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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이기는 힘

강준수 목사 (라스베가스 안디옥교회)

미국에 와서 자동차를 운전하며 한두 번은 자동차 운전등록금 고지서 받아보았을 것이다. 저도 LA에서 어느 주일날 예배를 드리고 권사님이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받고 급히 프리웨이를 달려가는데 그만 경찰에게 붙잡혔다. 운전면허증을 내주면서 “내가 목사인데 권사님이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고 가는 중이라서 속도를 못 느끼고 달렸노라”고 고백했다. 그랬더니 이 경찰이 차 안을 들여다보더니 커다란 성경책도 있고 또 옆에 사모님 같은 둥글둥글한 아줌마도 앉아있는걸 보았는지 “급해도 목사님, 운전은 안전하게 운전하시라!”고 하면서 고지서를 발부하지 않고 운전면허증을 그냥 돌려주는 것이다.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며칠 지난 뒤에 가족 친지들이 함께 식사를 하면서 미국은 기독교 국가라서인지 교통경찰도 목사를 예우해 주더라며 그 경험담을 얘기했다. 그랬더니 그때 신학교에 다니던 제 사촌동생이 그 얘기를 잘 들었는지 과속운전을 하다 그만 경찰에게 붙잡혔는데 제 얘기가 생각나서 운전면허증을 내주면서 이렇게 말했단다. “Officer, 우리 아버지도 목사고 사촌 형도 목사고 저도 지금 신학교 다니고 있는데요” 그랬더니 경찰이 무슨 말인지 도무지 못 알아듣더란다.

운전법규를 어겨 지금 딱지 떼이는 것과 사촌 형이 목사라는 사실 아니 지금 신학교 다닌다는 사실이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믿음과 신앙생활의 배경이나 경력은 아무 상관없다. 신앙생활의 경력이 대단해도 믿음 없는 사람이 있고 아무 경력도 없는 초신자인데도 믿음이 좋은 사람이 많이 있다. 사도바울은 이 사실을 깨닫고 내가 남에게는 복음을 전해서 그들은 구원을 얻게 하고서 오히려 나는 버림이 될까 두렵다고 고백했다. 내가 교회 나와 신앙생활을 하면서 미루어놓은 나의 경력과 업적은 내 믿음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특별히 어제의 경력과 오늘의 내 믿음을 동일시하지 말아야 한다. 신앙이 추억이 되서는 안 된다.

믿음과 주어지는 그 능력은 지속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말하자면 은사와 능력은 한 번 받으면 영원히 내안에 고정되어있는 것이 아니고 잃어버릴 수도 있고 빼앗길 수도 있고 녹슬어 못 쓰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성경에 보면 둘씩 둘씩 파송 받아 전도할 때 일어났던 귀신추방의 역사를 생각하면서 오늘도 귀신이 그렇게 도망하는 능력이 나타날 것이라 생각했던 제자들의 모습이 있다. 어제는 어제 주신 능력이 나타난 것이고, 오늘은 오늘 주시는 능력과 은사가 나타나는 법인데 제자들은 어제 능력이 나타났으니 오늘도 나타날 줄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께 아이의 아버지가 안타까워하는 마음으로 ‘선생님의 제자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라고 결국 지난날에 그 능력을 다 잃어버린 제자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 한번 받았으니 내 안에 있으려니 하고 무관심하면 그 은사, 그 능력은 흔적만 남고, 추억만 남고, 형식만 남고, 의식만 남는 것이다. 경건의 형식과 껍데기만 남고 경건의 능력이 없는 것이다. 에너지가 다 소모된 배터리처럼 겉모양은 멀쩡한데 껍데기만 있는 신자가 되는 것이다. 정작 필요한 지금에 와서는 맛을 잃어버린 소금처럼 사람들에게까지 창피함을 당하고 버림을 받게 되는 것이다. 발전소에서 전기를 지속적으로 받아야 가정에서 그 불을 밝히고 쓰는 것처럼 우리에게 주신 믿음의 능력과 믿음의 은사는 지속적으로 받아야 사용하는 것이다. 어제 받았던 능력 은사는 어제의 추억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능력주시는 하나님과의 통로가 막히지 않도록 끊임없이 은혜를 사모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뜻을 다해 힘써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믿음의 능력을 잃어버리는 이유도 결국은 나 자신 때문이다. 경건의 생활은 언제나 현재가 중요하다. 제자들이지만 귀신들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를 않았다. 그래서 아이를 고치지도 못하고 도리어 망신만 당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님께 물었다. 그리고 질문에 예수님은 한 마디로 답하신다. 마가복음 9:29절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능력 있는 믿음생활! 기도 외에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말씀이다. 어제의 기도가 아니고 오늘 내 기도생활만이 유일한 그 능력을 공급받을 수 있다는 말씀이다.

아이들이 하늘에 연을 날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중에 눈먼 아이가 함께 연을 날리고 있었다. 이것을 지켜보던 사람이 호기심이 생겨서 그에게 가서 너는 연을 보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연을 날리느냐?”고 물었다. 그 아이는 손에 연줄을 잡고 잡아당기면서 ‘네! 이 줄을 잡아 당겨보면 연이 잘 나는지 아닌지 알 수 있다’고 대답을 하더란다. 비록 우리가 하나님을 육안으로 뵙지는 못하지만 기도의 줄을 한 번 당겨보라! 끊어진 지 오랜 것도 모르고 착각 속에서 살고 있지나 않은지 점거해야 한다. 기도의 줄을 당겨서 열심히 기도하고 새벽기도회에도 나와 보고 금식기도도 해보고 자신만의 간절한 마음으로 부르짖어 기도해보면 하나님이 그 기도의 줄을 당겨주시는지 아닌지 스스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신앙생활의 실수는 기도 없이 생각하고 기도 없이 말하고 기도 없이 행동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직선적인 관계는 기도로 끊임없이 이어져야 한다. 먼저 기도가 있었는지 생각해보라 그리고 기도의 줄을 당겨보라. 세상을 이기는 힘은 기도생활에 있다. 우리의 삶과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 주님의 귀한 일군들로 살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 revpetergang@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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