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가정예배

2010년 6월 7일 - 2010년 6월 12일

권영국 목사(대흥교회)

[월]바울과 디도(딛1:1-4) 본서는 그레데교회에 필요한 장로의 자격요건 및 이단과 거짓 사상에 대한 경계, 그리고 교회의 조직수립 및 정통교리수호를 위한 목적으로 쓰여졌으며, 이러한 실천 덕목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근본 진리와 관련한 영생과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신학적 내용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4절에서 바울은 디도를 ‘나의 참 아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디도는 바울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헤아리고 그의 뜻을 따라주었던 바울의 영적 아들이었습니다. 여러분은 바울의 이러한 디도에 대한 칭찬에 대해 무엇을 깨닫습니까? 성도는 자기를 믿음으로 낳고 양육하는 목회자에게 있어서 디도와 같은 참 아들이 돼야 하는 것입니다. 동역자로서 또는 영적부모와 자녀로서 바울과 디도의 관계의 축복을 우리도 얻기를 바랍니다. [화]이 땅에 떨어뜨린 이유(딛1:5-9) 그레데는 헬라 본토 남단 지중해에 위치한 시실리, 사르디니아, 구브로 다음으로 네 번째 큰 섬이며 유럽과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입니다. 바울이 이런 그레데에 디도를 떨어뜨린 이유는 부족한 일을 바로잡고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기 위함입니다(5절). 여기서 부족한 일을 바로잡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당시 그곳의 영적 혼란과 무질서를 생각할 때, 바쁜 선교 일정으로 사도 바울이 미처 바로잡지 못했던 문제를 해결하고 질서를 바로 세우는 일을 바로 디도에게 맡겼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성도들을 이 땅에 남겨두신 이유도 이와 비슷합니다. 즉 주님께서 미처 이루지 못한 일들을 성도들로 하여금 완성케 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3절). 복음을 전하고 증거하는 일입니다. 그 사명을 잘 감당하시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수]할례당(딛1:10-15) 10절, 복음에 순종치 않고 속이는 많은 자들 중 특히 할례당은 유대교에서 개종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여전히 율법을 고집하며 구원을 위해서는 할례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하던 자들을 가리킵니다. 마치 금단증상 같은 원리입니다. 중독성 물질을 습관적으로 즐기던 자가 이를 끊었을 때 보이는 신체적, 정신적 증상, 바로 할례당이 율법으로 자꾸만 돌아가려고 했던 증상과도 같은 것입니다. 성도는 완전히 새롭게 된 피조물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과거 땅의 것들을 잊지 못하고 복음에 그것을 덧붙여 채우려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성도는 오직 이 땅의 것들을 십자가에 못박고 은혜 가운데 날마다 새로운 피조물로 거룩하게 변해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뿐이기 때문입니다(갈6:15). [목]행하는 자(딛1:16)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바울은 이러한 자들을 가리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딤후3:5)라고 말합니다. 믿음은 말보다 행위에 있다는 것을 말씀하는 내용들입니다. 그런데 롬10:9,10을 보면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에 이른다고 하지 않았는가? 왜 행위를 강조하고 있는가? 반문할지 모릅니다. 물론 우리는 입으로의 시인과 고백을 통해 구원을 얻습니다. 이것은 영원불변의 진리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입술을 통한 믿음의 고백은 반드시 그에 걸맞는 행위를 수반한다는 사실입니다. 믿음의 고백은 성령의 역사에 따른 결과이며 그러한 성령의 역사에는 반드시 행위의 열매가 동반되기 때문입니다. 입술의 고백과 삶이 일치하는 삶, 진정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자(마7:21)이고 인생의 유익을 얻는 자(약2:14)입니다. [금]근신하라!(딛2:1-10) 바울은 디도에게 젊은 남자들에게 뿐 아니라 남녀노소에게 근신을 가르치도록 권면하고 있는데(2,3,5절) 문제는 이 절제와 근신이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이를 올바로 체득하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부터 제대로 배우고 훈련해야 합니다. 인류는 태초부터 아담과 하와의 절제하지 못하는 욕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영광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 속성을 이어받아 인류는 “맨 것을 끊고 결박을 벗어버리자”라며 주어진 한계와 분수를 넘는 죄와 타락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이것은 한계와 질서를 정하신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며 심판과 멸망의 길입니다. 자신을 쳐 복종시키는 이 절제와 근신의 덕목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절실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오늘 우리 성도들에게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토]하늘의 권세(딛2:11-15) 바울은 디도에게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누구에게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즉 남녀노소 지위를 막론하고 누군가 진리를 거스리고 대적할 때는 권위를 가지고 두려움 없이 책망함으로써 진리를 수호하고 바로잡을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바울은 무슨 권위가 디도에게 있길래 이와 같은 말을 했을까요? 바로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권세입니다. 하나님의 권세는 이 땅의 그 어떤 권세보다 크기에 구약과 신약의 선지자와 사도들, 그리고 초대교회의 종들까지도 이 사실을 믿으며 이 땅의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책망하며 진리를 선포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세가 우리에게 있음을 믿고 세상을 향해 담대한 모습으로 진리를 선포하고 교회의 권위를 세우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당당한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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