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령 목사(브니엘장로교회) [월] 신실하신 하나님 (시89:1-13) 찬447장 그리스도인은 에단이 노래하는 성실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성실 곧, 진실은 하나님 성품의 본질이며 기초입니다. 에단은 하나님의 성실의 정도가 어떠하다고 생각했습니까? 첫째, 그것은 찬송의 주제였습니다(1, 5). 하나님을 노래하며 대대로 전파함은 하나님의 신실성 때문이었습니다. 사랑 역시 언제나 신실을 배경으로 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바라본 녹보석같은 보좌의 모습은 바로 이 신실성을 강조한 표현입니다. 둘째, 만물을 붙드는 능력이었습니다(2). 시인은 성실로 창조된 세상을 유지되는 것도 그의 성실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만물을 통해 우리는 그의 사랑과 진실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의 신실한 말씀만이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양식입니다. 셋째, 성실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8). 파도의 일어남과 잔잔케하심으로 비유된 원수의 요란한 활동도 마침내 그의 신실하심에 의해 다스려짐을 본 것입니다. 신실하심으로 우리를 대하시는 하나님께 전심으로 찬양합시다. [화] 거룩하신 하나님 (사6:1-3) 찬387장 이사야가 본 이상은 하나님의 거룩을 나타냈습니다. 열린 하늘을 향해 그가 본 보좌에 계신 분의 특성이 거룩이었음을 무엇이 증거합니까? 첫째, 스랍이 부른 찬양의 주제가 거룩이었습니다. 스랍이 자기 몸을 가리는 태도와 보좌에 계신 분을 향한 거룩 찬양은 그의 거룩성을 접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피조물이 뛰어나고 아름다워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며 특히 그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일자라도 그의 거룩에 결코 미칠 수 없습니다. 둘째, 자신의 불결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가 바라보자 자기의 부정을 발견한 것은 하나님의 거룩성에 접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후 하나님은 정결 도구인 불(레10:19)로 그의 부정을 순식간에 제해 깨끗케 하셨습니다. 셋째, 자신의 일에 거룩한 자를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정결한 자에게 맡기심은 그 사역이 거룩한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목표를 이루기위해 그리스도의 거룩한 보혈을 굳게 신뢰합시다. [수] 그 나라를 세우려면 (대상11:10-47) 찬366장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다윗왕권을 세우심으로 구원역사를 이루실 때 오병이어로 기이한 역사를 일으키듯이 현재 있는 그 재료로 세우기를 기뻐하십니다. 본문은 그 나라를 세우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어떻게 보여줍니까? 첫째, 하나님나라에 대한 사모심을 갖게 하십니다(17). 다윗이 베들레헴 샘물을 사모하는 마음처럼 하나님나라는 성령 안에서 의와 희락과 평강을 구하는 영위에 세워집니다. 둘째, 용사들의 목숨내건 헌신을 통해 세워집니다(19). 다윗을 옹위한 용사들이 생명을 아까워하지 않고 위험을 무릅쓰고 적진을 뚫고 물을 가져온 그 뜨거운 마음이 그 나라를 세웁니다. 셋째, 하나님 중심한 삶을 통해 일하십니다(18). 역시 그 나라는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중심처럼 하나님 앞에 전제처럼 부어질 때 세워집니다. 먹으나 마시나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을 바친 산 제물을 통해서만 하나님나라는 세워집니다. 그 방법을 따라 우리 가정에서부터 그 나라를 세웁시다. [목] 강성한 구원 (대상11:1-9) 찬493장 사울을 폐하시고 다윗을 강성하게 하신 하나님은 참된 강성이 무엇임을 보여줍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때 강성해집니다(3). 사무엘을 통해 하신 말씀은 그대로 이뤄져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됐고 주권자가 됐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절대권위이고 능력의 근원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계속적인 도우심으로 강해졌습니다(9). 다윗왕권은 한번에 강해지기보다 점점 강해갔습니다. 마귀는 기적을 통해 일하기를 좋아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과정을 통해 일하심으로 그 풍성한 은혜에 깊이 참여하게 하시는 길을 기뻐하십니다. 셋째, 하나님의 임재로 강해집니다(9). 법적으로 복주시기로 하신 하나님은 자신이 실제로 임하심으로 일하십니다. 구약에도 그의 임재로 일하신 하나님은 신약에는 더 구체적이고 풍성하심으로 임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복된 자리가 임마누엘입니다. 하나님과 연합됨은 성령의 임재로 현실화 됩니다. [금] 그리스도의 고난의 효능 (시22:22-31) 찬144장 메시야의 수난 시편으로 알려진 본문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효능을 발견합니다. 첫째, 찬양을 하게 했습니다(22-23). 많은 고난을 당한 다윗이 성령의 감동으로 노래한 본 시편은 그리스도 고난의 그림자였습니다. 다윗은 자기의 허물과 죄와 연단을 위한 고난이지만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을 위해 대신 당하는 고난으로 풍성한 죄사함을 인한 구원과 찬송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구속 곧 죄사함을 얻었기에 영원히 그를 찬송합니다(엡1:7). 둘째, 영생을 누리게 했습니다. 다윗의 고난이 영원한 마음의 찬송을 주었다면 그리스도의 죽음은 풍성한 영생을 얻게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소유한 자에게 있는 영생은 하나님을 영원히 체험적으로 알아가는 삶을 살게 합니다(요17:3). 셋째, 만민에게 외칠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그의 고난은 부조리한 민족주의가 아니고 온 세상에게 꼭 전할 복음을 남겨주었습니다. 이 복음의 증거자로 살아갑시다. [토] 교만의 결과 (사10:5-15) 찬205장 앗수르의 심판을 통해 교만에 대한 심판의 처절함을 본문은 어떻게 보여줍니까? 첫째, 그렇게 세력있는 앗수르가 망한 것은 외적 침략이나 정치적 결함보다 그들 속에 자리잡은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고만장한 그들은 결국 불태움을 당했습니다. 둘째, 일시적으로 쓰임받은 심판입니다. 죄를 회개할 줄 모르는 유다를 때리는 채찍으로 쓰임받은 그들이 망한 이유는 회개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심판은 개별적입니다. 셋째, 겸손한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성경으로 돌아가 바른 교훈에 마음을 두고(딤전6:3) 그 말씀을 따라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합니다. 하나님의 주인되심을 바라본 신자는 자연히 겸손한 종의 마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랑과 교만으로 채워진 우리 시대를 이기는 길은 바로 가난한 마음을 소유하는 길입니다. 교만을 조장하는 유혹이 많은 세상에 항상 겸손한 마음을 가짐으로 새 역사를 이루어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