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가정예배(10.02.2023-10.07.2023)


월: 나의 마음이 악한 생각의 보금자리가 되지 않도록 하라. (마 12:43-45) 찬 420장

구원받은 자들의 마음은 성령이 임하시는 성전이다. 예수님의 거룩한 피를 뿌려서 거룩하게 성별하여 성령이 임하여 계시는 곳이다. 이러한 성전에 악한 영이 보낸 악한 생각들이, 사망의 생각들이 마음을 차지하도록 두면 절대로 안 된다. 성전을 더럽히면 안된다. 항상 주님을 모시도록 하여야 한다. 주님을 외면하고 사망의 생각이 중심에 있는 상황에서 살지 않게 하여야 한다. 성전 문지기인 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제사장인 줄로 알아야 한다. 그리고 주님을 모시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의 제물을 매일 드리는 제사장으로 살아야 한다. 신분은 하나님의 아들인데 삶에는 하나님이 없고 하나님에게 드리는 제물이 없다면 죽은 성전이다.

 

화: 주님이 뿌리신 씨앗은 농사가 잘 되고 있는가? (마 13:1-8) 찬 425장

구원받은 사람의 마음은 농부가 되시는 하나님의 밭이다. 밭에는 생명의 씨앗을 뿌려서 그 열매를 거두는 곳이다. 씨앗에 관한 지식을 밭에 뿌리는 것이 아니다. 생명 자체를 심는 것이다. 영생이신 주님을 마음에 모시는 것이 심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 생명이신 주님을 마음에 모시는 것이 생명이 심어진 사람이다. 지식은 아니다. 오늘날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죽은 씨앗이요 가짜 씨앗이다. 농부가 되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생명을 심으신다.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면 그 생명에서 생명의 생각이 솟아난다. 이 생각을 내가 믿고 누리고 살면 그 생명은 나에게서 나타난다. 그것을 하나님이 거두시고자 하는 열매다. 죄에서 나타나는 사망의 생각을 품고 누리면 가시와 엉겅퀴가 나타난다. 이름은 하나님의 밭인데 나타나는 열매를 보면 생명의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정상적이지 못하다. 눈을 열어 하나님의 밭을 바라보라. 하나님의 수장절에 주인의 기쁨이 넘치게 하는 밭이어야 한다.

 

수: 나의 영원한 삶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알고 사는가. (마 13:41-43) 찬 93장

우리는 죽음의 사건을 통하여 이 세상에서 떠난다. 그리고 영원히 살 곳으로 가서 산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가? 늙음이 오고 있음은 떠날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 세상을 떠날 때 두 가지 신분 중에 하나로 떠난다. 죄인으로 떠나고 혹은 하나님의 아들로 떠난다. 이 세상에서 살면서 지은 모든 죄로 인하여 죄인이 되는 것이다. 죄인은 죄에 따라 그 형벌이 정하여지고 그 형벌에서 산다.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은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다. 예수님이 같이 하심으로 나의 신분은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그리고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는 천국에 가서 산다. 두 가지 신분 중에 나는 어느 신분인가 확실하여야 한다. 영원한 소망이 있는가?

 

목: 가장 귀한 보화를 발견하고 나의 것이 되었는가? (마 13:44) 찬 516장

보화는 나의 소중한 것을 해결하여 주는 가치가 있다. 그러한 가치가 없다면 내게 보화가 아니다. 나에게 보화로서 인정 받으려면 나를 불행하게 하는 죄들이 가득한 곳에서 살기 때문에 그 죄에서 보호 인도 구하여 주어야 한다. 약한 나를 떠나지 않고 같이 하여 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 세상을 떠나면 나를 천국에서 살 수 있도록 하여 주어야 한다. 이러한 복이 내게 진정한 보화가 된다. 세상의 재물이? 세상의 권세? 세상의 즐거움이? 내 가족이? 건강이? 이러한 것은 해결하여 줄 수 없다. 오직 살아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러한 일들을 책임지는 유일한 복이다. 그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가? 그렇다면 나에게 그 보화가 있는 사람이다. 많은 사람이 교회에는 다니지만 이러한 보화를 발견하지 못한 자로 있을 수 있다. 참으로 보화를 소유한 자는 천국에 소망을 품고 산다. 

 

금: 예수님을 안다고 하지만 실상은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 (마 13:54-58) 찬 453장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였다. 오늘날 교회를 오랫동안 다니고 직분까지 받아 섬기기도 하므로 예수님을 나름대로 잘 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전히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 있을 수 있다. 예수님을 사실 모른다고 하는 증거가 그의 삶에서 나타난다. 살아 있는 꽃은 가까이 가면 향기가 있다. 조화를 가까이하면 향기가 없다. 가짜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에서 함께하시는 주님에게 조심하려고 신경을 전혀 쓰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세월이 흘러도 함께 하시는 주님에게 대하는 모습의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다. 이러한 사람은 주님을 모르기 때문이다. 주님이 자신에게는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토: 죽을 때 모습보다 살아 있을 때 삶의 모습이 더욱 귀하다. (마 14:8-12) 찬 542장

세례 요한은 하나님으로 뜻으로 보내신 사람이다.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사명은 이미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일이다. 여인이 나은 자 중에 가장 큰 일을 한 자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이렇게 하나님의 소중한 사람인데 그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 너무나 비참하다. 한 여인의 악한 생각으로 인하여 목을 배임 받아 소반에 담아지는 모습이다.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렇게 하도록 허락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일어난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이 때때로 나에게 이해가 되지 않을 때 나의 이해를 만족하게 하려고 하지 말라. 완전하신 하나님 앞에서 그러한 생각을 버리라. 이해되는 것이 진리가 아니라 하나님은 진리이시기 때문에 믿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09.30.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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