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령 목사(브니엘장로교회) [월] 성경과 씨름하자(시119:81-88)찬367장 본문에 성경과의 관계로 생기는 성도의 체험은 진실한 수고를 드리는 것으로 표현됐습니다. 얼마나 진실했습니까? 첫째, 그는 피곤하기까지 사모했습니다(81). 피곤하도록 수고하는 사모심은 성경을 깨닫는 것이 목표입니다. 진실의 언어는 구태의연한 마음에 알려지지 않습니다. 오직 진실한 마음에 열립니다. 둘째, 신실한 말씀의 만남을 원했습니다(86). 그는 말씀의 진실성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진실하심처럼 그의 말씀도 진실합니다. 최대의 진실로 성경을 대할 때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셋째, 영적 소생을 기대했습니다(88). 소생이란 부흥, 개혁, 새로움을 가리킵니다. 역사적 사건과 기록자의 성향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낸 성경은 모든 오류에서 보호를 받은 정확무오한 영감된 말씀입니다. 기록된 말씀을 대할 때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직접 그 시간에 말씀하시는 산 말씀으로 받아야합니다. 영이요 생명인 성경말씀의 움직임에 사로잡힙시다. [화] 말씀의 능력(시119:88-96)찬94장 성경의 능력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과 동질의 것임을 아는 시인은 성경의 능력의 위대함을 찬양합니다. 첫째, 창조의 말씀(89)-혼돈과 공허에서 아름다운 세계를 만드심은 말씀의 열매였습니다. 무에서 유를, 유에서 더 나은 유를 만드심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 한마디에서 생긴 것은 너무 기이합니다. 창조의 말씀을 품고 사는 자는 새해의 삶을 창조적으로 살 수 있습니다. 둘째, 섭리의 말씀(90-91)-이 창조의 말씀이 하나님의 경륜을 따라서 만유를 붙드십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없고 전하는 말이 없어도 말씀의 사역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구원의 삶 속에 그 절정을 이루기에 성도는 그의 말씀만으로 유일한 위로를 삼습니다. 셋째, 완전한 말씀(96)-동시에 창조와 섭리의 말씀은 종말의 완성을 이루시는 동일한 말씀입니다. 말씀을 받은 자의 구원을 시작하시고 진행하시고 마침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로 완성하십니다. [수] 묵상의 즐거음(시119:97-104)찬205장 성경 낱말, 구절 하나하나에 마음을 집중하고 반복해서 생각하는 묵상실천은 우리로 기이한 즐거움을 누리게 합니다. 왜 그런가요? 첫째, 성경은 항상 최고의 경험을 앞서기 때문입니다(99). 원수의 지혜를 능가하는 것이 성경입니다. 성경적 경험을 구하는 성도가 진정한 선견지명을 소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성경은 세상 지혜보다 앞서기 때문입니다(98). 스승의 지혜는 많은 지식에서 나온 것이나 성경의 가르침을 앞서지 못합니다. 모든 지식과 지혜의 머리인 여호와 경외심은 오직 성경을 바로 대할 때 배워지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따르는 자는 모든 지식의 근본을 소유한 자입니다. 셋째, 성경이 기쁨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133). 금보다 더 사모하며 송이 꿀보다 더 단 체험은 성경과 연합할 때 일어납니다. 이 단 체험은 생명 체험이며 하나님의 사랑 체험입니다. 성경에 착념함으로 천국의 즐거움을 누립시다. [목] 말씀의 빛(시119:105-112)찬193장 성경은 어두운 영혼의 빛입니다. 말씀의 빛은 말씀의 단맛, 보배 그리고 능력의 다른 표현입니다. 어두움에 비추는 빛을 보는 것은 성경묵상하는 자가 맛보는 세계입니다. 첫째, 등불의 체험(105-107)-가는 길과 걸음을 바로 알게 해주고 안정과 담대함을 얻게 합니다. 이것이 있으면 좁은 길을 찬송하며 걸을 수 있습니다. 환난 날에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것은 이 빛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둘째, 자유의 체험(111-112)-얽어 메는 환경에서도 성경에 사로잡히면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성경이 지배하는 마음에 성령의 은혜가 임하기 때문입니다. 사망의 줄이 얽어매거나 불의의 창수가 몰려와도 성경 안에 거하는 자는 진리의 자유를 누립니다. 셋째, 치유의 체험(108-109)-고난을 당할 때 즐거움이 일어납니다. 시인이 성경을 영원한 기업으로 삼은 이유가 치료된 자기 영혼에 하늘의 즐거움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금] 시온을 사랑하는 자(시129:1-8)찬189장 시온을 사랑하는 자로 살아가기 위해 본문은 무엇을 가르칩니까? 첫째, 성, 마른 땅, 피난처의 뜻인 시온이란(삼하5:7) 이스라엘, 시내산, 그리고 예루살렘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이것은 신약의 교회, 천국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 완성되어 시온을 사랑하는 자로 살게 하셨습니다. 둘째, 시온을 멸시하는 자가 많습니다. 시온을 멸시하는 세상은 성도의 길인 복음을 경시합니다. 이 틈에서 여러 갈등과 고난을 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때 우리는 주님의 약속을 붙들고 나아가야합니다. 셋째, 어떻게 시온을 사랑합니까? 1)시온의 계시를 사랑해야합니다. 시온에서 나온 말씀만이 생명이며 빛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우환 속에서도 말씀의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2)시온의 보좌로 나가야합니다(히3:14). 믿음을 화합하는 기도로만 되는 일이 우리 앞에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3)시온의 찬송과 감사를 드려야합니다. 교회중심한 삶을 힘씁시다. [토] 여호와께 부르짖자(시130:1-8)찬479장 항해 길은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릅니다. 주님이 타신 배에도 갑자기 강풍이 몰려왔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시인은 그런 자리에서 어떻게 구했습니까? 첫째, 어디서 부르짖나요? 깊은데서 부르짖었습니다. 우리가 있는 거기가 기도를 시작하는 자리입니다. 둘째, 무엇을 기대하며 부르짖었습니까? 기대하는 믿음을 가진(히11:6) 시인은 어떻게 구했습니까? 1)풍성한 구속을 바라며 부르짖었습니다(8). 사유하심이 주께만 있음과 그 목적이 경외신앙을 갖게 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2)주의 말씀을 바라며 부르짖었습니다(5). 말씀 속에 성령이 역사하고 성령의 역사 속에 말씀이 열매를 맺기에 말씀과 성령을 보내달라고 기도해야합니다. 3)주를 바라며 부르짖었습니다(5-8). 이런 고난 과정은 결국 주님을 만나 그의 형상으로 화하는데 있습니다. 노여움을 찬송으로, 반석을 못으로, 차돌을 샘물로 바꾸는 믿음을 가지고 나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