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가정예배

2011년 2월 7일 - 2월 12일

권영국 목사(대흥교회)

[월] 실체를 믿는 신앙 (요일1:1-4) 성도는 예수님에 대한 실질적이고 직접적인 경험을 가진 자들입니다. 믿음의 1세대라 할 수 있는 제자들은 예수님의 탄생과 함께 복음 전파와 가르침, 십자가 사건과 죽음, 그리고 부활 사건을 보고 듣고 주목하고 손으로 만지며 신앙을 가질 수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분명 축복입니다. 하지만 이 축복은 비단 1세대들만의 특권은 아닙니다. 본 서신을 받는 성도 중에는 예수님을 직접 보지 못한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우리가’ 경험했다고 말합니다(1절). 어떻게 가능합니까? 성령의 내적 증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간혹 과학적 증거와 경험을 주장하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성령의 역사를 아직 체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오히려 불쌍히 여기며 신비나 허구가 아닌 실체를 믿는 신앙으로 기도하며 잘 인도해줘야 할 것입니다. [화] 하나님과 사귐 (요일1:5-10) 본문은 성도가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 가져야 할 두 가지 기본자세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어두움의 일을 버리고 빛 가운데 행하라는 것입니다(5-7). 둘째는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용서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8-10절). 하나님과의 교제를 가로막는 장애물은 어두움과 죄입니다. 7절에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한다는 것은 우리가 빛 가운데서 온전히 죄인임이 드러날 때, 그 때 비로소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구원에 있어서 아무런 영향력도 미치지 못하는 무능한 존재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주님의 빛 가운데 거하는 일 밖에 없습니다. 그때 우리의 죄가 깨끗이 씻음 받고 우리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것입니다. [수] 중보자 되시는 예수님 (요일2:1-2) 1절에 ‘대언자’라는 말은 헬라어 ‘파라클레이토스’로서 ‘중보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보자는 서로 대립 또는 적대 관계에 있는 양자 사이에 서서 적의의 원인을 제거하여 화해와 일치를 얻게 하는 자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아브라함이나 모세와 같은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이 이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불완전한 인간이었습니다. 때문에 완벽한 중보의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우리 성도에게는 중보자로서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는 죄인입니다’라고 외치는 사단 앞에서 재판장이신 하나님께 ‘내가 그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라고 친히 말씀하실 중보자 예수님이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도 담대하게 기도로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목] 예수님을 사랑하는 방법 (요일2:3) 3절에 “하나님과 예수님을 안다”는 말은 요한서신에서 중요한 의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알다’라는 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의미를 넘어서서 지각적으로 알 뿐만 아니라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을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랑한다는 것을 확신하며 증명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은 계명을 지키는 자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14:21)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무엇으로 증명하시겠습니까? 예물입니까? 봉사입니까? 그보다 먼저 사랑하는 그분의 뜻에 따라 말씀의 계명을 지키며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금] 중생의 표적(요일2:9-11) 9절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빛 가운데 있는 구원받은 성도는 지속적으로 형제를 미워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괴로워서 회개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 목숨을 버리신 사랑의 영, 우리 주님이 내주하시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의 전체주제가 사랑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구원의 확신문제입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백성으로 중생함을 받았는가? 그렇다면 열매가 나타나는데 그 열매중 하나가 바로 형제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형제사랑으로써 구원받은 표적을 보일 수 있습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13:35). 이 표적이 여러분에게 나타나 중생의 증거, 구원의 표적이 되기를 바랍니다. [토] 말씀으로 세상을 이기라(요일2:12-17) 15, 16절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라고 말씀합니다. 마4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받는 사건이 나옵니다. “돌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육신의 정욕을 시험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 내리라” 안목의 정욕을 자극했습니다. “천하만국의 영광을 줄테니 자신에게 경배하라” 이생의 자랑을 시험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이 이 시험들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마귀는 우리를 유혹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지 말고 육신을 위해 살라고 유혹합니다. 눈에 보기 좋은 대로 행하여 남에게 보이기에 힘쓰라고 말합니다. 자기 이름, 자기 의를 위해 살라고 유혹합니다. 부디 이 유혹을 하나님 능력의 말씀으로 이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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