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가정예배

2011년 8월 1일 - 8월 6일

전화령 목사(브니엘장로교회) [월] 찬양과 기도 (사63:7-19) 찬506장 구원과 심판이 동시에 일어나는 종말시대를 지나는 성도는 두 가지를 힘써야합니다. 첫째, 찬송해야합니다(1-14). 선지자는 역사 속에 베푸신 하나님의 크신 손길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이것은 홍해도하와 가나안 정착사건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요약하면 그의 절대 사랑하심을 찬양한 것입니다(10). 반역했을지라도 끝까지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이 그들을 구하신 것처럼 우리를 구하십니다. 둘째, 기도해야합니다(15-19). 구속의 은혜를 발견하고 찬송하는 자는 동시에 기도하게 됩니다. 이사야는 아브라함과 이스라엘은 기업을 잊어도 하나님은 잊지 않으시는 부자관계의 언약을 근거로(16) 배은망덕하여 비참하게 된 유다를 긍휼히 여겨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찬송과 기도의 무기를 잘 활용합시다. [화] 요셉의 꿈 (창37:1-11) 찬542장 요셉의 꿈은 왜 성령을 받은 그리스도인 꿈의 샘플입니까? 첫째, 하나님에게서 나온 꿈이기 때문입니다(5). 그가 꿈을 마음에 품고 형제들에게 말한 것은 일시적인 꿈이 아니고 사명을 위하여 하나님이 심어주신 성령의 이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젊은이가 환상을 보고 늙은이가 꿈을 꾸는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행2:17). 둘째, 그것은 그리스도를 중심한 꿈이기 때문입니다(7-8). 열한 짚단들이나 해와 달 열한별 꿈은 가족, 가문, 애굽을 책임지고 신정(theocracy)을 세우기 위한 택한 그릇으로 부름 받은 사실을 증거합니다. 그는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이었습니다. 셋째, 남의 꿈을 해석하는 은사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10). 성령의 꿈으로 충만한 생애를 살아갑시다. [수] 요셉의 임마누엘 (창39:1-23) 찬456장 요셉의 고난은 사명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훈련장이었습니다. 거기서 요셉은 어떤 은혜를 누렸습니까? 첫째, 인격이 변화됐습니다(7-18). 형님들의 시기와 미움을 유발한 그의 참소하는 모난 인격이 깎여지게 됐습니다. 13년 동안 고난을 통해 그는 겸손과 견디는 인격으로 바꾸어졌습니다. 둘째, 사명이 구체화됐습니다(9-23). 그 고난은 그를 점점 더 사명을 확실하게 만들었습니다. 자기를 성결하게 하는 일에 힘쓰는 것 자체가 자기 사명을 뚜렷하게 하는 하나님의 손이었습니다. 셋째, 임마누엘의 복을 누렸습니다(2,3,23). 요셉이 모든 일이 형통해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것은 하나님이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복된 경험이 세상을 하나님의 형상화하는 원동력이 된 셈입니다. 우리 가정은 요셉의 복을 얼마나 누리는지 살펴봅시다. [목] 하나님의 섭리의 손 (창41:41-57) 찬461장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손길이 항상 일하심을 보인 본문에 우리는 어떤 증거를 발견합니까? 첫째, 바로의 꿈을 사용하셨습니다(1-13). 애굽의 한 군주의 꿈은 요셉이 치리자가 돼 언약백성이 큰 민족으로 자라나는 발판이 됐기 때문입니다. 거미줄같이 얽혀진 사건들 속에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언제나 자상하심을 보아야 합니다(롬8:28). 둘째, 애굽의 흉년과 풍년을 허락하심이 아브라함의 언약을 이루는 길이었습니다(32-33). 자연혜택과 재해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 자주 사용하신 도구였습니다(왕상18:1). 셋째,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하나님나라를 보여줍니다(37-40). 바로는 흥왕하는 세상통치로 만족했지만 요셉은 하나님나라의 왕성함을 볼 수 있었습니다. 눈을 들어 하나님의 크신 손을 바라봅시다. [금] 문제의 해결방법 (왕하4:1-17) 찬278장 본문은 생활 속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자상하게 보여줍니다. 첫째,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을 찾아야합니다(3). 내게 있는 오병이어, 기름 한 병 그리고 먹고 죽을 한 개의 떡을 가지고 일하십니다. 주께 드릴 때 일하심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그대로 수납해야 합니다(16). 상상을 초월한 역사는 언제나 우리에게 가장 가까이 일어날 수 있기에 하나님의 손을 믿고 큰 역사를 기대해야합니다. 셋째, 최선의 선행을 통해 일하십니다(9).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대접하는 배려는 난관을 당할 때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근거가 됩니다. 그 자체가 공로는 아니나 그것을 통한 믿음 때문에 하나님은 기이한 일을 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긍휼(선행)이 환난을 이깁니다(약2:13). [토] 환난 날의 소망 (왕하6:24-7:2) 찬241장 성도가 고난을 당할 때 어떻게 소망을 가집니까? 첫째, 비참한 현실을 인정해야합니다(26). 비참을 목도한 왕은 베옷을 입고 회개할 정도가 됐습니다. 엘리사의 혁혁한 사역만큼 우상을 섬기는 백성의 마음은 돌이키기에 너무 느렸습니다. 현실의 궁핍을 통해 주의 손은 어디를 향하십니까? 둘째, 회개하는 기회로 삼아야합니다(29). 인육을 먹은 엽기적 행각은 비참자체였습니다. 도둑질할 것을 걱정해 지나친 궁핍 피하기를 구한 아굴의 간구는 이런 정황을 두고 한 것입니다. 사마리아의 죄 못지않은 때 겸손히 회개해야합니다. 셋째, 불신앙을 경계해야합니다(7:2). 왕이 신뢰하는 군대장관의 불신앙은 주의 역사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엘리사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됐습니다. 말씀제일주의의 신앙을 파수함이 급선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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