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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입니다

예전에 필자가 학교에서 귀가 닳도록 들은 이야기가 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흔히 좌절한 사람을 위로하기위해 하는 말이지만 그러나 이 말은 곧 성경적인 교훈이기도 하다. 실수와 실패를 했을 때 이를 회개하고 돌이키면 이후에 하나님의 큰 축복을 경험하게 되는 경우를 성경은 많이 이야기하고 있다. 교육학에서는 이를 ‘학습가능성’(Learnability)라고 부른다. 예를 들면 다윗왕이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길 때 그는 첫 번째 시도에서 실패를 하고 말았다. 그러나 실패를 통해 그가 잘못했던 것을 깨닫고 2차 시도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으로 법궤를 성공적으로 옮길 수 있었다(삼하6장). 

다니엘 4장에는 또 한 사람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바로 느브갓네살 왕이다. 그는 44년간 왕위에 있었는데(606-562 BC) 그 대부분을 전쟁으로 보냈다. 605 BC(앗수르의 정복을 시작으로 유다(586 BC), 두로(573 BC), 그리고 애굽 (568 BC)을 차례로 무너뜨렸다. 그리고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는 바벨론 건설사업에 몰두하였다. 유다를 침공하고 예루살렘과 성전을 완전 함락시켰을 뿐 아니라, 성전의 기물을 약탈해갔고 유다 사람들 약 1만명을 포로로 잡아갔다. 참 잔인한 사람이었다. 꿈을 꾸어 다니엘이 해석해준 이후에도 금신상을 만들어 절하지 않은 다니엘 세 친구들을 풀무 불에 던져 넣은 자가 바로 그였다. 그 후 또 꿈을 꾸고 다니엘이 경고했지만 그의 교만은 변하지 않았다. 마침내 그가 꾼 꿈대로 그는 7년간 들짐승과 함께 지낸 후 제정신으로 돌아와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 바로 7년간의 실패와 좌절의 경험이 끝나자 비로소 그는 변화되었다. 다니엘 4장이 바로 그의 고백이다. 

마지막에 돌아와 회개하며 찬양하는 그의 모습은 일생을 허비한 후 죽음 직전에 하나님 품에 안긴 어느 방랑자의 모습과 비슷하다. 실패를 통하여 축복을 받을 수 있다면 실패는 분명 의미 있는 경험이다. 결국 다니엘 4장은 왕이 하나님의 교훈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의 교만과 이를 통해 배우지 못한 것을 더 강하게 가르치고자 하는 하나님의 의지의 표현이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는가? 하나님은 원하는 것을 관철시키는 분이라는 사실이다. 결국 역사를 이끄시는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그러기에 역사는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야기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늘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으로부터 배워야 하는 자세를 가져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잘못과 실수를 통해 배워야 한다. 바로 다윗이 그랬다. 그는 밧세바와 간음 후에 잘못을 질책하는 나단 선지자의 이야기를 통해 바로 자신의 죄를 회개했다. 실수를 통해, 실패를 통해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면 실수와 잘못은 그만큼 값있는 수업료가 된다. 

 

학습가능성: 실패했을 때 회개하면 하나님의 큰 축복 경험 

하나님이 용기 근원, 역사속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믿어야 

 

왜 우리가 실수를 통해 배우지 못하는가? 바로 교만 때문이다. 다니엘 4:30에 느브갓네살 왕의 하늘을 찌르는 교만의 자세를 보라. 이러한 태도는 자신이 모든 성취를 이루었다는 자만이며 하나님을 무시하는 교만이다. 교만은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하고 깨닫지 못하게 한다. 그러기에 성경은 교만을 패망의 선봉이라고 경고하고 있다(잠16:18). 

교만한 사람이 따로 있지는 않다. 우리 모두 그러한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다. 사울을 보자. 그는 왕이 되기 전 지극히 겸손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왕이 된 이후 교만하게 변했고 그 결과 그는 하나님을 뜻을 떠나 자기 임의로 행하며 자기를 높이고 자기 자기를 지키는 데만 혈안이 되었다. 결국 사무엘 선지자의 교훈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을 거스르는 악한 일만을 도모하며 살았고 그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고야 말았다. 

다시 한번 다니엘로 돌아가 본다. 그는 참으로 겸손한 사람이었다. 겸손이란 모든 성취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깨닫는 것을 말한다. 모든 것의 중심에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 내가 최선을 다하고 최고의 노력을 하지만 모든 것이 중심의 하나님임을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느브갓네살 왕이 4장에서 꿈을 꾸었을 때 아마도 그 꿈은 2장에 비해 비교적 해석하기가 쉬웠을 텐데 왜 바벨론 지혜자들은 그 꿈을 해석하지 못했을까? 아마도 알면서도 감히 왕에게 사실을 말하지 못하는 비겁함 때문 아니었을까? 왕의 몰락을 전해야 하는 다니엘의 입장이 어찌 쉬웠을까? 그래서 다니엘이 한동안 놀라며 마음으로 번민한(단4:19) 이유를 알게 된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그가 꿈을 해석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꿈의 내용 때문이었다. 자신이 섬기는 왕이 몰락하니 자신 역시 패망할 것을 예견하여 번민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용기의 사람이었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계시를 그대로 가감 없이 정직하게 왕에게 이야기한다. 

결국 교만한 자는 하나님이 심판하시나 겸손한 자는 용기를 가지고 하나님을 대언한다. 크리스천들은 용기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용기를 가르쳐야 한다. 성경의 영웅들은 목숨을 담보하고 용기를 실천한 사람들이었다.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들과 용기 있게 맞섰고, 왕비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고 외치며 왕 앞에 나아갔다. 사도 바울은 죽을 것을 알면서 예루살렘에 들어갔고 스데반 집사는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드리면서 자기를 죽인 사람들을 용서하였다.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우리가 사는 인생의 두려움 속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이 용기의 근원이시라는 것 그리고 세상 나라들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믿어야 한다. 다니엘서 전체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의 기록이다. 

hlee0414@gmail.com

07.0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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