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St. John’s UMC)
아들과 태권도수업을 마치고 오는 남편 손에 쇼핑백이 들려있다. 태권도장이 쇼핑몰에 있어서 가끔 갑자기 필요한 아이들 간식이나 간단한 장을 몰에 있는 식품점에서 볼 때도 있지만, 특별히 부탁한 게 없어서 남편이 필요한 물건을 사왔나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남편이“아니, 사범님이 대추를 주셔서 가져왔네." 하며 봉투에서 큰 지퍼백에 듬뿍 담은 알이 굵은 대추를 꺼내 식탁위에 올려놓는다. 과실이 크고 빨갛게 잘 익어서 보기만 해도 정말 탐스러운 대추였다. 사범님 부모님댁에 대추나무가 있는데 올해 과실이 좋아 함께 나눈다고 하시며 주셨다고 한다. ”감사해라! 너무 귀한 걸 주셨네요.”하고 바로 씻어서 가족들과 한 입 베어 무는데 어린 시절 대추나무에서 갓 따서 먹던 달큰하고 쌉싸름한 맛이 난다. 한인 1.5세 사범님이 운영하시는 태권도장에 한인 학생도 많지 않고 수업이 끝나면 늘 분주하셔서 때로는 인사도 못 드리고 아이만 픽업해서 올 때도 있는데 감사하게 우리 가정을 생각하시고 대추를 나누어 주신 마음이 참 따뜻하다.
부쩍 쌀쌀해진 날씨에 직장에 나가는 부모님과 일찍 데이케어에 오는 학생들은 이른 아침 공기가 더욱 차게 느껴지는 11월이다. 특별히 알러지가 있는 Dean은 코로나가 끝나도 항상 마스크를 하고 생활하는 4살 친구이다. 2살 여동생과 다른 친구들보다 30분정도 일찍 등원하여 하루를 먼저 시작하는 부지런하고 똑똑한 사랑스런 아이이다. 씩씩하게 엄마와 인사를 한 후 동생 손을 잡고 들어오며 나에게“ This is for you. Ms. Hannah" 하며 단감을 건넨다. 아이 작은 손을 꽉 채우고도 남을 정도로 커다랗고 예쁜 단감이다. "Oh, Thank you so much Dean"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니, 어머님께서 Dean 할아버지 댁에 감나무가 있는데 많이 주셔서 프리스쿨선생님들께 나누고 싶어서 갖고 오셨고, 아이가 해나 선생님께는 직접 준다고 하여 손에 들고 왔다고 한다. 어머님께도 한번 더 감사하다고 인사를 나눈다. 또렷한 초록별 모양의 꼭지까지 달린 주황색의 많은 사랑이 가득 담긴 감이 먹기에 아까울 정도로 귀하다. 단감이 들어있는 쇼핑백을 들고 집에 오니 하교 후 집에 먼저 온 아이들이 뭐냐고 물어본다. 학부형이 주신 단감이라고 얘기하며 꺼내놓으니, 딸아이가 “어제는 대추, 오늘은 단감이네”하며 웃는다. 그러니까 “너무너무 감사하지.”하며 냉장고를 열고 대추 옆에 단감을 넣었다.
오랜 시간 이곳 노던 버지니아에서 교육사업에 힘쓰신 원장님 부부는 함께 겪어보니 교육자로서 뿐 만 아니라 인생의 선배로 또 성숙한 신앙인으로도 사모인 내가 배울 점이 많아 새로운 직장의 어려움보다 감사한 마음이 크다. 특별히 나의 상황을 이해해 주셔서 금요일에는 미국프리스쿨에서 한국어 수업을 계속 할 수 있게 배려 해 주셨다. 원장님 부부의 모든 전문지식과 열정 그리고 사랑을 아낌없이 아이들에게 넘칠 정도로 쏟아 붓고 있는 모습을 직접 경험하니, 이곳 필그림 크리스천데이케어가 왜 좋은 소문이 많이 났었는지 알게 되었다. VA KADPA(버지니아 한미장애인협회)회장으로 섬기는 원장님이 2024년 6월 메릴랜드에서 열리는 제2회 전미주장애인체전 기금모금을 위해 버지니아 노폭 농장에서 직송한 땅콩을 판매한다는 공지를 올려주셨다. 그동안 많은 가을열매와 사랑을 받기만 했던 나는 드디어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기쁜 마음으로 구매했고 <도전속에 싹트는 희망>슬로건이 쓰인 햇땅콩이 가득 담긴 선물하기에도 예쁜 땅콩백을 받았다. 비록 우리 집에 과실나무는 없지만 나도 이 백을 통해 이제 사랑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땅콩 백 다섯 개를 담은 무거운 쇼핑백을 양손에 들고 와 한 개를 꺼내 식탁에 올려놓으니, 뭐 맛있는 간식인가? 하는 기대로 부엌에 온 아들이“대추와 단감, 또 땅콩!”하며 웃고 지나간다.
첫 추수한 감사의 열매를 하나님께 먼저 드리고 풍성한 식탁의 기쁨을 이웃과 나눈 필그림의 은혜가 2023년 추수감사절 우리 모두에게 함께하길 소망한다.
Happy Thanksgiving!
songjoungim@gmail.com
11.11.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