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장로교회 원로
월: 예수님의 마음과 뜻이 아닌 육신의 욕심의 영향을 받고 사는 사람 (마20:17-24) 찬 288장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신다”는 영적 실상을 알고 살아야 한다. 비록 구원을 받았을지라도 여전히 죄의 성품에서 나타나는 욕심은 언제든지 일어난다. 예수님은 대속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무거운 일을 앞두고 계시지만 제자들은 높은 자리를 서로 욕심을 품고 있었다. 믿음 생활하는 우리에게도 죄의 성품에서 일어나는 욕심이 얼마든지 일어난다. 주님의 마음에서 나타나는 소원인지 아니면 죄 욕심에서 나타나는 것인지 분별하여야 한다. 나의 만족을 성취하는 것이 인생의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서 우리 주님의 성품이 삶에서 얼마나 나타나는가에 하나님 앞에서 가치로 평가를 받는다. 나에게서 주님의 생명의 것이 나타나는 주님의 지체로 살아야 한다.
화: 나에게 주신 대속물로 인하여 나는 어떠한 은혜를 받았는가? (마20:28) 찬 268장
나는 죄가 안에 살아있는 죄인이다. 나는 그 죄의 영향을 받아서 죄를 범하며 살고 있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법에 의하여 영원한 형벌을 받으며 산다. 이러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대속물이 되신 예수님을 통하여 모든 죄를 사함 받을 뿐만 아니라 죄인의 신분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을 받게 된다. 예수님을 믿고 모시지 않으면 이 은혜를 누구도 받을 수 없다. 이렇게 은혜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을지라도 내가 또 죄를 범하게 되는데 그때 지은 죄를 죄로 인정하지 않고 숨겨두고 있으면 나의 마음은 그 죄들로 인하여 마음이 굳어지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식어지고 하나님을 향한 자원하는 마음이 시들어진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그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대속물로 인하여 또 사하여 주시는 은혜를 베푸신다. 죄의 생각을 품으면 부정하여진다. 자백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생각하여 죄의 생각들이 씻어지게 하여야 한다. 거룩한 말씀이 죄를 떠나게 한다.
수: 주여 우리의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마20:29-34) 찬 545장
맹인은 다른 사람은 볼 수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그것을 누리지도 못하고 낮에도 어둠에서 살아야 하는 불쌍한 사람이다. 그 사람의 소원은 보는 것이다. 구원을 받은 사람은 믿음의 눈을 열어야 한다. 우리가 섬기는 주님이 영으로 함께 하시는데 우리가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볼 수 있도록 소원하여야 한다. 다윗은 항상 하나님을 앞에 모시고 살았다. 하나님을 보지 못하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주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다. 보이지 않으면 지식으로 알고 있는 정도다. 주님을 높이고 섬기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의 믿음의 눈을 열어 보도록 하여 주신다. 성령이 도와주시면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통하여 말씀대로 믿게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는 귀로 듣고 아는 것과 같이 주님이 나와 같이 하심을 주님이 알려 주신 그 말씀을 통하여 확실하게 아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으로 보는 것이다. 말씀을 믿지 못하면 보지 못하는 것이다. 말씀의 실상을 생각하라.
목: 주가 쓰시겠다 하라 (마 21:1-9) 찬 425장
나의 주인이 나 자신인가? 나의 부모와 자녀의 주인은 누구인가? 각자인가? 본문의 나귀 새끼의 주인은 자신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잘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주인을 잘 섬기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주인이 편안하게 사용하실 수 있는 사람이었다.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이 주인으로 평생 알고 주인으로 산다. 그리고 자신을 섬기고 자신을 위하여 산다. 그러한 사상은 마귀가 넣어준 것이다. 우리 구원받은 자들은 그러한 사상을 배설물과 같이 부정하게 여겨야 한다. 나는 주인이 사용하시는 주인의 것이다. 주인의 뜻을 위하여 나를 사용하시는 것이다. 주인을 위하여 내가 사는 것이다. 내가 주님과 마음이 멀어지면 주인의 것을 내 것으로 알고 내가 좋아하는 대로 사용한다. 그리고 주인이 사용하고자 하실 때 거절한다. 나에게 장차 죽음이 있다고 하는 것은 나의 주인이 나를 부르시기 때문이다. 주인을 알고 주인의 것을 알고 주인의 마음에 들도록 살아야 한다.
금: 거룩한 성전 안에 있는 타락한 내용들 (마21:12,13) 찬 286장
성전은 하나님이 친히 계시는 곳이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거룩한 집이다. 본문의 성전은 이름만 성전이고 내용으로는 성전이 아니다. 매매하는 장터였다. 누가 성전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죄가 그렇게 한 것이다. 죄는 하나님을 부인한다. 죄는 자신을 위하여 살고 자신을 우상으로 하여 섬기고 살게 한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성전이 아니다. 오늘날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은 어디에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모시고 섬기는 사람이 성전이다. 하나님이 영원히 그 사람에게 임하여 계시는 성전이다. 그 성전은 장차 하늘로 들림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이 섬김을 받는 곳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곳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는 곳이다. 성전을 죄의 생각으로 더럽히지 않게 하여야 한다. 성전 안에 죄의 생각이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게 하여야 한다. 주님을 섬기는 삶이 하나님에게 드리는 거룩한 제물이다.
토: 열매가 없는 실망스러운 무화과나무 (마21:18,19) 찬 524장
무화과나무라고 할 때 그 나무는 무화과 열매를 맺는 나무라고 하는 뜻이다. 구원을 받은 사람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른다. 그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모습이 나타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본문에서 예수님이 시장하셔서 나무에게 가서 보았더니 열매가 없었다. 우리의 주인이신 주님은 나에게서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시기 위하여 아들의 영 성령께서 함께 하신다. 성령께서 주시는 생각을 따르고 누리고 살면 주님의 모습이 나타난다. 주님의 향기가 나타난다. 성령의 은혜를 누리지 않고 자신의 선함과 착함과 좋은 것을 누린다고 해서 주님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의 모습은 주님의 영에서 나타나는 것을 누릴 때 비로서 나타나는 법이다. 죄의 생각을 누리는 대신에 성령의 생각을 누리는 훈련을 많이 하여 열매가 더욱 풍성하게 하여야 한다.
11.18.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