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가정예배

허윤준 목사(뉴욕새생명장로교회) jameshur63@hotmail.com

[월]내가 잉태하였나이다 하니라(삼하11:5) 밧세바가 이제까지는 다윗이 시키는 대로 함께 간음죄를 저지르더니 아이를 잉태하니까 즉시 다윗에게 잉태했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간음한 자는 모두 사형에 처하기”(레20:10) 때문입니다. 이제 밧세바는 동네 사람들과 우리아에 의해서 돌로 쳐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뿌리면 반드시 죄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살펴보겠지만 다윗은 이 뿌린 죄악의 씨 때문에 정신적 영적 육적인 고통을 당하는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진정 오늘도 우리는 언제든지 죄에 이끌려서 타락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더욱 깨어있어야 하며 순간순간 잘못된 것이 느껴질 때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도록 더욱 깨어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화]네 집으로 내려가서 발을 씻으라(삼하11:6-8) 다윗이 밧세바가 잉태했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요압을 시켜 우리아를 부릅니다. 잘못을 빌려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간음죄의 증거를 없애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때 다윗과 밧세바는 하나님과 우리아 앞에서 무조건 회개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사람이 죄를 지으면 얼마나 악해지는지를 보여줍니다. 지금 다윗이 우리아를 부른 이유는 그자신의 아이를 마치 우리아의 아이인 것처럼 꾸미기 위해 작전을 쓰는 모습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지으면 그 죄를 가리기 위해서 더욱더 많은 거짓말을 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죄가 죄를 낳고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때부터 이미 죄악에 점점 빠져 들어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죄를 씻는 길은 철저하게 회개하고 주님에게 돌아오는 길 외에는 없습니다. [수]그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니라(삼하11:9-13) 다윗이 어찌하든지 우리아를 집으로 들여보내서 자신의 죄를 숨기려고 하지만 우리아는 다윗왕의 특별휴가를 반납하고 집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다른 충성된 군사들이 전쟁에서 쉬지 않고 나라를 위해 싸우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내 집에서 내 처와 편안히 쉴 수 있는가? 한 것입니다. 정말 나라를 위해 충성하는 신하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오히려 더욱더 죄악을 은폐시킬 작전을 쓰고 있습니다. 우리아에게 술을 먹고 취해서 집에 들어가서 자게 하는 작전을 씁니다. 그런데도 우리아는 여전히 집에 들어가지 않고 군사들과 함께 잠을 잤습니다. 결국 다윗은 요압에게 편지를 써 우리아를 전쟁에 내보내 죽게 합니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악할 수 있습니까? 십자가의 보혈 앞으로 나오는 길 외에는 씻을 길이 아주 없습니다. [목]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에 앞세워 두고(삼하11:14-17) 사람이 한번 죄에 빠지면 얼마나 무서운지에 대해 계속 살펴보고 있습니다. 범죄의 유혹에 빠져서 죄를 진후에는 자기도 어쩔 수 없이 죄의 구렁텅이로 자꾸 빠져 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전에는 충성된 일꾼과 함께 의리를 지키며 생명을 다해 나라를 든든하게 세웠던 다윗이 이제 자신의 부정한 죄를 은폐하기 위해서 충성된 일꾼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이고 자신의 죄악을 가리려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아를 죽이는데 같이 동조하는 요압이라는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총사령관 요압은 다윗의 명령에 따라 우리아를 최전방에 보내 결국 죽게 했습니다. 요압은 지금 다윗 왕이 잘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도 한마디도 묻지 않고 우리아를 최전방에 내보내 죽여 버립니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금]우리아도 죽었나이다(삼하11:18-21) 우리가 생각해볼 것은 악한 일에 동조하는 사람도 더 악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왕에게 충성한다고 하면서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짓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나쁜 일에 동조하는 사람은 반드시 나중에 배반하게 돼있습니다. 요압은 지금 다윗 왕에 충성한다고 우리아를 죽였지만 결국 중요한 때마다 다윗을 괴롭히는 인물로 등장합니다. 성도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악한 일은 할 수가 없고 악한 일에 동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아는 죽었지만 문제가 생겼습니다. 우리아 뿐만 아니라 다윗이 아끼던 신복 몇 사람이 같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요압은 다윗 왕에게 혼날 것이 두려워 우리아가 죽었다는 것을 거듭 밝힙니다. 죄악을 은폐할 수 있도록 도왔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토]다윗의 소위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삼하11:22-27) 우리아를 최전방에 내보내 죽이기 위해악한 일에 가담하다 보니까 함께 했던 충성된 일꾼들을 많이 잃게 됐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다윗의 파렴치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많은 다윗의 심복들이 죽고 우리아도 죽었다고 하는데도 오히려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 이 일로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오히려 담대하게 하라면서 요압을 격려하면서 슬쩍 넘어가고 있습니다. 다윗이 우리아가 죽었다는 소식에 자신의 죄를 은폐할 수 있어서 안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죄악의 결과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다윗의 이 모든 행위가 여호와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악했습니다. 앞으로 다윗은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 철저하게 회개함으로써 용서 받고 다시 한번 하나님 은혜로 살게 됩니다. 이 엄청난 한량없는 은혜를 무엇을 갚을 수 있습니까?

Leave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