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령 목사(브니엘장로교회) [월] 종말의 때 (마24:15-25) 17, 18절은 예루살렘의 멸망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징조가 나타날 때 취해야 할 자세에 대한 말씀입니다. 재난의 소식이 들려오면 다른 것에 미련을 두지 말고 즉시 도망하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도들이 어떠한 자세로 종말의 때를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됩니다. 즉 종말의 때를 사는 성도는 세상의 것에 미련을 두어서는 안됩니다. 종말의 때를 살면서 세상에 미련을 두게 되면 세상 종말이 올 때 우리도 부지불식간에 세상과 함께 멸망할 가능성이 큰 것입니다. 성경은 재난의 소식을 듣고도 뒤를 돌아보다 소금기둥이 된 롯의 아내나 재물이 많은 관계로 주님을 따르지 못했던 부자청년을 통해 세상의 것에 집착하는 자의 미래가 얼마나 불행한가를 분명하게 경고해주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집착을 버리고 언제라도 천국을 향해 출발할 수 있는 참 천성의 순례객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화] 종말의 현상 (마24:26-28) 26절을 보면 “사람들이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시대가 혼란스러울수록 가장 극성을 부리는 것은 바로 무성한 소문과 각종 루머들입니다. 시대가 어지러울수록 그 혼란의 틈을 타서 이득을 보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본문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재림관련 소문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예루살렘이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의 군대에 의해 함락되던 때가 이와 같았습니다. 포로로 끌려가고 혼란이 극에 달했을 때 거짓 선지자들과 복술자들이 등장해 갖가지 거짓 소문들을 퍼트렸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결코 흔들리지 말고 정한 때를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렘29:1-14). 시대가 혼란스럽고 사람들에게 의한 소문과 루머가 극성을 부릴 때 세상의 어리석은 자들처럼 사람의 말을 믿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온전히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수] 마지막 승리자 (마24:29-35) “그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30절), 여기서 ‘그때’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본문은 예수님께서 영광중에 재림하실 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과 그를 부인하며 멸시하고 조롱했던 사람들이 다시 오신 재림주를 바라보며 자신들의 어리석음에 가슴을 치며 후회와 통곡을 하게 될 것임을 보여줍니다. 예수님 재림의 순간은 희비가 교차하는 극단적 순간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귀하게 모시고 섬겼던 사람들은 기쁨으로 맞겠지만 멸시하고 무시했던 사람들에게는 최대의 후회와 형벌의 날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에 웃는 자가 진정한 승리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잠시 있다 사라질 세상의 헛된 영광과 쾌락만 추구하며 살다가 재림 날 통곡하는 자가 되지 말고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진정한 인생의 성공자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목] 깨어있으라! (마24:36-25:13)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36절). 주님께서는 바로 앞에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 “천지는 없어지더라도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종말은 반드시 올 것이지만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두 가지 종말이 있습니다. 하나는 죽음과 같은 개인적 종말이고, 다른 하나는 주님의 재림으로 오는 우주적 종말입니다. 우리는 이중 어떤 종말에 대해서도 그 때를 알지 못합니다. 단지 그 때를 짐작할 수 있을 뿐입니다. 42절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관심을 ‘그때’에 두지 말고 ‘어떻게 살 것인가’에 두시기 바랍니다. 낮에 깨어 있는 자와 같이 항상 단정하고 경건한 모습으로 받은 사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시다가 주님께서 뜻하지 않은 시간에 오셔서 우리를 부르실 때 당당하게 우리 주님 앞으로 가게 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금] 은사 개발 (마25:14-30) 26절을 보면 주인은 한 달란트를 받아서 그것을 그대로 가져온 종을 향해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한 달란트 받은 종이 원금을 상실하거나 낭비하지 않고 고스란히 가져왔음에도 불구하고 주인은 그에게 게으를 뿐만 아니라 ‘악하다’고 까지 평가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은사나 직분, 그리고 사명이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이 비유에 등장하는 종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책망을 듣게 될 것입니다. 영적인 현상 유지는 많은 손해를 보게 합니다. 특별히 자신의 은사가 적다고 실망하거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봉사하시면 하나님께서 더욱 형통한 길을 열어주시고 필요한 은사들을 더 채워주실 것입니다.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요15:2). [토] 이웃 고통 내 고통 (마25:31-46) 41절에 ‘왼편에 있는 자들’을 향한 주님의 저주가 나옵니다. ‘왼편에 있는 자들’이란 42, 43절에 나오는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병든 자들과 같이 고통받는 사람들을 돌아보지 아니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주님은 이 왼편사람들을 향해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해 예비된 영영한 불못에 들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형법에 보면 “부작위 죄”라는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엄마가 아기에게 젖을 주지 않아 아기가 사망했거나 부모가 물에 빠져 죽어가는 자식을 구하지 않아 죽었다면 그들 모두는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를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세상 법도 이렇게 마땅히 도와야 할 사람을 돕지 않으면 처벌을 하는데 그리스도의 피로 한 가족된 이웃의 고통을 남몰라라한다면 우리가 받아야 할 심판은 이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고통당하는 이웃을 향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베풀 수 있기 바랍니다. 무관심도 하나님의 눈에는 심판받을 무서운 범죄임을 기억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