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빌라델비아장로교회 | 김혜천 목사
해마다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새해결심을 한다. “이번에는 작년과 다르게 살거야. 이번에는 정말이다.” 새해마다 대단한 결의를 가지고 시작한다. 결단으로 시작하지만 1월말이 되면 이미 옛날의 습관으로 되돌아가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풀이 죽는다. 각계각층에서 새해결심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새해결심들이 잘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타임지는 새해에 가장 지켜지지 않고 잊어먹는 새해결심 10가지를 보도했다. 잘 안지켜지는 10대 새해결심은 체중감량, 금연, 새로운 것 배우기, 건강식과 다이어트, 빚지지 않고 저축하기, 식구들과 함께 시간보내기, 새로운 장소들로 여행, 스트레스 안받기, 자원봉사, 술 덜마시기 등이었다.
정치인들도 경제인들도 사회적 리더들도 새해결심을 한다. 새해결심이 무엇인가를 묻는 기자들 앞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좀 더 잘해주기’라고 했다. 국민에게 좀 더 잘해주는 대통령이 되면 좋겠다. 기독교 리더십의 전문가인 Justin Lathrop 목사는 목회자들이 해야 할 결심 8가지를 추천했다. 1)리더십에서 영향력을 주안점으로 삼으라 2)비판에 굴하지 말라 3)투명성을 가지라 4)행동으로 말을 증명하라 5)성과보다는 사람을 더 중요시하라 6)비전을 등한시하지 말라 7)자기 자신을 잘 돌보라 8)균형을 찾으라 했다.
새해결심을 하는 기원에 대하여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고대의 바벨론 사람들은 새해에 빌려왔던 물건들을 되돌려주며, 빚을 갚고, 신들에게 약속을 했다고 한다. 로마사람들은 Janus 신에게 약속을 하고 1월의 이름을 January 라고 불렀다. 어떤 사람은 중세의 기사도에서 찾는다. 중세의 기사들은 해마다 크리스마스 시즌의 마지막에 구운 공작 위에 손을 얹어서 다음 한해동안 기사도를 따를 것을 충성 맹세했다. 유대인들은 새해의 나팔절, 그리고 이어오는 대속죄일 욤키퍼에 지난해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한다. 많은 성도들은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면서 기도하고 새해의 결심을 한다.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새해결심을 하는가? 북미주에 사는 성인들의 절반 이상이 새해결심을 한다. 그중에 60%는 6개월 만에 그만두고, 81%는 24개월 이후 그만둔다. 하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그래도 생활의 변화를 이룬다는 말이다. 새해결심의 종류도 다양하다. 자기발전이나 교육과 대한 결심은 47%, 체중감량은 38%, 돈에 관계된 결심 34%, 관계에 대한 결심 31%이다. 재미있는 것은 새해결심을 하는 비율은 20대는 39%, 50대 이상은 14%라고 한다. 나이가 들면서 새해결심을 하는 숫자가 줄어든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나이가 들수록 새해결심이 지켜지지 못했던 실패를 많이 경험하고, 따라서 금년의 결심 또한 실패할 것이라는 패배의식으로 기대치가 낮아서일 것이다.
