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령 목사(브니엘장로교회) [월] 영혼의 등불(잠20:16-30)찬96장 본문 27절. 사람들은 영혼이란 말을 많이 하지만 하나님 외에 영혼문제를 다룰 수 없습니다. 영혼은 하나님에게서 나오고 사람의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마음”, “영”, “속사람” 등으로 달리 표현하면서 그것을 살피는 분은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개역에는 이 영혼을 하나님의 등불, NIV역에는 하나님이 영혼을 찾으시는 것으로 번역됐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영혼을 사람의 몸을 밝히는 눈으로 비유하면서 눈이 하나님 외에 다른 것에 집중하면 어두워질 수 있음을 지적하셨습니다(마6:22-24). 다윗은 주의 말씀을 발의 등이요 빛임을 알고 밝은 영혼을 가지려면 말씀의 빛 안에 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시119:105). 하나님 앞에 사는 자만이 밝은 영혼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날마다 자기 영혼을 말씀의 빛 앞에 정직히 서서 하나님의 판단을 받는 것에 최우선권을 둘 때 밝게 살 수 있습니다. 새해에 내 영광(영혼)을 깨웁시다. [화] 심판대 앞에서(잠21:1-14)찬202장 잠언에 지도자를 교훈하는 내용이 많은 것은 실제적 정치지도자들을 가르치려는 목적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리스도 안에서 왕권을 가진 신자들의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가르치는 면이 더 강합니다. 첫째,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습니다. 터진 봇물처럼 자기 마음대로 행하는 권세가 왕에게 있으나 여호와 경외하는 왕은 왕권을 바로 행사해 참 자유와 형통을 체험합니다. 진리가 있는 것에만 참 자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방종하기 쉬운 권력을 그리스도에게 복종시키는 것은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 받은 신자가 걸어야할 길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통제되어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하는 공부나 일이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항상 만왕의 왕의 심판대 앞에 서는 두려움으로 임해야합니다. 특히 새해에 내가 몸담고 있는 나라의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해야합니다. [수] 뿌린 대로 거둔다(잠21:15-33)찬260장 심은 대로 거두는 원리를 본문에서는 어떻게 말합니까? 첫째, 의인은 의를 즐거워하지만 죄인은 불의를 기뻐합니다(15). 의인은 공의를 즐거움으로 삼음으로 얻는 흥왕을 체험하지만 악인은 불의를 즐기다가 마침내 저주를 받아 멸망이 홀연히 찾아옵니다. 둘째, 명철의 길을 떠난 사람은 사망 안에 거합니다(16). 의인은 아버지 안에서 영원히 살지만 악인은 망합니다(시1:6). 교회는 성령의 조명 안에 살기를 힘쓰는 밝은 회중들입니다. 셋째, 일락을 사랑하는 자는 망합니다. 연락, 술, 그리고 기름을 좋아하는 자는 가난하게 된다는 말씀(17)은 육적 쾌락에 심취한 자의 위험을 경계한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 대로 일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다고 하나 실상은 죽은 자라는 말씀과 통합니다. 새해에 경외신앙을 가진 의인의 보장받는 길을 걸어갑시다. [목] 미련에서 벗어나라(잠27:14-21)찬82장 “이른 아침에 큰 소리로 그 이웃을 축복하면 도리어 저주같이 여기게 되리라”(14). 돼지에게 진주를 던지는 것은 적응성을 간과한 무의미한 행위입니다. 왜냐하면 돼지는 진주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그 가치가 인정되지 않을 때 복을 저주로 취급해 복의 존엄성을 해치게 됩니다. 때에 맞는 말을 할 줄 아는 지혜의 부족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망령되이 취급될 때가 많습니다.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이방인에게는 이방인처럼 접근해 복음의 가치를 알게 하는 지혜로운 행동이 따라야합니다. 상황에 맞는 축원이 되지 않으면 도리어 욕을 당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축복할지라도 아침에 큰 소리는 경우에 맞는 것이 아닙니다. 아침에는 작은 소리로 축원하는 적응성 있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진리의 도는 폭탄 터뜨리는 방식보다 때에 맞는 유익을 주려는 진지하게 걷는 길입니다. 미련에서 벗어나 지혜의 길을 걸읍시다. [금] 바른 일꾼(잠22:1-16)찬517장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 경외신앙이 교육을 통해 전수됨을 본문은 어떻게 보여줍니까? 첫째, 마땅히 행할 길 곧, 성경을 가르쳐 배우고 확신에 거하게 해야합니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중심한 계시이기 때문에 오직 성경을 깨달음으로서 그리스도를 닮을 수 있습니다. 둘째,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영이요 생명인 성경은 교훈, 책망, 바르게 함, 그리고 의로 교육함으로 표현됩니다(딤후3:16). 정보전달만이 아니라 현실에 맞도록 본을 보이면서 적응시켜야합니다. 셋째, 아이 때에 가르쳐야만 합니다. 영육의 유치기에 말씀의 틀을 잡고 말씀으로 양육함이 지혜입니다. 그 결과는 장래에 진리를 떠나지 않게 됩니다. 나 자신이 먼저 성경을 깨닫고 본을 보이며 나갈 때 하나님이 사용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바른 일꾼이 됩시다. [토] 온전한 지혜(잠22:17-29)379장 지혜자의 생활은 어떠해야 합니까? 첫째, 지혜자의 말씀과 지식은 여호와 경외신앙을 가리키며 그 자체가 생명입니다. 지혜의 가르침은 개인적 형태로 나타나기를 “지혜와 나(일인칭)”의 관계로 설명했습니다. 제자도의 방법은 항상 이런 것입니다. 말씀이 개인의 마음에 보존되고 입술로 표현될 때 아름다움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둘째, 가르침, 기록, 그리고 말씀의 깨달음으로 진리에 응답해야합니다. 지혜의 생활은 기록된 바른 말씀에 착념해 그대로 순종하는 생활 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노와 분을 품은 자와 동행하지 말라는 이유는 행위의 분을 따름으로 영혼이 올무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자기 산업에도 말씀을 적용하는 일에 근실한 사람이 존귀하게 됩니다. 셋째, 마음의 변화에서 시작되는 지혜의 삶은 약한 자를 압제하지 말고 돌보는 사랑으로 나타나게 돼있습니다. 소자를 하나님이 신원하시기 때문입니다(20-21). 이것이 참 경건입니다(약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