님의 의가 표현된 것입니다. 누가 무엇이라 해도 하나님은 구원 받는 자는 믿음의 의를, 정죄 받는 자는 심판의 의를 드러내고야 마십니다. 인간의 어떤 노력으로도 이 의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음으로 얻는 복음의 의만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주 예수에 대한 믿음으로 얻는 의를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누리는 가정이 됩시다(행20:21). [금]묵시를 무시한 시대(겔12;17-28)찬318장 우상숭배와 도덕적 타락이 심판의 중요한 원인이지만 그보다 묵시(revelation)에 대한 그릇된 태도가 더 큰 원인 입니다. 본문에는 그런 태도가 어떻게 나타나있습니까? “떨면서 네 식물을 먹고 놀라고 근심하면서 내 물을 마시 라”(18)는 표징은 묵시에 대한 무관심을 자극시켜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려는데 있습니다. 묵시에 대한 기민성이 없는 심령은 타락한 자입니다. 묵시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21-23)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농담이나 장난거리로 생각하는 마음은 영적으로 죽은 것입니다. 그리고 묵시의 성취를 무시하는 행위(26) 역시 모두 다 심판을 자처하는 행위입니다. 묵시는 오직 성경뿐입니다. 성경에 무관심하고 게으르고 왜곡시키는 것은 풍랑 속의 나침반을 잃은 배와 같아 좌초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 착념하고 그의 빛 아래서 자기 빛을 보는 사람으로 살아갑시다(시119:105). [토]거짓선지자에 대한 경고(겔13:1-16)찬184장 인간역사는 “말들의 전쟁”(the war of words)입니다. 인간의 말과 하나님의 말씀이 혼합돼 범벅이 돼버렸습니다. 본문은 이런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심판을 경고합니다. 어떤 예언입니까? 듣기 좋도록 자기 마음대로(2-3) 행하는 예언입니다(16). 더욱이 여호와께서 보내지 않은 자칭 선지자의 평안하다는 예언입니다(6). 부르심이 분명치 않은 자는 허탄한 것과 점궤를 보고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회칠한 무덤처럼 외식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런 선지자에게는 폭우와 우박덩이와 폭풍이 쏟아지는 심판이 임합니다(11). 우리의 모세와 선지자인 “성경”을 날마다 듣고, 읽고, 연구하고, 암송하고, 묵상하여 계시의 빛 아래 참과 거짓을 분별하는 성도로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