새해결심은 얼마나 오래갈까? 바로 포기한 사람도 있겠지만 그래도 첫번째 주까지 유지한 사람은 75%, 2주까지는 71%, 한달까지는 64%, 6개월이 지나면 46%가 그래도 새해결심을 유지한다. 따라서 새해결심을 비록 끝까지 이루지 못해도 새해결심을 하는 것이 안하는 것 보다 더 유익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떤 사람들은 새해결심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해마다 반복되는 연례행사이고 다람쥐 쳇바퀴 결단이라는 생각에 부담감을 갖는다. 어차피 끝까지 가지 못할 것인데 왜 새해결심을 하느냐 반문한다. 그렇다면 이런 새해결심으로 일어나는 진퇴양난의 문제에 대한 해답이 있는가? 잘 지켜지지 않는 새해결단에 대한 분명한 대답이 있다. 그 해답은 믿어지지 않을지 모르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있다. 새해결단을 하려면 먼저 우리는 ‘자아self’에 대한 생각의 재조명이 필요하다. 자아의 문제는 무엇인가? 내가 나 자신을 통제하려고 하면 할수록 자아는 반대방향으로 도망한다. 예수 없이 자아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예수 없이 죄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과연 나는 진정한 자제심을 가지고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가? 아니면 우리는 평생 자아에 끌려다니는 운명에 억매여 있는가? 성경은 나 자신을 통제하는 획기적인 길을 보여주신다. 예수를 믿게 되면 모든 것들이 분명해진다. 예수그리스도께서 나의 삶의 현장에 도착하시면 먼저 나의 자아가 얼마나 절제하지 못하는지를 깨닫게 하신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나’ 자신과 ‘주 안에 있는 나’와의 차이를 이해하게 된다. 우리는 변화된 정체성을 갖는다. 우리가 생각하는 옛사람인 나는 진정한 내가 아니다. ‘주 안에 있는 나’가 진정한 나이다. ‘예수 안에 있는 나’는 바로 승리의 열쇠가 된다. 나 자신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사람의 죄를 이기시고 궁극적인 승리를 하신 그 분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옛 자아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 여기에 우리가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는 비밀이 있다.
예수를 믿으면 어느 형편에서든지 자족하기를 깨닫고 배우게 된다(빌4:12).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어떻게 부족함이 있음에도 만족할 수 있을까? 그리스도인에게는 옛생활은 나 자신이 왕좌에 앉아 있는 생활이었다. 내 자아가 원하면 그것을 갖는다. 그 생활은 어렸을 때부터 시작해서 어른이 되도록 계속된다. 갈수록 욕심이 더 커진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실패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님을 중심의 왕좌에 모시는 것이다. 예수님을 왕좌에 모시는 생활을 하는 것이 바로 자신을 잊어버릴 수 있는 길이다. 예수를 믿으면 바로 죄용서를 주시고 부활하신 승리하신 예수님이 나에게 이길 힘을 주신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이 우리 마음에 평화가 넘쳐흐르는 길이 된다.
반면에 우리가 나의 자아를 다시 왕좌에 앉히려고 시도하면 우리는 문제를 직면하게 된다. 새해결심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견디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더 깊은 곳에 있다. 그것은 근본적이고 전적인 변화이다. 오직 이일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생명을 소유함에 있다. 빛되신 주님이 오시면 어두움이 물러가게 된다. 그리스도인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 초자연의 역사이다. 창조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해주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죽으셨을 뿐 아니라 우리를 날마다 인도해주시려고 오셨다. 옛 자아가 나를 주관하려고 하면 모든 것들이 엉망진창이 된다. 우리의 태도가 망가지고, 관계가 깨어지고, 정신집중이 파괴된다. 우리의 옛 자아는 믿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 안의 나는 그리스도와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시고 나는 예수 안에 있을 때에 우리는 영광의 소망을 갖는다(골1:27).
보통의 새해의 결심은 나 자신에게 ‘나는 할 수 있다’ 설득함에 달려 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음(빌4:13)’이다. 내게 능력주시는 분은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거기에서 우리는 능력을 받고, 평화를 누리며, 풍성한 생활을 누리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 없는 새해결심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잘못된 자아를 의존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아닌 나 자신을 의지할 때에 우리는 결단코 승리할 수 없다. 진화론적인 기대를 갖고 더 많은 나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세월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라고 헛된 소망을 준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옛자아가 속도를 늦추지 않는 악독한 노예감독임을 깨닫게 된다.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인도하신다. 능력을 주신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옛자아에 대하여 작별인사를 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풍성한 삶 새생활을 영접해야한다.
새해결심은 나 자신을 의지하는 결단과는 다른 것이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주님께 더 가깝게 나가길 원한다. 예수님의 모든 것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수님의 말씀은 물론이고, 눈짓 하나, 손짓 하나, 얼굴 표정하나, 음성의 톤의 변화도 놓치지 않고 싶다. 어린 아이가 엄마 아빠를 보면서 걸음마를 내딛듯이 주님을 닮아가는 그리고 그분을 따라 실천하는 한걸음 한걸음을 걷고 싶다. 2014년도의 새해결심이 주님의 도우심으로 풍성한 열매와 삶의 변화를 가져오기를 소원한다. ▲이메일:revdavidkim@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