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령 목사(브니엘장로교회)
[월]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생활 (사61:3-9) 찬394장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이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으로 가르치는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 일문의 내용을 설명하는 본문은(3) 세 가지 신분의 변화를 지적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냅니까? 첫째,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사는 것입니다. 레위지파에게만 국한된 제사장 신분이 복음 안에서 보편화됐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봉사자로 사는 것입니다. 우상과 자기를 섬기던 자가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자로 변화됐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뤄드림으로 그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셋째, 여호와께 복받은 자손으로 사는 것입니다(9).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복의 근원이 되는 약속이 성취됨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열방이 인정하는 그의 영광을 온 천하에 나타내는 자가 되는 것이 은혜시대에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약속된 이 복음은 우리의 것입니다. 이 귀한 은혜를 주장합시다. [화] 하나님을 즐기는 생활 (시74:23-28) 찬507장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을 보여주는 본문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삶을 어떻게 가르칩니까? 첫째, 항상 주와 함께하는 생활입니다. 이것은 잡힌 바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는 바울의 생활과 같습니다(빌3:13-14). 가장 복된 삶은 하나님을 즐기는 일입니다. 둘째, 주의 교훈을 따라 사는 생활입니다(24). 동행하시는 하나님은 교훈을 따르게 하심으로 인도하십니다. 주의 교훈은 바로 성경이며 그날 읽고 묵상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며 겸손히 순종하는 것이 행복입니다. 주 안에 거하는 자는 주의 말씀을 순종합니다(요15:7). 이것이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구체적인 표현입니다. 셋째, 하나님을 사모하는 생활입니다(25). 천지에 성도가 진정 사모할 대상이 오직 하나님뿐이란 확신이 인생최대의 목표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란 바로 하나님을 사모하는 열정을 가진 자를 가리킵니다. 그 애정(affection)이 살아있는 증거이고 그 안에 거할 때 참 은혜의 맛을 알게 됩니다. [수] 창조의 하나님 (시19:1-6) 찬79장 인생의 중심과 목적이신 하나님은 창조와 말씀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심을 시인은 어떻게 설명합니까? 첫째, 창조의 목적은 영광받으실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입니다(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그의 창조하신 지혜를 나타내는 것이 창조하신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창조를 알 때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알 때 창조를 알며 즐기게 됩니다. 둘째, 소리없는 말씀으로 그의 다스림은 계속됐습니다(2-4). 창조하신 후 가만히 계신 하나님이 아니고 친히 만물을 자신의 계획대로 관리하시고 다스리십니다. 창조의 하나님은 섭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셋째, 자연법칙을 붙드시는 하나님이십니다(5-6). 하나님이 다스린다해서 자연법칙을 무시하지 않으십니다. 해달별의 운행이 자연법칙을 통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위에서 친히 간섭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지식주의와 반과학주의를 배격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된 창조의 목적대로 인도하시는 우리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목] 말씀과 성령의 구원 (사59:15-21) 찬190장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베푸신 구원이 풍성한 까닭은 그가 친히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언약백성에게 어떻게 일하십니까? 첫째, 공의를 세우십니다(17). 공의를 갑옷으로 삼으시고 구원을 투구로, 보복을 속옷으로, 열심을 겉옷으로 삼으셨기에 그의 구원은 완전합니다(엡6:13-18). 둘째, 급류의 강물처럼 열심으로 일하십니다(19). 또 그 분의 구원은 급류처럼 신속하고 즉각적입니다. 그만이 절대 주권자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언약의 성취가 느린 것처럼 보이나 반드시 성취되며 일점일획도 변함없습니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며 순종할 때 하나님의 응답은 신속하게 나타나도록 돼있습니다. 셋째, 말씀과 성령으로 일하십니다(21). 두 수단인 말씀과 성령을 통해 언약을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말씀과 성령을 보내달라고 간구해야합니다 이미 받았으나 순간마다 주시는 새로운 은혜를 사모하며 누리는 것이 신자가 갈 길입니다. [금] 생활의 절대 권위 (사8:19-22) 찬202장 이사야시대 유다백성의 타락은 믿음의 절대 권위이신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떠난 데서 비롯됐습니다. 첫째, 거짓 교훈의 유혹이 많은 세상입니다(19). 유다의 근본 죄악, 외식은 바른 교훈을 대적하고 거짓 교훈의 교묘한 유혹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 유혹은 우리 시대에도 반복되기에 거짓교훈을 철저히 경계해야합니다. 둘째, 모든 말의 표준인 말씀을 따라야합니다. 어두운 세상의 빛처럼 하나님의 계시만이 모든 언행심사의 절대표준입니다. 성경에 맞지 않는 모든 것은 결국 무너지고 오직 그의 말씀대로 행한 것만이 영원히 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밝은 사람이 돼야합니다. 셋째, 말씀에 맞지 않는 교훈은 반드시 어두움을 맛봅니다. 20절 “아침빛을 보지 못한다”는 선포는 절대성을 띈 말씀입니다. 바른 교훈에 착념치 못하면 그는 저절로 교만해 온갖 부패에 떨어집니다. 흑암이 광명으로, 사망이 생명으로 나타나는 것은 오직 말씀의 권위를 믿음에서 생긴 결과들입니다. 그 복된 자리로 나아갑시다. [토] 성경의 순결성 (시12:1-8) 찬200장 다윗의 시편 중 하나인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하는 악인의 활동을 바라보고 탄식함으로 시작하지만 성경을 신뢰함으로 해결합니다. 성경은 어떤 성격을 가집니까? 첫째, 순결합니다(6). 성경은 모든 사상과 언어 중 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 가장 정결한 말씀으로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양심으로 성경을 대하면 구원의 길을 알게 되고 바른 길을 알게 됩니다. 둘째, 평안을 안겨줍니다(5). 영적 혼란에 거하는 자들이 진정 쉴 수 있는 안전지대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곳입니다. 성경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며 양식으로 삼은 자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이 그의 마음을 지배합니다. 셋째, 영원합니다(7). 하나님에게만 붙이는 영원이란 말을 성경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성경만이 하나님의 특별계시이기 때문입니다. 천하가 다 변해도 영원히 남는 성경에 의존하는 사람은 이 땅에서 가장 복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성경의 생명을 내 것으로 삼고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