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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의 눈으로 본 세상

무슬림의 순진함 동영상에 대한 반응의 순진성

뉴욕빌라델비아장로교회 | 김혜천 목사

현대는 영상시대 이다.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를 뒤흔들고 기네스북에 오르는 기상천외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전 세계에서는 또 다른 동영상으로 날마다 이슬람권이 주도하는 데모가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Nakoula Basseley Nakoula 라는 사람이 만든 아마추어 영화 ‘무슬림의 순진함(Innocence of Muslims)’이라는 14분짜리 동영상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innocence를 순진함으로 번역을 했지만 innocence라는 말은 또한 ‘무지함’으로도 번역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슬림의 무지함’이 된다. 아랍국가들에서 어떻게 번역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화가 날법도 하다. 이 영화는 온통 무슬림들의 폭력성을 보여준다. 동영상의 시작은 이집트 무슬림들이 기독교를 믿는 가정을 약탈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이들의 방화와 약탈을 수수방관하는 현지경찰과 방화를 주도하는 이슬람 지도자도 등장한다. 장면이 바뀌고 이슬람의 예언자로 추앙 받는 무하마드를 아동학대, 혼외정사 옹호자, 폭군으로 묘사했다. 영화는 모하메드를 형상화 하는 것조차 금지한 무슬림들에게는 충격적인 사건이 될 수 있다.

이슬람권은 이 사건을 정치적 종교적으로 십분 잘 이용하는 것 같다. 유튜브에 올라가자마자 무슬림들은 분노했고, 이집트TV에서 뉴스로 다루면서 이집트를 비롯한 이슬람권에서는 미국과 제작에 참여했다고 믿은 유대인들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AP에서 보도한 유대인 관련은 오보로 판명되었지만 이란은 시온주의자의 악행이라고 계속 매도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모하메드를 비하하는 카툰이 신문에 실리면서 반미/반서구 데모는 폭발적으로 증폭되었다. 아랍권에서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이용하는 좋은 먹이감이 된 셈이다.

이 영화는 헐리우드 한 극장에서 10명의 관객을 가지고 단 한번 상영되었고 더 이상 상영되지 않은 영화 아닌 영화이다. 누가 보아도 원래의 대사를 지우고 그 위에 다른 대사를 더빙한 조잡한 조작을 한 수준이하의 영상이다. 미국에서는 극우주의자 몇 명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제작이나 기술면에서도 수준이 낮은 최악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엉터리 영화가 가장 유명한 영화가 되는 웃지못할 해프닝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것은 순전히 아랍권의 공로이다. 아랍권에서는 이 영화가 미국과 서방세계에서 굉장한 인기를 얻은 영화로 생각하지만 사실 미국 사람들이 이 동영상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한 것은 바로 아랍권에서 일어나는 반미 반서방 데모 이후였다. 역설적으로 데모를 하는 무슬림들이 자기들이 싫어하는 동영상을 가장 유명하게 만든 셈이 되었다.

아마도 데모에 참여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동영상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아랍권 나라에서는 구글 등의 서치엔진들이 이 동영상을 차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슬람 지도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은 자신이 본 것 이상의 분노를 터트리고 있다. 그 결과 전 아랍권에서 일어나는 데모의 여파로 미대사관이 공격당하고, 리비아에 주재하던 미국대사는 안전지대로 피하는 도중에 테러공격을 받아서 사망했다. 미국은 특수부대 50여명을 자국민 보호의 차원에서 투입했다. 또한 파키스탄정부는 제작자를 살해하는 일을 위해서 현상금을 내걸기까지 했다. 이 동영상 사건을 통해서 아랍권에서는 다시 한번 힘을 과시하고 결집하는 계기로 삼고 있는 것 같다. 세계는 이 사건의 여파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를 긴장하면서 주시하고 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문화적 이유가 있다. 우리의 시대가 영상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것도 유튜브와 인터넷의 공급력 때문이다. 이것은 영상시대의 영상문화의 강력한 힘을 보여준다. 하지만 아랍권 데모에 참여하는 많은 사람들이 동영상을 보지도 못했으면서도 이런 획일적인 데모와 폭발적인 반응이 가능한 이유 역시 문화적인 부분이 있다. 아직도 아랍은 구전 문화권인데 영상문화가 가져오는 폭발적인 충격으로 구전 문화권의 특징인 응집력이 종교를 중심으로 효과적으로 발휘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는 이런 사건들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첫째로, 우리는 온전한 사랑으로 반응해야 한다. 무슬림들이 기독교인들을 향해서 핍박하는 일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동영상에도 무슬림의 공격을 받아 죽은 여인의 목에 걸려 있는 십자가를 보여준다. 그리고 제목이 풍자하는 것처럼 사실적인 면도 있지 않는가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극우주의자들이 행하는 코란을 불태우는 일들로 무슬림들의 마음을 열 수는 없다. 십자군 시대처럼 종교전쟁하여 힘으로 결판내자고 하는 것이 아닐 찐대 그들의 마음을 여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힘으로 무슬림들의 마음을 예수님께로 인도할 수 없다. 그것은 세상의 방법이다. 주님은 검을 드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자신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강력한 사랑으로 강퍅한 인간들의 마음을 여셨다.

