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먼저 생각할 일(마16:21-28)찬206장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파수하는 것이 교회가 항상 싸워야 할 일입니다. 베드로는 왜 실패했습니까? 첫째, 인정에 이끌렸기 때문입니다(19). 십자가의 죽음을 인정적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그 길을 막는 사탄의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인정의 장벽을 넘는 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둘째, 십자가의 길을 거절했기 때문입니다(23).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하신 주님은 그 자신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본을 보이셨습니다. 십자가를 통과할 때 부활의 생명이 일어남이 우리가 구할 목표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24). 사람의 일을 먼저 생각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순간의 실수로 사탄의 일에 동조하는 자리에 떨어졌습니다.
(화) 음의 변화산(마17:1-13)찬473장
혼돈과 흑암이 짙은 시대에 주님의 중요한 가르침을 깊이 배울 수 있는 변화산으로 나아갈 때 귀한 진리의 삶을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세 제자의 감격을 배웁니다(4). 변화된 주님의 모습을 지켜본 세 제자들이 “여기 있는 것이 좋다는” 그 감격을 통해 우리는 믿음으로 바로 서게 하며 감당할 능력을 누리게 합니다. 비록 황홀경에 빠진 그릇된 고백이지만 그 마음에 생긴 감격은 우리에게도 필요한 체험입니다. 둘째, 주님 말씀을 중심한 삶을 배웁니다(5, 8). 그때 들려온 성부의 음성은 그 아들과 그의 말씀만을 들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동서고금을 통해 그리스도를 중심한 자만이 참된 길을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효능을 배웁니다(9). 진정한 변화는 그리스도를 중심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복음의 변화산으로 올라가야합니다.
(수)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마17:14-23)찬375장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을 소유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문제 해결의 열쇠입니다. 어떻게 우리는 이 문제의 산들을 옮길 수 있습니까? 첫째, 믿음이 없는 시대임을 깨달은 사람이어야 합니다(17). 적을 알 때 이길 수 있는 것처럼 신자의 활동무대는 불신앙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오직 예수와 그의 말씀에 연합된 자만이 이 세상을 이깁니다. 둘째, 겨자씨와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20). 거듭나 성령이 주신 믿음을 가진 신자는 누구든지 그 믿음으로 세상에 어떤 문제라도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셋째, 문제를 명하는 담력을 가져야 합니다(20). 당면한 문제 앞에 담대히 서는 일이 신자의 할입니다.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을 하게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하나님을 믿고 성실하게 나가는 사람입니다. 주님은 그를 통해 엄청난 일을 하십니다. 그 역사를 이룹시다.
(목) 문화의 변혁자(마17:24-27)찬444장
성전의 주인되신 그리스도가 성전세를 내는 제도를 지키심은 무엇을 보여줍니까? 첫째, 그 시대의 제도를 인정하셨습니다(24-26). 구약에 성전 중심한 삶을 위해 만든 제도를 인정하시면서 그릇된 점을 바로 잡아주심은 기이한 일입니다. 그는 현실의 그릇된 제도를 뿌리부터 살피심으로 자신 안에 완성된 사실을 은근히 주장하셨습니다. 그는 문화의 파괴자나 타협자가 아니고 변혁자이십니다. 둘째, 성전의 주인되심을 주장하셨습니다(26). 한 비유를 통해 자신이 성전 주인의 아들되심은 그의 뜻을 세우기 원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성전의 완성이기에 그리스도인들 역시 성전입니다(고전3:16). 셋째, 덕을 세우셨습니다(27). 제도를 무시하지 않으시고 동참하셨습니다. 세상문화를 용납하시면서 자신 안에서 그것이 변혁되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금) 소자가 용납되는 나라(마18:1-9)찬360장
이미 임한 하나님나라는 어떤 성격을 가집니까? 첫째, 자기를 낮추는 사람들로 구성된 나라입니다(3). 곧 겸손이 지배하는 곳입니다. 심령의 가난을 기본으로 하는 그 나라는 모든 일의 중심인 겸손으로 시작하고 마치는 나라입니다. 둘째, 소자를 용납하는 나라입니다(6). 소자가 무시당하는 것은 이미 하나님나라의 성격을 상실한 증거입니다. 어느 사회이든 소자가 무시될 때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짐승들의 사회가 될 것입니다. 셋째, 그리스도가 지배하는 나라입니다(5). 그때 어린아이를 본으로 삼으심은 그리스도께서 일하시는 방법을 보여주는 목적이었습니다. 소자를 영접함이 그리스도를 영접함이라 하심은 소자가 그리스도라는 뜻이 아니고 그리스도가 소자처럼 온유와 겸손으로 일하심을 보인 것입니다. 하나님나라 백성답게 삽시다.
(토) 한 사람의 소중성(마18:10-14)찬474장
소자에 대한 태도의 중요성을 가르치신 주님은 본문을 통해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첫째, 소자들을 주목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10). 물량주의를 좋아하는 세상 원리와 달리 그리스도는 소자에게 초점을 맞추셨습니다. 천사들이 그들을 보호하며 하나님이 깊이 관심을 가지는 대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의 관심이어야 합니다. 둘째, 회개한 소자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12-13). 습3:17에 보인대로 전능자가 그 안에 계셔서 큰 기쁨의 대상으로 삼고 잔잔한 사랑으로 때를 따라 돌보시는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셋째, 소자를 구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14). 하나님의 뜻 위에 세운 천국은 언제나 소자 하나라도 잃지 않으려는 열심이 지배하는 곳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업이고 하나님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전화령 목사(캄보디아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