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가정예배

2012년 2월 27일 - 3월 3일

권영국 목사(LA대흥교회) [월] 이때로부터 (마16:21-23) 21절에 주님께서는 ‘이때로부터’ 비로소 제자들에게 앞으로 다가올 자신의 십자가 수난에 대해 가르치셨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이때’란 베드로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고백한 때를 말합니다. 즉 주님께서는 이전에는 수난에 대해 간접적 혹은 암시적으로 말씀하셨지만(마9:15), 이제 베드로의 공개적인 고백이 있자, 메시야 사역의 최대 비밀인 십자가 수난에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만사에는 모두 때가 있습니다. 성경은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다”(전3:1)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언제나 하나님 앞에 조급하게 굴지 말고 먼저 여러분의 성숙을 위해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여러분의 안을 정결케 하고 그릇의 크기를 넓히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그릇에 합당한 은혜와 축복을 ‘때를 따라’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화] 제자도 (마16:24-28)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24절).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제자들을 향해 참 제자가 갖춰야 할 세 가지 요소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첫 번째는 자기 부인입니다. 옛 피조물로서 혈과 육의 본성을 쳐서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자기 십자가’란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이며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희생과 노력을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를 좆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자들이 가야할 방향을 말합니다. 따라서 진정한 제자는 자기 부인을 하고 새로운 피조물로서 새로운 사명의 십자가를 등에 지고 눈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 뒤를 따르는 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주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오르셨던 것처럼 이제 제자들인 여러분들도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향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수] 사명 (마17:1-13)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다”(1절). ‘엿새 후’는 바로 앞서 기록한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에 대한 첫 번째 예고가 있었던 6일 후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제자 중 세 사람만 데리고 변화산상으로 올라가신 것입니다. 이 밖에도 예수님께서는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실 때나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도 이 세 사람을 동행시키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이들 세 사람에게 특별한 사명이 주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초대교회를 이끌어야 할 책임이 있었고 야고보는 최초의 순교사명이 주어졌습니다. 그의 형제 요한은 마지막까지 남아 그리스도의 계시를 전해야 하는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사명을 주실 때 감당할 힘도 함께 주십니다. 그 힘은 감당해야 할 사명을 깨우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연단이요 훈련입니다. 사명 전에 앞서 주시는 이 하나님의 훈련과 연단을 끝까지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목] 겨자씨 믿음 (마17:14-27)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20절). 여기서 ‘겨자씨’와 ‘산’은 다같이 믿음의 능력을 설명하기 위한 소재들입니다. 작지만 생명력 있는 겨자씨는 환경적 여건만 갖춰지면 자라서 새가 날아들 만큼 큰 나무가 됩니다. 따라서 겨자씨만큼의 믿음이란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면 소망을 가질 수 있다는 ‘살아있는 믿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한편 여기서 산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극복하기 어려운 장애나 난제를 상징합니다. 결국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살아있는 믿음은 어떠한 장애나 난제도 능히 극복할 수 있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할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능력 없지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능자이시기 때문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태산도 움직이는 살아있는 믿음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금] 양치기 (마18:1-14) 12절을 보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둔 채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고자 헤매는 선한 목자의 모습이 나옵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목자는 자기의 양을 알고 또 사랑하기에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직접 찾아 나섰습니다. 우리 주님은 비록 사람들이 별로 주목하지 않고 관심을 두지 않는 소자일지라도 외면하는 법이 없으십니다.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요21:15-16). 주님은 베드로에게 그가 양 무리의 주인이 아니라 일개 양치기임을 일깨워주셨습니다. 오늘의 교회지도자들은 이 점을 유념해야 합니다. 성도를 ‘내 양’이라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양들의 주인은 주님이시고 모든 사역자들은 그들을 돌보고 보호하도록 주님으로부터 임명된 일꾼들일 뿐입니다. 성도 중 한 사람이라도 실족하는 일이 없도록 관심과 애정으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만일 차별하고 소홀히 하여 한 영혼이라도 실족한다면 주님은 엄중히 심판하실 것입니다(고전8:12). [토] 합심 기도 (마18:15-20) 위대한 기도는 주의 응답을 받는 기도입니다.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19절). 성도간에 마음을 합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에는 바울파, 게바파, 아볼로파, 그리스도파 등 분쟁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허물지 못하는 마음의 벽들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조화를 이루고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합심하여 기도하는 일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 안에도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우리 교회가 초대 예루살렘교회와 같이 모범적인 교회가 되려면 교회의 구성원 된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 마음의 벽을 허물고 합심하여 기도하는 일에 애써야 됩니다. 그럴 때 우리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아름답게 성장해가며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도 온전히 감당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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