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준 목사(뉴욕새생명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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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때에 베 에봇을 입었더라(삼하6:14-15)
다윗이 제사장들과 달려가서 기쁜 마음으로 법궤를 옮겨옵니다. 특별히 다윗은 베 에봇을 입고 힘을 다하여 춤을 추었습니다. 이것은 그 당시 왕으로써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이면 왕복을 입고 신하들과 행진해야 하는데 베 에봇을 입고 기뻐 감격하며 법궤를 옮기고 있습니다. “베 에봇”을 입었다는 것은 ‘나같은 죄인 살리신 은혜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왕의 체면과 왕의 권세를 내려놓고 이스라엘의 왕이시요 나의 왕은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내가 왕이 아니라 하나님이 왕이시라는 것입니다. 나는 주님 앞에 죄인이요 나를 구속해준 은혜에 그저 감사하며 찬양드릴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왕인데 왕복을 벗었습니다. 십자가 앞에 겸손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다윗을 귀하게 보시고 감동하신 이유입니다. 할렐루야!
[화]다윗이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고(삼하6:16-17)
다윗은 법궤를 성막에 옮기자마자 헌신을 다짐하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방금 전에도 법궤를 옮길 수 있는 것에 감사하여 화목제를 드렸는데 지금은 화목제뿐만 아니라 헌신을 다짐하며 번제를 드린 것입니다. 화목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것을 감사하며 드리는 것입니다. 번제는 이제 나의 모든 것을 태워서 드리는 헌신의 제사입니다. 나의 생각 나의 판단 나의 자존심까지도 다 태워버리고 오직 하나님 한분께만 자원하여 감사함으로 헌신하겠다는 것을 다짐하며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번제와 화목제를 기뻐 받으십니다. 다윗은 지금 힘을 다해 하나님께 헌신할 것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다윗을 귀하게 보신 이유요 축복을 받아 누린 이유입니다. 너무 아름답지 않습니까?
[수]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삼하6:18-21)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즐겁게 뛰며 춤을 추다가 옷이 벗겨졌습니다. 은혜를 모르는 미갈은 다윗을 업신여겼습니다. “영화로운 이스라엘의 왕이 어찌 방탕하고 염치없이 몸을 드러내는가?”하고 난리를 칩니다. 이 때 다윗은 21절에 상반절에 “내가 지금 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한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서니까 자기의 체면과 자기의 모든 것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잊어버린 것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괜찮습니다. 사람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고 사람이 보기에는 염치없어 보여도 나는 사람의 명예와 체면을 보고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하여 하나님 앞에서 뛰놀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사람에게 대접받고 사람에게 인정받고 사람에게 박수를 받고 사람에게 영예를 얻기 원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뻐하며 찬양을 드렸던 것입니다.
[목]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삼하6:21-23)
본문은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남북을 통일한 왕이요 이스라엘에 가장 막강한 권세를 가진 군주가 지금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내가 왕이 된 것은 내가 능력이 있거나 똑똑하거나 군사력이 막강해서 된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됐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목동시절이나 사울에게 쫓겨 광야나 굴속에서 살던 시절이나 지금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 되었어도 한결같이 변함없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왕이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한국 속담에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잘되면 어려웠던 시절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내가 잘됐다고 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들도 잘돼서 “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됐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금]미갈이 죽는 날까지 자식이 없느니라(삼하6:16-23)
미갈이 죽는 날까지 자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 말씀을 기록해 놓으셨을까요? 미갈의 잘못은 다윗이 힘써 하나님을 섬길 때 함께 참여하지 않고 업신여겼고 구경만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경만 하는 사람을 싫어하십니다. 또 한가지 미갈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힘을 다하는 다윗을 업신여기고 있습니다. 사람이 구경만 하고 있고 남의 흠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결국 그 사람의 하는 일을 업신여기게 됩니다. 더 큰 문제는 하나님의 축복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든 백성들을 축복하고 백성들은 다 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미갈은 이 축복을 받을 준비를 하기는커녕 오히려 다윗에게 책망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토]볼찌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삼하7:1-3)
오랫동안 기랏여야림에 방치돼있던 하나님의 법궤를 드디어 예루살렘으로 모셔왔습니다. 이스라엘을 떠나셨던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회복됐습니다. 왜 이렇게 다윗이 잘되고 영원히 복을 받았는가. 여호와께서 다윗의 모든 대적을 다 물리쳐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왕궁을 짓고 법궤는 다윗성으로 옮기고 모든 대적을 다 파해주시고.... 그런데 바로 그때 다윗은 하나님께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나는 편안하게 백향목 궁에서 이렇게 잠을 자는데 하나님의 법궤는 천막에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니.... 그래서 성전을 지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려야겠다는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나단 선지자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밖에 없는 마음이지 않습니까? 주님을 생각하고 교회를 생각하는 마음이 너무 귀하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