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가정예배

2013년 8월 12일 - 8월 17일

권영국 목사(LA대흥장로교회)

[월] 근심없는 그리스도인1(요14:1-3) 근심하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에 우리는 마음속으로는 고개를 가로저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근심 없는 하루는 없기 때문입니다. 근심을 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말할 정도로 근심은 이미 삶에 일부분이 돼있습니다. 예수님은 근심하지 말라 하시며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당시 제자들은 그들의 조상을 인도하시고 지켜주신 하나님은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어디로 가실지, 자신의 계획을 어떻게 성취하실지 막막해보였습니다. 그런 제자들을 향해 아버지를 향해 가졌던 믿음을 가지라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자신의 모든 뜻을 성취할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근심하지 말 것은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성취하신 예수께서 자신을 믿으라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제자들과 달리 우리는 이미 예수님의 성취를 보고 있습니다. “너희는 근심하지 말라.” [화] 근심없는 그리스도인2(요14:1-3) 주님께서 근심하지 말라 명령하시는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가 가야할 곳이 이미 어디인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근심은 자신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지혜의 유한함에서 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도착할 최종목적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곳은 우리의 능력으로 마련된 곳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이미 우리를 위해 예비한 곳이며 그곳은 원래 우리의 본향이기도 한 곳입니다. 고향은 치열하고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곳이 아닌 어머니의 품과 같이 내 몸을 내어맡길 수 있는 안식이 있는 곳입니다. 우리 운명의 끝이 다다르는 곳, 그곳은 불확실과 예측불허가 아닌 주님의 평화만이 있는 곳입니다. 지금의 삶이 퍽퍽할지라도 내 삶의 끝에 영원히 임하게 될 주님이 마련하신 본향이 이미 있기에 근심과 상관없는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세상이 아닌 본향을 주목하는 삶, 이것이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근심없는 삶의 출발인 줄 믿습니다. [수] 근심없는 그리스도인3(요14:1-3) 열심히 저축하고 아끼며 자신의 집을 장만한 사람이 있습니다. 부모는 자기집이 생겨 좋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방을 줄 수 있어 행복합니다. 자녀들이 좋아하는 색깔로 방을 칠합니다. 아이들이 평소에 좋아하는 것을 소품으로 사다가 방을 장식합니다. 책을 좋아하는 딸아이를 위해서는 사방을 책장으로 만들어 도서관처럼 꾸며줍니다. 야구를 좋아하는 아들녀석을 위해서는 천장전체를 베이스볼 경기장으로 만듭니다. 아이들을 위해 준비되는 그 방은 아이들보다는 그 방을 꾸미는 부모의 기쁨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처소를 마련하십니다. 마치 새로 집을 장만하여 아이들보다 더 설레는 마음으로 자녀들의 방을 꾸미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처소를 꾸며주십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손수 준비하신 그 처소를 기대하며 갖는 소망이야말로 세상의 근심을 뒤로 할 힘이 돼줍니다. [목] 천국에 가면 행복한 이유(요14:3-4) 우리는 천국에 가면 이 세상에서 헤어진 사람과 만날 수 있다는 기대를 품곤 합니다. 나보다 먼저간 사랑하는 사람, 나보다 더 열심히 나를 위해 기도해주신 목사님, 늘 자식사랑으로 염려해주신 부모님, 그리고 내 신앙의 선조들도 만나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을 상상하면 늘 즐거운 기운이 마음에 가득하곤 합니다. 하지만 천국에 가면 즐겁고 행복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에서 경험하게 될 기쁨과 행복의 가장 궁극적인 원인이 됩니다. 우리가 지상에서 사람들을 통해서 경험했던 모든 사랑은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의 사랑이 모형이 될 것입니다. 어머니의 무조건적 사랑, 어버지의 절도있는 애정, 허물없이 모든 것을 주고받은 우정, 설레임으로 오는 연인과의 사랑. 결코 결핍이 없는 사랑 그 자체이신 예수님께서 천국에서 우리를 위해 거처를 마련해 놓으시고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금] 진리의 배타성(요14:5-6) 기독교가 사람들로부터 배타적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는 단 한가지의 이유를 든다면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에 대해서 밝혔듯이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히는 진술적 서술만이 아닙니다. 다른 그 누구도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될 수 없고 오직 예수님 자신만이 “길과 진리와 생명”임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뒤를 이어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자기 자신 이외는 그 어떤 누구도 진리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진리가 갖고 있는 배타적 성격 때문입니다. 삼각형의 세 각의 합은 180도라는 진리는 180이외의 다른 숫자를 허용하지 않듯이, 예수님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진리인 이상 그 어떤 것도 그 어떤 누구도 진리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토] 유일한 길이신(the Way) 예수님(요14:5-6) 우리 죄를 해결해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예수를 언약백성과 연합시키도록 언약 안으로 사람으로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언약 안에서 그들과 연합을 이루셨고 백성들의 죄악을 짊어질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죄를 향한 공의의 진노를 온 몸으로 품고 죽으시는 그들의 대속물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죄책과 형벌을 죽음으로 그의 백성들 가운데 영원히 제거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하늘에 검게 드리운 먹구름 같고 음산한 안개와 같은 죄(사44:22)가 동에서 서가 먼 것처럼 옮겨졌으며(시103:12) 하나님의 등 뒤로 던져졌으며(사38:17) 바다 깊은 곳에 내던져지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죄가 하나의 남김도 없이 모두 용서받았고(골2:13) 하나님은 더 이상 우리의 죄를 기억하시지 않으십니다.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었고, 그래서 그 분이 담당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만이 유일한 길이신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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