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가정예배

2012년 7월 16일- 21일

전화령 목사(브니엘장로교회) [월] 진실과 인애가없는 세대 (호4:1-19) 찬181장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은 언약백성, 이스라엘을 향해 왜 탄식하셨습니까? 첫째, 진실이 없었기 때문입니다(1).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언약관계를 보인 호세아와 고멜의 결혼은 회개로 이끄시는 지혜를 보여줍니다. 진실은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말씀을 떠난 그들은 거짓의 노예가 된 것입니다. 그 결과는 패망이었습니다. 계시가 없는 개인과 나라는 망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 전해진 구원계시인 성경을 믿을 때만 참 구원을 받으며 진실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둘째, 인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진실이 없는 인애, 인애가 없는 진실은 모두 가짜입니다. 사람관계의 기본인 사랑은 진실하신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서 나온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사랑으로 우리는 모든 환난에서 넉넉히 이깁니다(롬5:5). [화] 의가 메마른 세대 (호11:12-12:14) 찬265장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영적 선 곧, 의를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은 어떻게 일하셨습니까? 첫째, 하나님의 표준 앞에 정직하게 서게 하셨습니다. 3절은 야곱의 역사를 배경으로 나타났습니다. 야곱의 브니엘사건을 통해 보여진 그의 탐욕의 껍질이 하나님의 손에 의해 벗겨진 것처럼 호세아시대의 이스라엘 역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죽음만이 우리의 정과 욕심을 제하십니다(갈2:20). 둘째,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으십니다. 호세아가 본 이스라엘의 죄는 피상적이 아니고 근원적이었습니다. 그 속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음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버리고 탐욕이 대신했습니다. 그것이 개인 가정 사회에 만연해 마침내 우상을 섬기는 공동체로 변했습니다. 우리시대의 교회가 추구할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수] 은혜의 근원 (호2:21-22) 찬178장 호세아를 통해 반복해서 보여주신 것은 하나님만이 은혜의 근원이라는 진리입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웁니까? 첫째, 은혜의 주가 자기백성의 모든 것을 다스리십니다. 호세아의 세 아들 이름이 하나님의 은혜로 루하마, 암미 그리고 이스라엘로 바꿔졌습니다. 하나님이 은혜의 문을 여실 때만 하늘, 땅, 곡식, 열매 그리고 이스르엘에 형통을 가져옵니다(1:11). 언약백성의 모든 삶은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되고 진행되고 마쳐집니다. 둘째, 하나님중심주의가 만사의 근본이어야 합니다. 문제 많은 고린도교회에 대한 사도의 해결책은 인위적 방법이 아니고 십자가로 돌이키게 하는 것이었습니다(고전2:2). 이 십자가의 도를 따를 때 기적과 지혜도 얻게 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일로 은혜의 강수를 체험합시다. [목] 두 마음 (호10:2) 찬484장 본문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근본 죄, 외식을 어떻게 다루셨다고 말합니까? 첫째, 두 마음 품은 것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존재의 중심이며 전인의 좌소인 마음인 “영혼”, “속사람”, “영” 그리고 “중심”으로 표현한 성경은 언제나 거기에 초점을 맞춥니다. 호세아시대의 문제도 여전히 그들의 마음의 상태에 놓인 것이 그리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단순하고 진실한 마음이 더렵혀져 이중마음을 가진 외식자가 된 것입니다. 둘째, 제단을 파하십니다. 하나님과 만나는 예배 장소인 제단이 더렵혀질 때 하나님은 심판하십니다. 자신이 받으실 영광이 다른 것에 돌려질 때 가차없이 제하심은 그 분이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크신 사랑으로 애굽의 중앙에 성소를 두시는 놀라운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만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립시다(롬12:1-2). [금] 예배의 환상 (사66:1-24) 찬138장 구원과 심판이 계속되는 우리시대에 참 예배자의 자화상을 보인 20-21절은 어떤 그림을 보여줍니까? 첫째, 가난한`심령을 가진 예배자를 보입니다(1-11). 이사야가 본 하늘성전 여호와 앞에 드려지는 스랍의 찬송은 종말에 나타날 예배자의 그림입니다. 심령이 가난하고 통회하는 마음에 참 예배가 드려집니다(1-2, 사57:15, 마5:3). 둘째, 영광과 평강이 충만했습니다(12-17). 참 예배자에게 임하는 복은 강수같은 평강과 시내같은 영광입니다. 여기 영광이란 무게를 두는 것을 의미합니다. 엉뚱한 것에 무게를 두는 이 악한시대에 오직 하나님께만 무게를 두는 예배자로 살아가야합니다. 셋째, 그는 전도자로 나타납니다(18-24). 예배자는 열방을 향한 전도자로 사는 것입니다. 죽어가는 세상에서 자기백성을 구해 하나님께 드리는 전도자로 삽시다. [토] 반석 위에 선 신자 (사17:1-11) 찬188장 본문에 여호와와 신자의 관계를 반석으로 비유한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의 강함을 보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여호와를 강한 반석으로 생각했습니다. 첫째, 우상은 견고한 반석이 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망하는 원인인 우상숭배를 자신의 반석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다메섹이 망한 이유가 이것 때문이듯이 세상은 우상숭배를 반석으로 삼았기에 멸망에 떨어져 쇠약하여 마침내 망합니다. 둘째, 여호와 경외신앙이 반석입니다. 다메섹과 동맹함이 반석인줄 안 이스라엘은 여호와 경외신앙이 능력인줄 알지 못했습니다. 종말의 날에 진정한 반석은 하나님뿐이십니다(10). 셋째, 성령의 연합을 힘써야합니다. 두 나라의 동맹이 하나님을 중심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리로 나가도록 돼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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