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성 박사 (생리학, 창조과학선교회)
역사는 시공간 속에서 행해지는 인간과 모든 피조물들의 움직임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루하루가 모여서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역사를 계속해서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역사가 끝나는 곳에 이르게 됩니다. 바로 역사의 시작점입니다. 성경은 이 시점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시간, 공간, 지구를 동시에 존재하게 하심으로 우주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시간기준이 태양에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태양이 없으면 시간을 정의할 수 없을까요? 태양이 존재하지 않았던 창조 3일간은 시간이 달랐을까요? 최초의 시간단위는 어떻게 결정이 되었을까요?
지구가 시간의 기준
지구가 한 바퀴 자전하는데 걸리는 절대시간은 정확히 24시간이 아니라 23시간56분4초라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태양을 중심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절대적인 시간을 사용하기보다는 상대적인 시간을 사용하고 있다. 태양을 기준으로 한 하루의 길이는 계절에 따라 다른데 그 이유는 지구의 공전과 지축이 23.5도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시계들은 평균 태양일이 24시간이 되도록 국제적인 협약에 의거하여 조정되고 있는데 실제로는 평균 24시간0.002초라고 한다.
성경은 시간도 하나님의 창조물임을 밝히고 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구절은 3가지의 창조물을 언급하고 있는데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시간과 공간과 지구다. 시간은 창조가 시작된 시점인 ‘태초’부터 지구와 함께 시작된 것이다. 시간의 기준이 지구라는 것은 계속되는 창조과정의 설명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 있다. 창세기 1장의 창조의 중심이 지구인 것을 보아도 지구가 시간의 기준이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나님은 지구와 공간과 시간을 창조하시고 나서 (곧바로) 빛을 창조하시어 그 지구에 시간을 느낄 수 있는 낮과 밤이 이루어지게 하셨다. 그리고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라고 하루를 정의하였다. 이 표현을 볼 때 그리고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생각할 때, 첫째 날의 빛은 지금의 태양처럼 한 곳에서 지구를 비추고 있었고, 지구가 지금처럼 자전하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또, 창세기 1장은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 계속해서 똑같은 표현으로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OO째 날이니라”라고 표현함으로써 그 6일간의 각각의 하루는 오늘날의 하루와 같음을 말해주고 있다. 하나님은 창조 4일째에 태양을 창조하셔서 첫째 날의 빛을 대신하게 하심으로 사람들이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있게 하셨다.
욤의 문제
그런데 창세기 1장 14절에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욤)과 해를 이루게 하라”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 표현에 근거해서 오늘날 하루와 같은 길이의 ‘욤’은 하늘에 광명체들이 창조된 창조 4일째부터이고 이전 3일간의 ‘욤’ 길이는 알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게 하는 유혹은 세상 과학자들이 수십억 년의 긴 기간을 주장하기 때문에 그 기간을 허락하기 위해 나온 것이다.
그러나 창조가 단 한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은 것처럼 한 ‘날’의 길이는 첫째 날 규정되었지만 제 4일째가 되어서 날-계절-해의 시간체계 전체가 완성되었다고 생각해도 전혀 문제가 없고 그렇게 보는 것이 성경 전체 속에서 생각할 때 가장 자연스럽고 논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세상 과학자들의 말에 따라 최초의 3일간을 미지의 신화 속으로 밀어 넣을 필요가 없다. 세상 과학자들의 긴 기간은 사실일 수 없고 사실이 아니라는 증거들도 많기 때문이다.
창세기 1장의 하루를 오늘날과 같은 하루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그럴듯한 이유들 중에 하나로 성경에 나오는 ‘욤’의 의미와 사용법을 들고 있다. ‘욤’이란 히브리어는 한국말의 ‘날’, 영어의 ‘day’에 해당하는 말이므로 하루가 아니라 불특정한 기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이유다. 그러나 구약성경에 2301번 나오는 ‘욤’ 중에서 경우에 따라서는 하루 이상의 기간인 경우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의 ‘욤’은 오늘날 하루다. 더 중요한 단서는 성경의 문법적인 ‘욤’의 사용법이다.
성경의 문법으로 볼 때 창세기 1장의 ‘욤’은 모두 다 오늘날의 하루다. 성경에서 숫자와 함께 사용된 ‘욤’을 찾아보면 창세기 1장의 ‘욤’을 제외하고 410번이 나오는데 100% 오늘날 하루다.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6일(욤)간 돌았다거나 요나가 물고기 배 속에서 3일(욤)간 있었다는 기록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숫자와 함께 사용된 ‘욤’의 사용법이다. 그러므로 창세기 1장에 숫자와 함께 표현된 ‘욤’도 오늘날의 하루였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설명이 될 것이다. 더욱이 십계명의 제 4계명의 설명으로 ‘6일 동안’과 ‘제 7일째’란 설명은 창세기 1장의 날에 대해 더 이상의 변명을 그치게 한다.
수십억 년을 받아들인 이유와 결과
신학자들 뿐 아니라 모든 학자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제시해야 하는 운명을 스스로 짊어진 사람들이다.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없게 되면 고민하며 돌파구를 찾으려는 집요한 노력을 하게 된다. 이때 다른 분야의 학자들이 발견한 원리를 새로 도입하게 되면 자기 학문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되기도 한다. 다른 한 편으로는 다른 분야나 대다수가 사실로 받아들이는 주장이나 바람을 거부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17세기부터 학자들이 추정하는 지구의 나이가 점점 길어지기 시작하였다. 진화론이 등장하기 직전인 1830-33년에 찰스 라이엘이 지은 ‘지질학의 원리’라는 책이 학계를 휩쓸면서 지구의 나이는 수억 년이 되었고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나오자 지구의 나이는 수십억 년으로 늘어났다. 이 패러다임은 1900년에 유럽을 완전히 휩쓸었고 미국에도 점점 상륙하여 드디어 1960년에 공립학교를 정복하고 말았다. 이런 압력이 신학에도 들어와 수백만 년의 기간은 이미 대부분의 신학교를 점령하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신학자들은 성경이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수천 년을 버리고 수백만 년을 성경에 집어넣으려고 노력하였다. 결국 여러 가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창조이론들이 생겨났고 이 와중에 ‘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등장했던 것이다. 성경이 비판의 도마에 올랐고 자유주의 신학이 등장하였다. 이 현실에 발맞추어 신학자들 뿐 아니라 신자들의 성경에 대한 믿음도 급격하게 무너져 내렸고 두 세대가 지나자 수많은 예배당의 문들이 닫히기 시작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을 주셨다. 그 중에 4계명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셨고 안식하신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었다. 히브리서 11장이 요구하고 있는 믿음이 창조와 창조자인 것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만약 그 안식일을 범하면 죽이라고까지 하셨고 실제로 죽임을 당한 사람의 예(민15:32-36)가 성경에 기록되어있다.
사실도 아닌 6일간을 정해놓고 위반하면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면 하나님답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만 알고 있는 기간을 우리에게 하루라고 말씀하셨다면, 성경에 기록된 다른 말들은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창조가 6일간 진행된 것도 아닌데 십계명 주실 때 6일 만에 창조하셨다고 주장하면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다. 예배당 문을 닫게 하는데 큰 공헌을 하는 것이다. 지구와 지구를 꾸미고 있는 우주는 오래되지 않았다. 수십억 년이 아니라 수천 년이다(DeYoung, Master Books, 2005). 아무도 창조자의 거룩한 첫 날을 신화 속으로 밀어 넣지 않기를 바란다. ▲이메일:mailforwscho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