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가정예배

[월] 사도의 계시(벧전1:1-2)찬206장 그리스도인의 구원의 기초가 되는 사도의 계시는 모든 일의 표준이어야 합니다. 이것은 바울 사도 역시 가진 분명한 확신이었습니다(엡2:20). 그 기준은 일상생활의 모든 것에 적용돼야 합니다. 첫째, 베드로는 자신의 사도직 권위를 주장합니다(1). 베드로서신은 교회에 보낸 그리스도의 계시입니다. 이 근거 위에 우리는 베드로의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주님이 베드로를 통해 성령의 능력으로 그의 뜻을 밝혀주십니다. 둘째, 계시를 받는 대상은 흩어진 나그네입니다. 오직 택함 받은 제한된 부류 곧 교회만이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고난에 있을지라도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십니다. 환난 속에 사는 교회는 사도의 계시위에서 삶의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오늘날 흩어진 세상에 유일한 소망과 지혜는 사도의 계시입니다. 그 자리에 바로 섭시다. [화] 신자의 구원 인사(벧전1:2)찬474장 신자의 구원은 일시적인 구출 정도가 아니라 영원한 것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깨달은 구원의 은사는 무엇입니까? 첫째, 영원한 하나님의 미리 아심으로 된 구원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 계획 속에 모든 일들이 우리의 구원에 초점을 두고 움직이는 것이기에 너무 놀라운 것입니다(롬8:38-39, 요1:1-3) 하나님으로 시작한 구원이기에 우리의 진정한 위로가 됩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받은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죽음으로 이루신 그리스도는 오직 택한 자만을 위한 것이었음이 여기 나타납니다. 그리스도의 길과 진리와 생명되심이 반드시 내 속에서도 증거되도록 돼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성령의 거룩하심으로 나타나는 구원입니다. 성부의 계획과 성자의 완성과 성령의 적용하심으로 우리는 거룩하게 돼있습니다. 그런 구원의 인사를 나눕시다. [수] 산 소망(벧전1:3-7)찬226장 신자는 왜 산 소망을 가집니까? 첫째, 거듭남에서 오는 소망이기 때문입니다(3-4). 예수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택한 자의 마음에 거듭나는 생명을 주신 것을 생각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영혼의 부활이라 할 수 있는 중생은 우리의 소망이 살아있게 합니다. 둘째, 영원한 기업을 소유했기 때문입니다(4-5). 산 소망의 마지막은 영원한 기업으로 나타납니다. 세상의 기업은 예측 못해 불안을 안겨주지만 하늘 기업은 참 안식과 부요를 누리게 합니다. 동시에 그 기업은 이 땅에서의 보호에 근거가 됩니다. 셋째, 금보다 더 귀한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5-7). 산 소망의 뿌리는 산 믿음에 둔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고난을 통한 믿음의 연단이 소망을 누리게 하는 그릇입니다. 하나님은 성도의 산 소망의 삶을 통해 새로운 능력을 주십니다. [목] 영혼의 구원(벧전1:8-12)찬543장 성도가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는 삶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첫째, 이는 구약 선지자들이 연구한 것입니다(10-11). 신약에 임할 구원을 미리 살피고 연구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성취되는 구원을 증거했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시간상으로 떨어져 있으나 성령의 역사로 그런 결과를 가져온 것을 보임으로 신약의 구원이 이렇게 뿌리 깊으신 사실을 증거합니다. 둘째, 이는 성령의 계시였습니다(12). 이 구원은 하나님이 직접 주신 계시로서 성령이 친히 그들을 감동시켜 해석하고 예언케 해 오늘까지 이른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오직 신적계시를 바로 받은 자만이 거듭나고 그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다. 셋째, 영혼의 완전한 구원을 예상한 것입니다(8-9). 이는 그리스도와의 완전한 연합으로 그의 형상을 즐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받으며, 누리며, 주장해야합니다. [금] 거룩한 행실(벧전1:13-16)찬539장 구원 받은 후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첫째, 근신의 삶입니다(13). 근신을 마음의 허리를 동이는 것으로 말한 베드로는 결국 거룩한 행실이란 자기를 부인하는 삶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자기 육과의 싸움이 치열하게 일어나는 것이 우리의 삶이어야 합니다. 둘째, 재림을 기다리는 삶입니다(14). 자기와 계속되는 치열한 싸움은 언제나 더 큰 힘을 필요로 합니다. 위로부터 오는 그 힘을 받는 길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바라보는 내세신앙이 있어야한다고 말합니다. 재림의 날을 준비하는 자만이 현재를 거룩하게 살 수 있습니다. 셋째, 거룩한 삶을 힘써야합니다(15-16). 그러기 위해 개인의 사욕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소원을 구해야합니다. 오직 거룩한 하나님의 표준으로 나가도록 적극적인 열정과 수고를 드려야합니다. 그 길로 갑시다. [토] 나그네의 두려움(벧전1:17-21)찬221장 번연이 그린 기독도의 여정처럼 살아가는 거룩한 나그네인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길을 가야합니까? 첫째, 두려움으로 지내야합니다(17). 공포의 두려움과 달리 그 아들에게 입맞추는 사랑을 기본으로 한 것입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것이 우리의 방법입니다. 둘째, 보배로운 피를 의지해야 합니다(18-19). 나그네 길에 반복되는 싸움은 사탄과 세상의 문명, 문화보다 우리 자신 속의 죄이며 죄를 짓게 하는 정욕입니다. 그래서 자주 넘어지고 괴로워할 때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적용하는 것입니다. 그 때마다 주님은 정결케 하여 우리의 갈 길에 은혜를 입게 하십니다(요일1:9), 셋째, 진실주의로 살아야합니다(17). 이 좁은 길이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이기에 진실본위가 아니면 따를 수 없습니다. 당장 손해나도 진실하게 사는 것이 복됩니다.

Leave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