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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교회 전통에서 본 교회와 국가의 관계(상)

정성구 박사

(전 총신대, 대신대 총장)

최근에 우리나라는 교회와 국가와의 관계설정과 기독교 정치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그런데 기독교계 안에서도 의견이 분분하고 이로 말미암아 서로 간에 갈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현재 한국의 대표적 교회 목회자들이나 각 교단의 지도급 목사들은 교회와 국가는 분리해야 하고, 교회는 중립을 지키고 오직 기도와 구령(救靈)에만 전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다른 분들은 교회는 국가가 잘못 가고 있을 때 적극적으로 항거하고 대안을 제시하여, 기독교가 정치에 앞장서야 한다고 한다. 이런 입장에 있는 분들은 대개가 작은 교회 성도들 또는 지방 교회성도들이 많다. 이른바 민초들의 외침이 있었다. 또 어떤 분들은 기독교인이 기독정당을 만들어 국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최근에 한국교회 지도자들도 이른바 광화문 정치에 대해서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특히 중대형교회 목사들은 중립을 표방하면서 기독교인이 예수 이름으로 거리에 나가서 시위를 하거나 집회를 하는 것은 교회가 정치에 간여하는 것이라 해서 매우 비판적 입장에 있다. 한편 반대쪽 사람들은 그들을 향해 종북주의자로 몰아세우고, 정권과 야합한다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이던 아니던 그의 삶과 행동이 정치와 무관한 것은 없다. 이에 대해 필자는 우선 개혁주의 전통에서 본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몇 가지 살펴보려고 한다. 

우선 제2의 칼빈(John Calvin, 1509-1564)이라고 불려지는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1837-1920)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교회와 국가에 대한 문제는 시대마다 기독교 역사에 항상 중요한 주제였으며, 이는 다른 말로 하면 ‘기독교 정치’와 연결된다고 본다. 교회가 정치에 관여한 아주 나쁜 선례는 로마카톨릭이 교황권을 확대하여 세속정치를 억누르는 세력이 되어왔다. 

교회가 정치에 관여해서 되느냐 또는 교회는 오직 국가를 위해서 기도하는 사명만으로 만족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편 국가의 지도자들이 이데올로기가 좌 편향되거나, 국가의 정체성이 훼손되거나 국가의 헌법에 위배되어 갈 때, 강하게 항거하고 나라의 정체성을 지켜내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런 논의는 개혁주의적 입장에서 교회와 국가와의 관계를 말할 때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는 주제라고 본다. 

칼빈(John Calvin, 1508-1564)의 신학사상은 신본주의(神本主義)에 근거하였고, 그의 정치이해도 하나님중심이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교회개혁자 요한 칼빈은 제네바의 셍삐에레교회 목사이면서 제네바시를 민주공화제로 개혁해 나갔다. 그래서 그는 제네바를 사도시대 이후 가장 이상적인 거룩한 도시로 만들었다. 그러니 칼빈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칼빈 이후에 칼빈주의 정치이론을 발전시킨 것은 19세기에 와서 다시 아브라함 카이퍼가 부흥시켰다. 

그것은 곧 흐룬 반 프린스터(Groen Van Prinstere)와 아브라함 카이퍼 등에 의한 칼빈주의적 정치 이론의 정립과 그 실현이었다. 흐룬은 역사학자이자 기독교정당의 당수로, 화란의 수상으로 카이퍼의 생애에 절대적 영향을 끼쳤다. 흐룬은 1869년 5월 16일 열정적 대 설교가요 철저한 개혁주의자인 아브라함 카이퍼를 자기의 사상적 후계자로 지명했다. 

그는 화란의 국가와 교회의 운명을 칼빈주의적인 사상 위에 굳게 세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예술 전반에 걸쳐서 일할 걸출한 인물로 카이퍼를 지명했다. 이는 마치 제네바에서 칼빈과 파렐(Farel)의 만남과 흡사했다. 여기서 생각해볼 것은, 왜 19세기에 카이퍼 같은 인물이 나타나서 기독교 정치의 활성화를 부르짖었는지 그 배경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16세기와 17세기에 찬란하게 꽃 피었던 화란의 개혁주의 사상은 18세기와 19세기에 와서 유럽 전체가 그러했듯이 화란도 계몽주의, 합리주의, 공산주의, 무신론사상이 국가에 누룩처럼 퍼져서 교회는 병들고, 국가는 이른바 국가의 절대 권력을 남용해서 인본주의, 세속주의로 교회를 장악했다. 

그즈음 유럽은 모두 국가교회(State Church)가 되어버렸다. 그때 카이퍼라는 걸출한 영웅이 나타났다. 그는 대신학자, 대정치가, 대목회자, 칼빈주의자, 언론인, 교육가, 설교자로 나타나 화란교회를 16세기 종교개혁사상으로 다시 한 번 더 개혁할 것을 주장하고, 이른바 재개혁파 교회(Gereformeerde Kerk)를 세웠다. 그래서 그는 시편 119:105대로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란 말씀을 토대로 교회와 국가를 향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고’ 그리고 ‘16세기 요한 칼빈의 신학과 신앙으로 복귀할 것’을 외쳤다. 

카이퍼는 칼빈과 같이 교회의 개혁과 정치의 개혁을 동시에 주장했다. 카이퍼는 인간의 전적 타락의 교리에서 국가와 정치와 사회를 바라보았다. 카이퍼는 주장하기를 인간은 죄로 전적 타락했기 때문에 인간의 정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간이 완전하고 무결하다면 정치는 필요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고 그의 법을 따르도록 하는 것만이 사는 길이라 했다.

skc0727@yahoo.com

05.09.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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