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가정예배

2011년 4월 11일 - 4월 16일

권영국 목사(대흥교회)

[월] 하나님의 장래 약속 (계1:1-3) 1절은 요한계시록이 쓰여진 목적에 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공동체 생활을 하던 초대교회 교인들이 주님의 재림과 종말이 지연되자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생기게 됐습니다. 거기에 신앙의 박해가 도미티아누스황제를 통해 심화되자 그들에게 위로와 소망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두 개의 단어 ‘반드시’와 ‘속히 일어날 일들’로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한치 오차도 없이 그대로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이 소망이 고통과 말세시대에 사는 우리 성도들에게 위로와 격려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을 바라보며 희망과 용기를 내어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화] 충성된 증인 (계1:4-5) 5절에 예수그리스도를 ‘충성된 증인’이라 표현합니다. 예수그리스도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그를 보내신 자에게 충성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무엇 때문에 충성을 보이셨습니까? 오직 한 가지 목적 곧 그를 보내신 자의 뜻을 증거하기 위해 죽음도 불사하셨던 것입니다. 진리를 전하며 수호하는 증인으로서 충성을 다한 것입니다. 이 모든 의미가 ‘충성된 증인’이라는 칭호에 함축적으로 내포돼 있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증거하는 자로서 순교자의 정신을 갖고 최선을 다해 용감하고 당당하게 진리를 전파하고 수호해야 할 것입니다. [수] 이 때라 (계1:6-8) 7절에서 주목할 것은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만인이 볼 수 있도록 재림하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성경은 주님의 영적 재림이 아니고 구름타고 올라가신 대로 다시 육체그대로 내려온다고 말씀하십니다(마24:27-30; 행1:11). 그래서 우리는 모두다 주님이 재림하시는 것을 볼 것입니다. 이어진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이 말씀은 주님의 재림 때 있을 세상의 한 양상을 표현한 것입니다. 즉 그 때가 되면 소리내 슬피 울어야 할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예수를 영접하지 않는 자, 영원한 형벌을 받을 불신자들의 통곡입니다. (고전6:2) 지금은 영원한 웃음이냐, 영원한 애곡이냐를 결정하는 때입니다. 이때를 놓치지 않기 바랍니다. [목] 고난에 동참 (계1:9-20)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서 요한계시록을 기록했습니다. 오늘날 밧모(Patmos)는 에베소 앞 스포라데스 군도에 속한 아름다운 경관을 가진 섬이지만 당시에는 정치범들의 유배지로 요한 자신도 황제에 대한 반역자로 몰리어 결국 밧모섬으로 유배를 당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자신을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당시 고난을 피할 수 있었지만 자발적인 결정에 의해 고난당했습니다. 고난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그의 선택이었던 것입니다. 기독교의 ‘참음’은 체념이 아닙니다. 어쩔 수 없이 고통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고난에 동참하는 자는 적극적이며 능동적인 자세로 고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금] 칭찬받는 신앙 (계2:1-7) 주님은 모든 성도와 교회의 모든 사정을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낙담하고 실망할 때가 있습니다. 2절에서 주님께서 칭찬하시는 신앙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먼저 행위들과 수고는 적극적인 선한 행위입니다. 겉치레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실천한 행위들과 수고입니다. 또 인내는 지속적으로 그 행위들과 수고를 한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칭찬하시는 신앙은 지속적이며 적극적인 신앙입니다. 또 3절을 보면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남이 인정해주던 아니던 오직 주의 이름을 위해 참고 견디며 적극적으로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위와 수고들, 이것이 우리 주님께서 칭찬하시는 신앙입니다. [토] 부요한 자 (계2:8-11) 9절, 서머나교회에 대한 주님의 평가가 나옵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서머나교회는 극한 박해 속에서 고통 받으며 가난한 삶을 살아야했습니다. 도미티아누스황제의 핍박 속에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인 어려움을 주님을 믿기에 감수해야했던 것입니다. 육적으로는 환난과 궁핍가운데 있었지만 영적으로는 부요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에게 닥친 환경을 탓하고 불평하지 않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건강한 믿음을 가진 성도는 상황을 탓하지 않습니다. 남과 자신을 비교해 더나은 상황을 꿈꾸며 살아가지도 않습니다.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신앙을 따라 살아가는 모습이 바로 하나님이 칭찬하시는 훌륭한 성도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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