둘째로, 무슬림들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이슬람을 좀 더 잘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이슬람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있다. 하지만 모든 무슬림들이 다 테러리스트는 아니다. 라마단 기간 동안에 무슬림들과 이슬람권에 사는 성도들과 사역자들을 위해서 기도했었다. 이번에 이 영화를 제작한 사람이 고대 기독교의 형태인 애굽의 콥틱교회 신자라는 말에 이집트의 콥틱교회가 초긴장 상태에 빠졌다. 그렇지 않아도 콥틱교회가 이집트 무슬림들의 공격으로 어렵고 핍박이 심한데 이 사건의 후폭풍을 당연히 우려할 것이다. 그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여야 한다.

셋째로, 무슬림의 위한 전도나 사역의 전략이 새로워져야 한다. 지금까지 이슬람사회의 어두움을 폭로하는 영화들이나 보도들을 보면 이슬람권내의 성도들의 현실은 이 동영상 내용보다 훨씬 더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동영상은 앞에 나오는 핍박에 대한 고발의 메시지가 뒤에 나오는 모하메드에 대한 수준이하의 공격으로 다 지워버렸다. 또한 성도들에게 또 다른 핍박을 가지고 올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해주고 말았다. 영화의 제작자가 진실한 기독교인은 아닌 성 싶다. 그리고 핍박당하는 성도들을 염려하여 만든 것도 아닌 것 같다. 만약에 그런 의도가 있었다면 지혜롭게 영화를 만들고, 지혜롭게 메시지를 담고, 지혜롭게 진행했어야 할 것이다. 이런 개인주의적이고 영웅주의적인 행태가 사실은 수많은 ‘정말로 죄없는 innocent’ 성도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결과를 가지고 오기 때문이다.

넷째로, 무슬림 선교에 대한 대책은 새롭게 세워져야 한다. 무슬림 지도자들은 이미 우리 기독교 선교사들의 전략을 다 파악했다고 한다. 그리고 역으로 무슬림 포교를 기독교에게 배운 기독교의 전략으로 반기독교적인 포교를 하고 있다. 무슬림의 전통적인 전략은 매우 폭력적이고 침략적이다. 하지만 기독교가 같은 방법으로 선교할 수는 없다. 그럴수록 주님이 보이신 사랑의 태도가 더 절실하다.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 우리는 무슬림이 모하메드 믿고 존경하는 것처럼 그를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예수님이 모하메드를 비하하고, 욕하고, 어리석다고 하고, 모멸감을 주셨을까? 아닐 것이다. 예수님 당시에도 사람들은 수많은 우상들을 섬겼다. 예수님 시대에도 도시마다 수호신들이 있었고 수많은 신전들도 있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방의 신전들을 뒤엎지 않으셨다. 도리어 예루살렘 성전을 깨끗게 하셨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수많은 사역과 행동 가운데서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것이 한두 가지 뿐이겠는가?

‘무슬림의 순진함’이란 영화에 대한 무슬림들의 반응을 보면서 그들의 무지함innocence을 본다. 그러나 그런 무지함이 어찌 그들의 모습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것인가? 우리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께서 혀를 차실 수밖에 없는 ‘그리스도인들의 무지함’은 없을까? ▲이메일: revdavidkim@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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