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국 목사(LA대흥장로교회) [월] 사역자들의 태도 (막12:1-12) 사역자들은 조건과 환경에 초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어떤 계층의 사람이든 하나님이 보내셨다면 그것으로 자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부름 받을 때 80세 노인이었습니다. 아모스는 농부였고, 예레미야는 마음이 매우 심약한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주의 제자들 역시 출신이 비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하나님의 일을 잘 수행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친히 아시며, 그들은 단지 하나님의 사역도구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역자들은 사람의 환영과 핍박에 초연해야 합니다. 본문 포도원주인의 종들은 앞서 간 종들이 매 맞고 능욕 당하고 죽임을 당했음을 알고도 주인이 보내니 순종하고 갔습니다. 사역자들은 사람을 보고 사역하면 흔들립니다. 칭찬하면 교만해지기 쉽고 핍박받으면 낙심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세우고 보내신 주님만 바라봐야 합니다. 나에 대한 판단과 상급은 오직 주께 달렸기 때문입니다. [화] 진실함 (막12:13-17) 15절에 보면 주님께서는 자신에게 아첨하며 세금 문제를 질문하는 자들의 위선을 간파하시고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고 책망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지으신 분이십니다. 인간을 지으셨기에 인간의 내면까지 다 아십니다. 주님은 나다나엘이 비록 당신의 눈에 안 보이는 곳에 있었지만 그의 속에 간사한 것이 없는 것을 아셨습니다(요1:47,48). 실로 주님은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시는 분이십니다. 이런 주님을 속이고자 아첨의 말로 주님을 미혹하려는 자들의 시도가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갈6:7)라고 경고합니다. 따라서 주 앞에 나아가는 성도들은 오직 진실한 자세로 나아가야 합니다. 신앙고백도, 회개도, 찬송도 진실한 마음으로 해야 주님께 상달되는 법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진정으로 교제하는 비결은 오직 진실함뿐입니다. [수] 천국 결혼식 (막12:18-27) 25절을 보면 주님은 사람이 부활할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간다고 했습니다. 천국에는 이 땅에서의 결혼식 같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천국은 이 땅의 결혼식과는 차원이 다른 한 가지 결혼식이 있습니다. 바로 신랑 되신 그리스도와 성도인 우리가 결혼하는 잔치가 벌어지게 됩니다. 계19:7-9에는 분명히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벌어진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그때의 즐거움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신부 맞듯 영접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상급을 예물로 주실 것이며, 우리는 천군 천사의 축제 속에서 천국으로 입성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란 바로 이 기쁨을 목적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고통이나 불만도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그 날을 바라보고 참고 극복합시다. 그 기쁨을 위하여 죄를 멀리하고 자신을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로 가꾸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목] 신앙의 핵심 (막12:28-37) 30절은 신앙의 핵심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즉, 전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그 마음과 의지에서 비롯되는 행동이 곧 기독교신앙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그리스도를 보내신 그 구원의 진리도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하나님의 성품을 닮으려고 노력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하나님이 주신 내 삶도 귀한 것으로 여깁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하나님이 지으신 내 이웃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율법의 핵심이자 열매입니다(롬13:10).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상실한 자는 엄밀하게 말해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잃은 신앙인은 맛 잃은 소금이요 기름 없는 등불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크신 사랑을 입은 자로서 우리 또한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랑으로 응답하시기를 바랍니다. [금] 성도가 입어야 할 옷 (막12:38-40) 38절은 주님께서 종교지도자들이 긴 옷을 입고 시장 같은 데서 사람들에게 문안 받는 일을 비판하신 내용입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옷은 일반인의 옷보다 길었고 또 수많은 술을 매달았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영적권위를 나타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런 식으로 백성들에게 억지와 형식으로 존경받는 사람들에게는 하늘의 상급이 없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마6:5). 성도에게도 성도로서 합당한 옷이 있습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으라”(골3:12). 성도가 입어야 할 마음의 옷은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의 옷입니다. 성도들에게는 언제나 이런 마음의 성품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야 그가 진정한 성도인 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옷이 더러워지면 날마다 새 옷으로 갈아입듯 우리의 교만과 부덕함에 대해 회개하며 주님 주신 성도의 새 옷으로 갈아입으시기를 바랍니다. [토] 어떻게 드릴까 (막12:41-44) 41, 42절 부자와 한 가난한 과부가 헌금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부자는 많이 드렸고 가난한 과부는 아주 조금 밖에 드리지 못했습니다. 본문의 ‘한 고드란트’는 지금 현금 가치로 환산하면 1달라도 채 되지 못하는 액수입니다. 이렇게 적은 돈을 드리는 과부는 어쩌면 부끄러웠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당시 헌금을 드릴 때 그 드리는 액수를 연보궤를 관리하는 레위인에게 큰 소리로 알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과부의 작은 소리를 주님은 유심히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중에도 최선을 다해 헌금한 그녀를 칭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얼마를 드렸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드렸느냐를 더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신16:17)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합당한 예물이란 자신의 형편대로 드리되 최선을 다해 감사함으로 드리는 예물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